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훨씬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특정한 어떤 주제의 이야기에 강하게 매료당했던 것 같다. 이야기를 좋아하니,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 되었지만, 특별히 더 좋아하는 것들은 이런 이야기이다.
다르게 사는 사람의 이야기.
자신이 살던 시대가 둘러싼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에 의문을 품고 반대편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이를테면 당연하다고 하는 것들에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나는 왜 당신들과 똑같이 살아야 하느냐 반문하는 사람들의 용기.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고 행동했던 사람들의 진짜이야기.
나는 화가 많았다. 그 화는 왜인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갔다.
왜 여자와 남자가 다른가. 정확히는 왜 여자의 지위는 남자보다 그것보다 낮은가에 대한 반발과 알레르기 반응처럼 빠르게 돋는 불만과 분노. 누군가 내게 ‘너는 페미니스트잖아.’라고 알려주고서야 비로소 내 화의 이유를 알았다.
내가 틀렸다고 한 사람이 있다.
더 심하게는 내 생각이 글러 먹었다는 폭언도 들었다.
나는 모성애도 없고 현모양처가 아니라고 규정지어졌다.
그들에게 나는 나쁜 여자이다. 다행히 그들과는 인연이 단절되었으니 이제 들을 일은 없다.
소극적으로 분노를 삼키던 나는 이제 큰 소리로 반박할 수 있다. 나는 자녀가 미성년이던 시기에 충분히 양육했다. 마침내 성인이 되어 돌봄 노동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나의 시간이 없었고, 나를 위해 어떤 것도 시도하지 못했고, 나의 기쁨과 꿈은 충족하지 못했다. 아픈 자녀를 업고 새벽에 병원으로 뛴 것도 모성애가 없으면 할 수 없다. 누구도 내게 모성애가 없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나에게 모성애가 없다고 했던 그들에게 묻고 싶다.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부모를 떠나 독립하고 자신의 살림을 스스로 꾸려야 한다는 나는
모성애가 없는 사람이고, 늙어가는 자식의 갖은 치다꺼리를 하고 밥상을 차려주는 여성에게는 모성애가 차고 넘치는 것일까. 자이언트 판다 아이바오도 푸바오가 세 살이 되자 더는 끼고 살지 않고 성가셔하다 독립시키던데 인간, 그중에서도 여성은 몸이 고장 나면서 더 이상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을 수행할 수 없어 결국 요양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가족의 끼니 해결이라는 굴레에서 못 벗어나는 것인가.
자녀가 결혼을 통해 부모를 떠날 때에야 부양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자녀가 결혼을 하지 않거나 못하거나 하는 사정으로 혼자 늙어간다면 더 늙은 모친은 덜 늙은 자식을 계속 양육해야 하나. 3년 동안 물고 빨며 돌본 푸바오를 독립시킨 아이바오를 부러워하면서.
오늘 오후 나는 노년의 두 여성을 만났다. 저녁 밥상을 차릴 시간이 가까워진다. 한 여성은 40대 미혼인 아들을 위해 돼지고기를 넣고 김치찜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고, 또 다른 여성은 점심때 남편이 좋아하는 콩국수를 만들어서 점심 밥상을 차렸다고 했다. 그 여성은 관절염 때문에 다라도 불편한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아들을 먹이려고 백숙을 고았다. 이 삼복더위에. 여자들은 왜 밥상에서 해방되는 것이 이렇게 힘든가.
도대체 누가 정했을까.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이래야 하고 딸은 이래야 하고 며느리는,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규정들. 그래서 속으로는 천불이 나고 억울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네, 하고 수긍하는 척하게 하는 다양하고 부조리한 당연함들.
‘왜’라는 의문을 품고 금기를 깬 이들이 사실은 언제나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통쾌했다. 결혼이나 이혼에 여자의 자발적인 의사 표현이 제한적이었던 시절, 이혼을 선언하고, 자신의 길을 갔던 여자들, 글쓰기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시대에 글을 쓰고 작가가 된 여자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집을 떠나거나 먼 나라로 유학을 선택한 여자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난 여자와 무장을 하고 전투를 치른 여자와 처음으로 바지를 입은 여자와 처음으로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한 여자가 있었다.
원래 그런 거야.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그게 당연한 거야.
이 지긋지긋한 말들.
나를 억눌렀던 부정적인 말들.
죽은 사람들이 설계한 세계는 여전히 단단하지만, 그 세계가 금이 가고 서서히 붕괴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당연하다고 규정되었던 것들이 죽고 당연하지 않다고 여겨지던 것이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남들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들을 부순 사람들에 대한 소식을 지금은 더 흔하게, 더 빠르게 전해진다. 먼 나라의 이야기도 실시간으로 내게 당도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럴 때마다 먼 곳의 그들에게 손을 잡아주듯 조용한 응원을 보낸다.
물론 응원하고 싶은 이들이 반드시 여성이지는 않다. 간호사의 삶을 사는 남성, 전업주부를 자처하고 자녀의 양육을 전담하는 남성, 남자는 이래야 한다, 는 강한 남성상에 대한 압박을 깬 남성들의 용기 역시 나를 환호하게 한다.
정해진 규칙대로만 산다면 얼마나 지루한가. 규칙을 깰 때의 가슴 터질 듯한 두근거림과 긴장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힘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규칙을 종교처럼 믿는 이들에게는 그 규칙이 이 세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부모가 이혼하면 자녀들의 취업이나 결혼에 악영향을 준다는 말은 내가 들었던 어이없는 말 중 하나이다. 이혼을 결심한 내게 끝까지 '엄마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종용했던 이들이 반복적으로 했던 말이다. 자녀의 결혼식에 혼주석에 무조건 부모가 나란히 앉아야 한다는, 신부입장할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을 둘러싼 안전한 벽을 무너뜨리기 두려운 이들에게는 어쩌면 그럴 수도.
이혼한 친구 1은 아들의 결혼식에서 전남편과 나란히 혼주석에 앉았다. 전 시가 식구들과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공통의 가족 행사를 함께 치르는 가족들 간에 오가는 평범한 대화를 나눴다.
40대인 블로그 이웃은, 결혼식은 생략하고 결혼식에 들어갈 비용으로 여행을 길게 다녀왔다.
어느 결혼식에서 신부는 엄마 손을 잡고 입장했다. 신랑이 입장하는 순간, 아들의 손을 잡고 입장했던 어머니도 있다.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 손을 잡고 입장하는 형식으로 식이 진행되기도 하지만, 그 당연함을 깨는 결혼식에 대해 나는 더 많이 나열할 수도 있다. 3년 후 이혼하기는 했지만, 신랑보다 먼저 입장한 신부도 있으며 친아버지와 새아버지, 신부 이렇게 셋이 입장하는 결혼식 영상도 본 적이 있다.
모성애가 없다고 내가 틀렸다고 규정했던 이들에게 묻겠다는 말은 취소하겠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그 이유를 조목조목 나열하는 일도 그만두겠다. 누군가는 페미니스트라고 하고 누군가는 전사라고 하니 내가 잔다르크라도 된 줄 착각했다.
나는 대답 없는 이들에게 혼자서 따지고 억울해하며 살았다. 그건 마치 차가운 벽과 싸우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다. 자신이 살아갈 세계를 선택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선택이고 나는 다른 사람의 세계를 부수거나 세울 권리는 없다.
그저 나는 내가 선택한 세계를 차근차근 설계하며 세워가는 수밖에. 다만 내가 넘어온 이 세계에서는 누구도 틀리지 않고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다른 사람은 있지만, 그들이 틀린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