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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디작은) 불의를 참지 않지

by 함지연

이곳은 포항.

나는 포항 여행을 마치고 기차역으로 이동 중이다.

영일만 해수욕장 근처의 숙소에서 짐을 싸서, 죽도시장에 들러 기차 안에서 먹을 간식으로 찐 옥수수까지 사서 여유 있게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택시를 타면 더 금방이지만, 시장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도 20분이면 나는 기차역 대합실에서 느긋하게 앉아서 출발 시간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도착 정보를 미리 검색하고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탔다. 많은 사람이 내리고 장을 본 짐보따리를 잔뜩 든 여러 사람이 버스에 올랐다. 우리는 뒤쪽으로 가서 앉았다.

버스를 타고 채 한 정거장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운전기사와 할머니 한 분의 언쟁이 시작되었다.

내 바로 앞에서 버스를 탔던 어르신이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은지 묵직한 검정 비닐봉지 두 개를 먼저 던지듯 내려놓고, 두 손으로 기듯이 버스에 올랐다. 운전석의 두 번째인가 자리에 앉는 것까지 봤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무임승차를 했던 모양이다. 운전기사는 요금을 내라고 재촉했고, 할머니는 딴청을 피우며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운전기사가 계속 요금을 내라고 다그치고 할머니는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았다. 들어보니 할머니는 계속 아팠고, 여전히 아프고, 오늘은 장날이라 장을 보러 나온 거라는, 무임승차의 합당한 이유는 아닌 말들이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서 뒷자리까지 분명하게 들렸다. 설상가상으로 출입문 바로 앞 좌석에 앉은 중년 여성이 할머니 편을 들고 나섰다. 심지어 목소리는 제일 커서 한순간에 버스 안은 시끌벅적해졌다;

할머니는 편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더 큰 소리로 운전기사를 공격했다.

나뿐 아니라 그 버스 안의 누구도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의 자식이 어디 어디에서 일한다는 중요하지도 않은 궁금하지도 않은 정보를 흘렸다. 웃어른을 공경하지는 못할망정, 바락바락 소리 지르는 운전기사를 비난했다. 출입문 앞 좌석의 아주머니까지 함께 가세해서 어른한테 그러면 어쩌냐 떠들었다.

너는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 그리고 운전기사의 뒤통수에 욕설을 했다. 마침내 할머니는 선을 넘었다.


나는 지방으로 종종 여행을 다닌다. 배차 간격이 긴 버스를 겨우 타고 갈 때마다, 운전기사들의 곡예운전과 난폭운전에 아찔하다. 경사가 가파른 언덕이 많은 부산 영도에서 버스를 탔을 때, 난 죽는 줄만 알았다. 자리에 앉아 있어도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며 눈앞에 낭떠러지와 바다가 보이는 버스를 롤러코스터처럼 타는 동안, 원주민들의 평온한 얼굴을 보며 내가 이상한가, 갸웃했다.


포항에서의 대중교통도 마찬가지여서 이미 여행을 하며 이러다 사고 나면 어쩌나 긴장했다. 만약 서울이었다면 당장 민원을 넣을 것이지만, 나는 포항 주민이 아니니 참을 수밖에. 그런데 그 생명줄 같은 운전대를 잡은 운전기사를 상대로 어르신 두 분이 편을 먹고 싸우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생명의 위협을 느꼈겠나. 저러다 젊은 혈기에, 핸들이라도 꺾어버리면 어쩌려고 저러나 조마조마했다. 짧은 순간, 나는 곧 닥칠 각종 사고에 대한 상상을 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운전기사는 버스를 갓길에 정차했다. 문을 닫고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경찰을 불렀다. 경찰이 오는 잠깐 동안, 다른 승객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앉아 자신의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들 바쁜 일이 없는 모양이지? 기차 시간이 다가오는 나만 초조한 거지? 지금이라도 내려서 택시를 타야 하나? 그런데 내가 왜 다른 사람 때문에 피해를 입어야 하지? 한 정거장 타고 내리면 버스 요금과 택시 요금은 누가 보상해 주나?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버스 기사 사이에 이미 알려진 사람이었다. 자주 운전기사들과 다투고 문제를 일으켰고, 경찰이 와서 중재했던 전력이 이미 있다. 경찰차가 버스 앞에 서고, 몇 명의 경찰이 할머니에게 내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할머니와 경찰들 간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자신은 바빠서 내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차 시간이 촉박하게 다가왔다. 계속 지체했다가는 화장실에 들를 시간도 없고, 기차도 놓칠 것만 같았다. 화를 꾹 눌러 참았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운전기사와 할머니와 경찰 서너 명, 출입문 앞 좌석의 아주머니까지 정신없는 곳으로 걸어갔다. 할머니에게 당장 내리시라고 말했다. 경찰들에게 이 할머니가 먼저 잘못을 하고 욕설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기차 출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계속 이 자리에 있다가는 기차를 놓치게 생겼는데. 그 피해보상은 누가 해주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경찰들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으며 내릴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 자리에 있던 묵직한 짐 보따리 두 개를 들고 앞쪽 출입문으로 다시 갔다. 그 짐보따리를 경찰에게 넘겼다. 그리고 나는 지금 기차에 늦게 생겼는데, 더는 피해를 보고 싶지 않으며 빨리 버스가 운행해야 한다고 큰소리로 말했다. 아니다. 질렀다.


