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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혼자 여행, 묵호

by 함지연

혼자 여행하기는 혼자 살기와 함께 오랜 꿈이었다. 그리고 오래도록 두 가지 꿈은 이루 어지 못했다. 두려움이 나를 붙잡았다. 놀랍게도 그건 나만의 꿈이 아니었고, 또 놀랍도록 못하는 이유 역시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한 번도 혼자 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 중년의 여자들은 혼자 떠나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녀들에게 살면서 했던 거의 모든 여행은 장소만 바뀔 뿐, 구성원도 하는 역할도 놀랍도록 변함이 없다. 가족이나 자녀, 남편의 원가족, 남편이 흔쾌히 동의한다는 가정하에서는 자신의 원가족. 자녀가 어릴수록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집으로 돌아와서 가지의 시간은 기혼 여성에게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의 연장선이다. 우선 짐 싸기부터 난도가 높다. 지저귀와 분유, 갈아입을 옷까지 챙기다 보면 사람보다 짐이 훨씬 더 많아진다. 무조건 집밥을 고집하는 가족들과의 여행은 미리 준비해 온 집밥을 끼니마다 차리고 치우고의 반복이다. 바닷물에 젖은 옷과 수영복과 수건을 빨고 말리고 개는 일의 반복이다.


녀가 어느 정도 성장해서 엄마의 돌봄 노동이 중단되어도 크게 불편이 없을 즈음, 드디어 가족을 두고 친구나 모임 구성원들과의 여행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 여행은 가족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하고, 자녀들의 중요한 일정을 피해야 하고 여행 동행과 여행 동행의 가족, 조율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친구들과의 여행은 집에서의 노동이 연장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밥 차릴 시간에 밥을 안 차려도 되는 그 쾌감. 느긋함과 해방감은 저녁때가 되면 자동적으로 저녁 밥상을 걱정하던 여성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녀들은 그 자유 시간을 만끽하며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당장 떠날 듯 근사하고 설레는 여행 계획이 완성된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와 삶이 되돌이표처럼 반복되다 보면 여행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도, 또는 시간을 낸다 하더라도 함께 떠날 여행 파트너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여행은 미루어지고 마음은 시큰둥해진다. 그러다가 이제 여자와 여자의 친구들은 자랑이라도 하듯 차례로 몸의 어디가 고장 난다. 여행은 더 멀리로 미루어진다.

그러니 여자들은 원한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당장 가방을 싸서 차를 타고 싶다. 그 마음이 식기 전에, 저녁 밥상을 차리기 전에, 집을 나서고 싶다. 남편 말고 자녀 말고 친구도 말고 그냥 온전히 내 취향의 장소로 가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싶다. 여행지에서 음식이나 숙소에 대한 선호도가 맞지 않아 낭패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심지어 여행의 의미가 크게 다른 사람과의 여행은 그야말로 갈등의 사간이다. 누군가는 휴식을 누군가는 배움을 누군가는 모험을 원한다. 누군가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아름다운 풍경을 포기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어차피 잠만 자고 오전에 나올 숙소에 쓰는 돈을 아까워한다.

조율을 거듭거듭해도 합의점에 다다르지 못했을 땐, 이럴 바엔 혼자 갈 거야, 하고 외치지만 발목을 잡는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두려움. 집에서 멀어질수록 내가 가보지 않은 세계는 온통 어둠이고 온통 적이고 온통 차가운 시선이다.


묵호는 한번 다녀왔던 곳이다. 묵호에서의 시간들이 좋았다. 시끄럽지 않고, 한적하고, 시간이 느리게 갔다. 동해안의 다른 관광지에 비해 조용했지만, 바다가 보이는 근사한 카페들도 있고 걸어서 다니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 소도시여서 마음까지 느긋했다. 그곳을 다시 한번 가고 싶었고, 계절이 바뀐 후, 나는 혼자 떠났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두 시간. 정동진에서 묵호까지의 철길은 바다와 바로 가까이 있다. 바다에 도착하기 전에, 눈에 한가득 파란 바라를 담는다. 묵호로 향할 때도 서울로 올라올 때도 A열 자리를 예매하면 기차 안에서 아름다운 바다가 액자처럼 내 눈앞에 있다.


여행을 가기 전,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 모임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여행에 도전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다들 내 도전을 축하해 주었다. 나보다 어린 이들에게 혼자 여행은 도전도 아니다. 단지 여행의 한 장르일 뿐이다. 2,30대들은 혼자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 대한 스케치를 SNS에 올린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여행도 거리낌이 없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으로 또는 직항 노선이 없는 곳으로도 훌쩍 떠난다.


