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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날

by 함지연


4박 5일 일정의 여행을 떠나기 전날이다.


7월에 예약할 당시만 해도, 남은 시간이 많다고 느긋하게 생각했는데 벌써 내일 아침이면 출발이다. 열두 시간 후, 나는 여행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설 것이다.


여행사와 항공사의 안내 메일과 문자가 연이어 도착하고 있다. 내용을 확인할 때마다 여행이 실감 나고 긴장되기 시작한다. 항공사 사이트에 접속해서 온라인 체크인을 마치고 좌석도 배정받았다. 미팅 시간과 장소를 확인한 후, 공항버스 시간표도 다시 한번 체크했다.


전철만 타도 멀미를 하는 연주에게 전화해서 멀미약 구매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몽골은 우리나라보다 교통 시설이 낙후한 편이라, 장시간 이동 중에 필요할 수 있으니 멀미약을 준비하라고 했다. 멀미약을 먹어본 적이 없는 나는 전문가에게 어떤 제품이 괜찮은지 물었다. 역시 전문가답게 연주는 자신이 복용하는 멀미약과 복용 방식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한 알을 다 먹으면, 졸립고 무기력해지니 쪼개서 1/4 쪽 정도를 먹으라고 한다. 평소에 감기약만 먹어도 정신을 못 차리는 체질인데, 정보를 모르고 박스에 적힌 대로 한 알을 먹는다면 하루 종일 약 기운에 취해있을 테니 역시 멀미약 전문가에게 묻기를 잘했다. 멀미약은 2알씩 들어있는 것으로 두 박스 구입했다.


자기 전에, 여행가방을 펼쳐 잊은 것이 없는지 한번 더 확인할 예정이다. 여권도 잘 챙겼는지 확인해야 하고. 새벽에 일찍 출발해야 하니 너무 늦지 않게 잠을 자도록 노력해야겠다. 이번 여행에서 특히 신경쓰이는 것은 옷이다. 4계절 옷을 다 준비해야 하는 여행은 처음이다. 얇고 시원한 여름 옷부터 패딩과 수면양말까지 챙긴다. 사진 예쁘게 찍으라고 딸이 사준 알록달록한 무늬의 판쵸까지 넣었더니 그야말로 가방 안은 옷으로 가득 찼다. 옷 이외의 물품은 고심해서 최대한 줄이거나 최대한 조금씩 소분해서 가져가야 한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분주해져서 그날그날 해야 할 일들을 적고 지워가며 하고 있다. 오늘은 할 일이 더더욱 많은데 시간은 벌써 저녁이 다 되어간다. 가장 마지막에 하려고 남겨둔 일은 화분에 물주기이다. 여름이고 흙이 금방 말라서 며칠 동안 식물들이 멀쩡하게 버텨줄지 걱정이긴 하다. 최대한 햇볕에서 먼 곳으로 화분을 옮기고 물을 흠뻑 주어야 한다. 5일만 참아라, 달개비야. 장미허브야. 벤자민아.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더는 화분을 늘리지 않겠다고 결심하는데, 지나고 나면 그런 결심은 희미해지고 어쩐 일인지 물을 줘야할 식물은 늘어나 있곤 한다.


마트에서 과자를 잔뜩 샀다. 제과점에 들러 종류별로 빵도 샀다. 우유를 빼먹어서 다시 마트에 가서 우유도 샀다. 껍질을 까기 편한 바나나도 샀다. 냉장고 한 칸에 빵과 우유와 과일을 채웠다. 냉동실에는 데워 먹을 수 있는 간편식으로 피자와 핫도그를 사서 채웠다. 내가 집을 비우는 동안, 아들이 꺼내서 챙겨 먹을 음식들이다. 몇 번은 밖에서 친구들과 사 먹기도 하겠지만, 집에서 먹을 것을 충분히 채워 두어야 마음이 편하다. 가만, 아들이 갈아입을 옷도 미리 세탁해서 널어놓아야겠다.


