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휴대폰의 통화기록을 확인해 보며 우리가 4개월 전, 10여분 간 전화 통화를 했다며 알려주었다. 나도 그녀도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고 있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진행되거나 결정이 났는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한 편의 단편소설을 목소리로 듣는 기분이다.
우리는 언제 만날까,라는 주제를 나누던 중에 그럼, 오늘 저녁에 만나자는 합의에 이르렀다.
전화를 끊고 5시간여 만에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만났다. 자차가 있어서 이동이 수월한 윤경이 내가 사는 동네로 왔다. 우리가 고른 저녁 메뉴는 타코였다. 음식에 대한 후기는 좋지만 긴 웨이팅 시간으로 워낙 유명했던 식당은 주차가 불가능했다. 윤경의 차를 우리 집 앞에 주차하고 식당까지 걸어갔다.
윤경은 내 키가 작아졌다고 놀렸다. 실은 속으로 나 역시 얘가 컸나, 내가 작아졌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신발 굽이 낮은 거라고 변명했지만, 역시 내 키가 전보다 더 줄었는가 보다. 아무리 윤경이가 나보다 어리다고 하지만 50이 지난 사람이 여전히 키가 자라지는 않겠지.
이삿짐이 들어가기도 전에 윤경이의 새집을 구경하러 같이 갔던 일을 떠올렸다. 너무나 긴 아파트 이름 때문에, 분명 시부모를 못 오게 하려는 의도 아니냐며 의견이 분분했던 그때의 순간들. 벌써 십 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 우리가 알게 된 시간도 십 년이 훌쩍 넘었다는 것.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녀가 사는 아파트의 이름 중 두 글자밖에 모른다.
십여 년 전 우리는 동부여성발전센터의 한 프로그램에서 수강생으로 만났다. 일 년 과정의 원예 교육이었고, 그녀는 내 짝꿍이었다. 개강하는 날, 쭈뼛거리며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서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대부분 자신이 선호하는 자리에 무의식적으로 착석하고, 그 자리는 종강하는 날까지 거의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가장 스스럼없는 친구가 된다.
그때 윤경이는 내 짝꿍이었고, 내 뒷자리에 앉았던 영희까지 셋이 친하게 지냈다. 실습이 많은 수업이라 조원이기까지 했으니 더 가까웠다. 일주일에 하루, 오전 시간을 통째로 함께 보내다 보니 저절로 친해졌고, 수업이 끝난 후, 오후에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때로는 날을 잡아 어딘가로 함께 소풍을 즐기다 보니 어떤 한 시절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그녀들이었다. 가장 자주 만나고 가장 자주 연락을 하고 가장 많이 밥을 먹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잘 알듯이, 일 년의 수업이 끝나고 수료증을 받은 이후, 친밀했던 이들과는 차츰 멀어졌다.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누구도 서운하지 않고 누구도 미련을 갖지 않고 그 이별을 받아 들었다. 드러내기 힘든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했던 영희는 연락이 뜸해지다가 서서히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윤경과 나만 종종 연락을 주고받거나 만나며 오늘까지 왔다. 셋이 다녔던 소풍을 둘이 다니고, 대만으로 여행을 갔고, 고성으로 겨울 바다를 보러 갔다.
저녁을 먹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식당은 대기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새우와 생선, 소고기를 넣은 타코와 나초를 주문했는데 생선이 가장 맛이 좋았다. 뜨거워서 입천장은 데었지만 바삭하고 부드럽고 촉촉했다. 다음에 또 온다면 그때도 생선을 주문할 것 같다.
식당을 나올 즈음엔 대기실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공원을 한 바퀴 산책하고도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카페는 조금 먼 곳으로 나가자고 해서 윤경의 차를 타고 팔당으로 향했다.
내가 아는 여자 중에 가장 운전을 잘하는 윤경이. 호우경보가 발령된 날, 물속을 달리는 것 같은 도로를 달리거나(옆에서 나란히 달리는 다른 차를 보니 바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도로는 물로 가득했다) 세찬 빗줄기 때문에 차선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트럭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만나기도 했고, 눈이 내리는 한계령을 넘었던 날도 있다. 나는 겁쟁이인데 왜 겁이 나지 않았나. 그런 상황에서도 운전을 하는 윤경이의 옆얼굴은 평온해 보였는데, 실은 속으로 겁이 나긴 했었을까.
밖은 어떻든 따듯하고 편안한 차 안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길을 달리면 마음에 잔물결이 찰랑거린다.
강변에 있는 대형카페는 자리의 대부분이 비어있었고, 손님은 드물었다. 평일 저녁, 어두운 강가, 검은 물 위에 강 건너의 불빛들이 어룽거렸다. 매운 연기가 가득한 작은 모닥불 앞에 잠깐 앉았다가 따듯한 실내로 들어가서 대화를 나눴다.