20대 초반의 딸이 혼자 여행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내가 느꼈던 두려움은 아직도 기억난다. 20대 초반의 여자, 심지어 혼자. 낯선 곳에 있으면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각종 범죄가 안전을 위협하고 각종 사고는 또 얼마나 많은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종종 나오기도 한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왜 내 곁에서 멀어지면 안전하지 않다고 겁을 냈을까. 한 번이 겁이 났지, 이제 혼자 여행을 가는 딸들을 겁에 질려 지켜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도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 조금 먼 곳으로 혼자 걸을 수 있다.

모임에서의 응원과는 반대로 가족이나 친구의 반응은 걱정이었다. 내가 속에 깊숙이 덮어두고 모른 척한 내면의 목소리를 가까운 이들의 목소리로 대신 듣는 기분이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

무섭지 않아? 잘 때 문 꼭 잠그고 자. 이런.

여자 혼자 가는 여행은 위험하다는 부정적인 생각. 여행을 떠나는 나도 내 주위의 사람도 덩달아 겁을 먹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걱정을 어깨에 짊어지고 잔뜩 긴장한 채 묵호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묵호에 도착해서 먹은 첫 끼는 살얼음이 씹히는 물회였다. 그리고 작은 카페에 갔다. 아기자기한 소품과 그릇, 고양이가 있는 카페였고, 동네 사람들이 쉬어가는 참새방앗간 같은 장소였다. 시원한 커피를 시키고, 나는 가져간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렸다. 카페 안의 작은 그릇들이 진열된 그릇장을 그렸다. 배부르게 음식을 먹은 때문인지 나른하게 졸음이 왔고, 내 귓가에는 주인과 손님들의 수다가 계속 들렸다. 사는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옆집과 그 옆집에 일어난 이야기. 그러다 주인이 내 탁자에 슬쩍 포도를 담은 스텐 대접을 놓고 갔다. 다정한 말이나 인사는 없었다. 시크하게 포도만 내 탁자에 두고 카운터로 돌아갔다.

평일의 소도시는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찾기 힘들 정도이다. 관광객을 겨냥한 소품샵이나 독립서점, 재래시장의 먹거리 식당은 휴점이거나 일찍 문을 닫았다. 바다를 한참 바라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가져간 책도 읽히지 않고 그저 뒹굴며 게으름을 실컷 피웠다. 일어나기 싫어도 몸을 일으켜 세워해야 만 하는 일들이 한 가지도 없는 건 이렇게 사람을 단순하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도 다 괜찮았다.


그리고 두려워했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많이 걷고 바다를 보고, 맨발로 바닷물에 맨발을 담그고, 해변에서 동그란 돌과 구멍이 난 조개껍데기와 날카로운 면이 둥글게 닳은 유리 조각을 주웠다.


묵호에는 매일 바다로 나가 깨진 유리조각을 줍는 사람이 산다. 그 조각을 주워 와서 소품을 만들어 판다. 유리 조각을 찾으러 바다로 갈 땐 소품삽은 무인으로 운영된다. 그곳에서 낚시찌로 만든 키링을 샀고, 가져가도 된다는 헌 책 바구니에서 책 두 권을 챙겼다. 서울로 돌아와 파란색 유리 조각 두 개는 조카에게, 그림책은 그림책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했다.

나의 첫 혼자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묵호에 다녀온 후, 부산으로 한 번 더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나의 여행기를 들은 친구는 자극받아서 내가 극찬한 바로 그 묵호로 혼자 여행을 갔다. 그리고 연이어 구례와 속초까지 용감하게 혼자 떠났다. 조금 어설픈 혼자 여행객 친구는 그 여행지마다 어찌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왔는지, 글을 쓸 때마다 글감이 빈약해서 괴로운 나는 글감이 차고도 넘치는 친구를 보며 배가 아팠다. 복권 꿈이라면 사기라도 할 텐데, 타인의 고유한 경험은 살 수조차 없다.


나만의 여행은 계속된다. 여행이 쌓일 때마다 두려움은 점점 사라지고, 점점 더 용기가 생긴다. 용기가 생기니 더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알록달록한 유리 돌을 찾으며 혼자서도 씩씩할 것이고, 이런 씩씩함을 잃지 않고 인생 후반전에 주어진 혼자만의 삶도 잘 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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