전에는 하루나 이틀 정도 집을 비울 때 딸에게 아들의 뒤치다꺼리를 부탁했다. 형제인데 당연히 누나가 챙겨야지, 라는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그렇지만 동생 챙기라고 누나를 낳은 것은 아니고 챙기는 것이 당연한 것도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내가 죽고 아들이 남겨졌을 때 그애를 누나가 책임지고 부양할 어떤 의무도 없다. 책임져달라고 짐을 떠넘길 수도 없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삶까지 얹어줄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동생을 챙겨달라고 딸에게 부탁할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제 더는 동생을 챙기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대신 아들에게 엄마가 없는 동안의 생활과 조심해야 할 것을 반복적으로 알려준다. 아들이 누군가에게, 설령 그 누군가가 혈육일지라도 폐를 끼치는 존재가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서툴고, 못해도 스스로 해나가거나 내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홀가분하다.

일어나야 할 시간과 학교로 출발해야 할 시간 알람도 잊지 않고 한다. 일주일 내내 아들은 스스로 일어나 끼니를 챙기고 학교에 다녀와서 자기 전까지 혼자 시간을 보낼 것이다. 엄마가 없는 5일, 잘 지낼 것이고 어쩌면 못 지낼 수도 있겠지. 그래봤자 한 두끼 제대로 못 챙기는 것이나 세탁하지 않은 옷을 그대로 입는 것이나 늦게 일어나서 지각을 하는 것 정도겠지. 그러면 그건 다시 학습하고 고쳐나가면 되겠지.


하루도 마음 편히 외출하지 못하던 시기도 있었다. 아니, 단 몇 시간도 편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쉬고 싶거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무거운 마음을 환기하고 싶은데 쉽지 않았다. 가족과 떠나는 여행은 장소만 바뀔 뿐 집에서 했던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의 연속이었다. 압력솥까지 싸 들고 가는 여행이니 오죽했겠나. 역시 집밥이 최고야, 소리를 들을 때마나 얼마나 얄밉던지.

더군다나 자신의 원가족이나 직계가족 이외의 이들과 관계 맺기를 꺼리는 배우자와의 생활은 지극히 폐쇄적이고 제한적이었다. 30년 동안 내게는 아는 사람이 늘지 않았다. 오히려 줄었다. 이미 알던 사람들은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내게서 차츰 멀어져갔다. 나는 배우자 중심의 가족 이외의 그 누구와도 여행을 해본 일이 없다.


이혼소송을 시작하고 나서야 내 세계가 차츰 넓어졌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도 더는 두렵지 않고, 점점 더 멀리, 점점 더 자주 떠나는 사람이 되었다.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에서 해방된 여행에서 마침내 여행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 홀가분함이 이제는 여행을 오랫동안 떠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사람으로 변신했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다음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으로 진화했다. 물론 아들과 떠나는 여행에서는 돌봄 노동이 여전히 요구되지만, 압력솥 싸들고 가서 삼시세끼를 차려야 하는 여행에 비하면 얼마나 발전했는지 모른다. 아들과의 여행도 삼시세끼를 사먹는 여행이니 그저 감사할밖에.


언젠가는 꼭 하고 말 거야, 이런 간절함으로 공책에 여러 번 적었던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는

오로라와 별을 보러 떠나는 것이었다. 오로라도 별도 너무 멀리 있어서 과연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싶었다. 최소한 일주일 이상의 일정으로 떠나야 가능한 여행. 아들을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했는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아들을 누군가에게 떠맡기고 싶지 않았고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니 나는 이 아이를 두고 오랫동안 떠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마음을 접었다.


그렇지만 아들은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느리지만 성장하고 있었다. 작년에는 불가능했던 일을 올해는 해내고 있다. 아들은 영원히 제자리일 것이라고 내가 착각했던 것이다. 아들이 성장하자 내게도 용기가 생겼다. 아들과 조금 멀어질 용기. 아들과 조금 더 멀어질 용기. 하루였다가 이틀이었다가 이제 다섯 낮과 밤을 아들은 나 없이 지낼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어쩌면 한 달도 아들은 나 없이 잘 지낼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아들과 서로 독립된 주거지를 갖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일 사막으로 간다. 돗자리에 누워 하염없이 별을 볼 것이다. 오래된 공책에 적었던 별을 보러 사막으로 간다. 내 생애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보며 나는 울까, 웃을까. 그리고 오로라를 보러 북쪽으로 떠나야지. 가고 싶은 곳으로 언제든지 가야지.

별을 실컷 보고 돌아오는 그 다음 주에 드디어 최종 선고 기일이 정해졌다. 몇 번인지 세기도 귀찮은 지긋지긋한 변론만 계속되던 2년 반만에 드디어 재판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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