윤경이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만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고백에 대한 그녀의 반응 에도 나는 안도감을 느낀다.
아, 그렇구나.
이런 반응은 실은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이다. 덤덤한 반응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체적으로는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다. 너무 뜨거워서 또는 너무 차가워서 마음이 베인다.
나에게는 아픈 일이 누군가에게는 엄살처럼 보인다. 나에게는 커다란 불행이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불편으로 보인다. 너보다 힘든 사람이 더 많아,라는 말에 상처를 받는다. 너는 나보다 더 힘들구나,라는 동정에도 상처받는다. 서슴없이 선을 넘는 이들이 있다. 타인의 인생에 참견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스라이팅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등을 돌린다. 상처를 주고받고 영영 이별한다.
윤경이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고백도 그 크기가 작아지거나 커지지 않고 그대로이다. 신기하게도 윤경이의 담담함이 그렇지, 실은 별거 아니지, 생각이 들게 한다. 커다란 돌이 닳고 닳아 작아진다.
그런 일이 얼마 전에도 있었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지 못하고 살았던 나는 한 가지에 새로운 관심이 생기면, 조급해지고 충동적으로 보일만큼 일을 추진하고 싶어 한다. 내가 저지르고 싶은 일 중 하나는, 빈티지 소품샵이었다. 앞뒤 생각 없이 당장이라도 가게를 계약할 것처럼 성급했다. 가게의 이름도 정했고, 어떤 것을 팔고, 어떻게 인테리어를 할지 궁리하느라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즈음, 이런 계획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신나게 떠들었다. 부정적인 피드백이 대부분이었다. 경기가 안 좋다. 하루에 얼마의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했다. 누구는 몇 억을 날렸다. 당근에 보면, 빈 가게 매물이 수두룩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윤경이에게도 나의 계획을 떠들었었다. 나는 빈티지 소품샵을 한 번 해볼까 해. 아마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시작하려고.
윤경이의 반응은 달랐다. 담담한 그녀답게 역시나 안 될 거라는 부정적인 피드백은 없었다. 그뿐이어도 고마웠을 것이다. 그 말을 하고 며칠 후, 그녀는 자신이 아는 소품샵 사장을 소개해 주었다. 우연히 소품샵을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 소품샵 사장이라고 했다. 윤경이와 함께 방문한 소품샵에서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하고 몇 개의 물건을 구입했다. 소품을 구입하는 경로나, 진열된 소품에 얽힌 사연도 듣고, 소품샵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뮤지컬 연출을 했던 과거가 있고 지금은 고양이 두 마리와 동거하는 중년의 싱글여성. 밤에 혼술을 즐긴다는 그녀는 안주값만 벌면 된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나는 윤경이 덕분에 소품샵 사장님의 일상을 간접 체험하고 돌아왔다.
내가 창업하겠다고 선언했던 날은 이미 지나갔고, 현재의 나는 여전히 소품샵을 열고 싶다는 꿈은 있지만, 조금 시큰둥한 상태이다.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구멍가게 할머니 사장님으로 짠하고 변신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도 자신의 생각을 꺼내놓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자신이 아는 소품샵으로 데리고 갔던 그 마음이 고맙다. 그런 마음 덕분에 우리는 멀어지지 않고 편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후 10시가 지나고 밤의 피크닉은 끝났다. 집 앞에서 나를 내려주고 윤경이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또 자신들의 자리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다가 어느 날 문득, 그러니까 일 년에 한두 번쯤 또는 그보다 더 드물게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고 그러다가 피크닉을 즐기러 어딘가로 떠나겠지.
땡볕이 내리쬐는 길을 걷다가 문득 만나는 그늘처럼 친구들과의 우정은 귀하다. 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위에 그런 그늘이 아직 남아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걷는 동안, 덜 지칠 것 같다.
갑자기 잡힌 약속인데 윤경이는 동그랗게 묶은 비닐봉지 여러 개를 선물로 가져왔다. 단감과 사과와 갓 담근 초롱무김치 그리고 송이버섯 한 개. 산에서 직접 채취한 버섯을 윤경이의 올케가 친정 부모님께 받았고 그걸 올케가 윤경이의 어머니에게 나눠드렸고 윤경이의 어머니는 그 버섯을 딸에게 나누었다. 그렇게 건너 건너온 송이버섯 한 개는 나에게 와서 어느 날, 점심에 구워 먹었다. 실온에 며칠 두었던 무김치도 맛있게 잘 익었다. 윤경이의 늙은 엄마가 만든 김치는 딸의 친구까지 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