자신의 짐이 버스에서 내려지자 할머니는 그제야 버스에서 내렸다. 운전기사는 승객들에게 사과한 후, 버스를 다시 운행했다.

그리고 서울역에서 전력질주했던 나는 포항역에서 또 한 번 전력질주했다. 숨을 다 고르기도 전에, 기차는 출발했다.


이 모든 과정은 여행의 동행인 친구가 보았다. 갑자기 벌떡 일어난 나를 보고 친구는 놀랐다. 싸우는 사람들 틈에 끼어 소리를 지르는 내 모습을 보며 더더욱 놀랐다. 그동안 전혀 보지 못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이었기에, 정말 간이 쪼그라들어서 자신도 일어나서 나를 말려야 하나 안절부절못했다고 했다.

나는 이제 불의를 보면 못 참겠어.

친구에게 고백했다.

많이 놀랬어요?

화가 누그러진 나는 친구를 보며 키득거렸다.

나는 너무 오래 참았다. 네가 참아라, 의 바로 그 ‘너’ 캐릭터로 너무 오래 살았다. 몸속에서 사리가 한 바가지 나올 정도로 끙끙댔다. 저건 분명 틀렸는데, 공평하지 않은데, 그 말은 속으로 삼켜 목걸이 하나쯤을 너끈히 꿸 만한 사리 뭉텅이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 더는 참고 싶지 않다. 더는 사리를 쌓아둘 자리가 없거든.


당연히 나이 많은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선한 일이다. 그렇지만, 무임승차는 누구이든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더 나쁜 것은 할머니의 발언이었다. 너는 니 부모한테 그렇게 배웠냐, 라니. 나이가 상관없이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무례함을 참을 수 없다.


더군다나 이제 내 자녀들이 성인이다 보니, 젊은 세대들이 힘들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 내 자녀들도 어딘가에서 그런 대접을 받을 것만 같아서이다. 이런 마음을 얘기했더니, 친구도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어린 사람에게 함부로 하거나 부모를 언급하는 욕설은 참기 힘들다고 했다. 물론 반대로 어른에게 무례한 젊은 사람을 본다면 역시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그냥 서로 무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행을 다녀온 후, 버스 안에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 에피소드를 다른 친구에게 들려주었더니, 그 친구도 깜짝 놀랐다. 네가? 말도 없고 조용했던 네가? 뭐 이런 반응.


그런데 참는 캐릭터를 버렸으니, 앞으로도 종종 화들짝 놀랄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친구들이 너무 놀라지 않기만을.

그렇긴 한데 간은 여전히 작아서, 아마도 쭉 작디작은 불의에만 참지 않을 확률이 높다. 아직 큰 불의에 맞설 용기는 없다. 큰 불의 앞에서는 숨어서 분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큰 불의에도 참지 못하는 사람으로 바뀌기도 하려나. 아니면 작고 사소한 불의에 참지 않는 나와 비슷한 여러 사람이 모이면 어쩌면 큰 목소리가 되려나. 그래서 부당한 일이나 불공평한 일이 조금은 바뀌려나. 나처럼 작디작은 불의에 참지 못하는 사람, 어디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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