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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것들이 나를 구원했네

by 함지연

어느 날, 딸의 자취방에 갔을 때, 모루실을 보았다. 딸은 이것으로 인형을 만든다고 했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사용한 경험이 있던 공예재료인 모루를 꼬아 모양을 만든 후, 눈과 코를 본드로 붙이고 옷과 목걸이, 머리핀 등으로 꾸며 완성한다. 토끼나 고양이, 강아지의 모양을 한 그것들은 매우 귀여웠다.

나도 가르쳐줘.

딸이 사 모은 재료들을 펼쳐 놓고, 마음에 드는 모루를 먼저 골랐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배웠다는 딸을 따라 실을 반으로 접고 꼬고 비틀어서 모양을 만들었다. 제법 비슷한 모양의 강아지 형태가 되었다. 파란색 눈동자의 눈을 붙이고 까만 코를 붙이고 비즈를 꿰어 만든 목걸이까지 두르니 작은 인형이 완성됐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인형을 만지면 기분이 몽글해졌다. 내가 만든 인형을 집으로 가져와서 책상 앞에 두었다. 볼수록 더 마음에 들고 귀여웠다.

토끼와 강아지 인형을 만들고 나서 더 만들고 싶어졌다.

다음날, 재료를 사러 동대문 종합시장에 갔다. 만들기가 취미인 사람들의 성지인 동대문 종합시장 5층. 평일인데도 각종 만들기 재료를 사러 온 이들로 북적거렸다. 그들 사이를 다니며 재료를 샀다. 마음에 드는 실과 옷과 소품들을 닥치는 대로 바구니에 담고 결재했다.

딸과 만날 때마다 모루 인형을 만들었다. 각자의 가방에서 재료들을 꺼내 탁자 위에 늘어놓는다. 수다를 떨며 인형을 두 개나 세 개쯤 완성한다. 그리고 인형을 나란히 앉혀두고 사진을 찍어 남긴다.


여행을 할 때도 우리의 여행 가방 속에는 모루 인형을 만들 재료를 한 보따리 챙겼다. 일정을 마친 후 숙소에서 우리는 과자와 맥주를 마시며 인형을 만들었다. 귀여운 인형을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손과 발의 균형이 안 맞거나 비대칭이 심하면 실을 도로 풀어서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서른 살하고 육십 살하고 이러고 논다.

갑자기 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론 반올림을 살짝 한 나이이지만, 곧 서른이고 곧 예순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딸의 말처럼 나이 들어가는 모녀 둘이 인형 놀이에 몰두해 있는 것이, 그것도 아주 재밌어하는 것이 내 생각에도 웃겼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나요?

이런 질문에 나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 혼자 있는다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그 굴 속에는 결코 나 하나만 덩그러니 있지는 않았다.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을 다양한 놀거리들이 놓여 있었다.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애착 인형 같은 장난감도 있고, 관심이 생겨 들여놓은 새로운 장난감도 있다. 놀이에 집중하는 동안, 스트레스 상황을 잊고 상처는 아문다. 다시 동굴 밖으로 나올 힘이 그제야 생긴다. 모루 인형 만들기는 내 동굴 속의 새 장난감이다. 서른이면 어떻고 육십이면 어떤가. 나이 든 우리에게도 귀여운 장난감은 필요하다. 마음이 시려 온기가 필요할 때 끌어안고 위로받을 인형이 필요하다. 주먹 하나도 되지 않는 작은 크기의 인형이지만, 그것을 손으로 감싸면, 어쩐 일인지 따뜻해진다. 귀여운 것을 보며 한껏 귀여워하는 동안, 굳어 있던 표정이 풀어져 버린다.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관계가 아닌, 동물이나 식물, 또는 무생물을 통해 위로받기도 한다. 그것들은 절대로 상처를 주거나 돌려주지 않고 그저 따뜻하기만 하다.

얼마 전, 기차를 타고 소도시 여행을 다녀왔다. 기차역에서 집결한 후, 버스를 타고 여행 코스를 함께 이동하는 패키지 상품이었다. 상품의 홍보 문구에 ‘F들 모여라’ 라는 말이 있어서였는지 모르겠는데, 내향인들이 유독 많았다. 나 역시 내향인인 친구와 둘이 참여했으며, 혼자 여행을 온 이들의 비중이 더 많았던 여행이다. 일박이일의 일정을 함께하며, 낯 많이 가리는 내향인 동행들과 스며들 듯 차츰차츰 다정해졌다. 따뜻하게 말을 건네고, 누군가의 혼란에 응원을 보내고 슬며시 우산을 씌워주며 동그란 그늘 속을 나란히 걸었다. 우리는 이제 처음 본 사이인데도, 단지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정하다.

마지막으로 기차역에서 내린 몇몇은 같은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었고, 누군가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남성 참가자는 둘뿐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었다. 그가 사준 커피를 마신 후에도 아직 시간이 남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 후, 기차역 승강장에서 헤어졌다

또 보면 좋겠네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인사했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아마도 또 만날 일은 없으리라는 것을.

판교에서 인쇄소를 한다는 누구, 동화를 쓰는 누구,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 개명했다는 누구, 출판사를 다니다 일주일 전에 퇴사했다는 누구.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떤 약속도 없이 헤어졌으니까. 다만, 24시간을 함께 했던 다정한 사람들.

그런데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이 사람들 왜 이렇게 다 귀엽지? 어떻게 귀여운 사람들만 모여 여행을 하지?

나는 사람들 사이의 에너지를 믿는 편이다. 그러니 어떤 자리에 있을 때는 부정적인 에너지 때문에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고 쉽게 지치거나 불편하다. 그 자리에서 얼른 도망치고 싶다. 그런데 그 여행에서 나는 전혀 도망치지 않았다. 지치지도 않았다. 다정하고 귀여운 사람들과 아주 긴 대화를 주고받았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닌 모양이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터라 마음 한켠에 부담이 있었을 친구는 몇 차례 같은 말을 했다. 이상하게 하나도 안 피곤해.

표현은 달랐지만, 의미는 같다고 느껴졌다. 친구 역시 귀여운 마음들과 함께 있었기에 그들 사이의 좋은 에너지로 충전된 것이리라.

그러니 나는 날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어떤 아름다움, 어떤 성스러움, 어떤 압도적인 거룩함이 아니라 어떤 귀여움, 작고 앙증맞고 보드라운 것들에게 점점 더 구원받는 기분이다. 커다란 무엇이 아니라 미처 발견하지 못하던 찰나, 문득 눈에 들어오는 귀여운 것들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아직 이 세상에는 내가 발견하지 못한 귀여움이 아직 숨겨져 있을 것이니, 하나씩 찾아나가야지. 삶은 숲속에서의 보물찾기처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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