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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전동서 복이 있다

by 함지연

거창으로 일박 이일 여행을 다녀왔다.

용산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출발한 후 관광지를 여러 군데 들르고 농촌체험마을에서 일박을 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인구소멸지역인 농촌 활성화를 위한 지원사업으로 진행되는 여행이라서 개별 여행보다 여행 경비도 저렴하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후, 몇 군데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모두 만족도가 높았다.


여성들만 지원자격이 있는 소규모 패키지여행.

1인 여행객이거나 2,3인으로 구성된 여행객들이 주로 참여한다.

친구나 직장동료나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 동행이 누구이든 같은 성별만 가능하다.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먹고 거창에 도착할 무렵,

우리 이외의 다른 여행객들은 모두 모녀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중년의 엄마와 청년세대인 딸이었다. 중년의 엄마들은

한 명 또는 두 명의 딸과 함께 여행을 떠나왔다.

신기한 마음에 나중에 친구에게 전했더니, 부럽다고 한다.

딸과의 여행이라니,

딸 둘과 함께 왔다는 그 엄마가 특히 부럽다고 한다.


일박 이일 동안, 함께 다니며 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같은 숙소를

사용하다 보니, 실제로 나이 들어가는 엄마를 살뜰하게 챙기는

딸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아들만 둘인 나의 동행도 그녀들이 부러웠을까.

우리는 방 두 개와 거실이 있는 숙소를 배정받았는데, 다른 방에 묵은 모녀팀 방에서는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밥을 먹을 때 나이를 물어보니 나의 첫 딸과 나이가 같다.


모든 여행객들이 모녀팀이다 보니, 우리의 관계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번갈아 가며 우리는 어떤 사이냐고 물었다.

모녀팀 같지는 않고, 친구팀이라기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존대하고, 자매팀이라기엔 어디 한 구석 닮은 곳이 없으니 짐작하기가 어려웠겠다.


동서지간이에요.


그렇게 대답하고 속으로 혼자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데 현동서는 아니고 전동서에요.


동서끼리의 여행이라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는 반응에 내가 더 놀랐다.

동서끼리 여행을 하는 것이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

실은 그냥 동서도 아니고 전동서라고 하면 과연 어떤 반응일까.

당연히 더 놀라겠지.

궁금해서 나중에는 커밍아웃을 해버릴까 짓궂은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모녀팀으로만 구성된 여행 동행을 신기해했듯이,

아마 그녀들도 나중에 우리를 이렇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딸과 함께 거창으로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는데, 글쎄 동서끼리 여행을 온 팀이 있더라.

하긴 여행을 인솔했던 가이드 역시 친정 식구들끼리 온 경우는 흔해도, 시가 식구, 동서지간끼리의 온 경우는 우리가 처음이라고 했다. 여행을 함께 다니던 한 사람은 우리의 관계에 대해 알고 난 후, 자신은 손윗동서와

절연했다고 털어놓았다. 시부모가 돌아가신 후, 얼굴을 안 보고 산 지 오래되었다면서 친한 우리가 신기하다고 했다.

내가 동서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나이는 스물여섯 살.

내 딸들보다 어렸을 때다.

그리고 나의 30년 가까운 결혼 생활 중,

걸어서 오갈 만큼 물리적으로는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도

여행을 한 것은 단 한 번이다.

전 시모의 팔순을 기념해서 떠났던 제주도 여행이 유일하다.

화목하지 않은 시가 환경에서, 더군다나 혈육도 아니고 성씨가 다른 여성들의 정서적인

친밀함을 갖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여 법적인 가족이 되고, 비슷한 상황에 공감하며 자매처럼 지냈다.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워 수다를 떨다가 잠을 자고, 단풍이 예쁘게 든 풍경 안에서

사진을 찍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끊이지를 않았을까. 버스 안에서도 쉬지 않고 떠들다가, 조금 조용히 해주실래요, 이런 지적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기 전의 마지막 일정인 온천탕에서 목욕을 했다.

부끄러워서 그동안, 목욕을 함께 한 적이 없는데, 몸은 늙어 남에게 보여주기 꺼려지고

전동서지간이 되어서야 목욕을 같이 했다. 내가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55 사이즈가 될 때까지는 누구와도 목욕탕을 같이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이것도 조금 웃픈 경험이다.


남성 위주 사회의 구성원이었고, 친정과의 교류가 쉽지 않았기에,

혼인기간 내내 여동생과 여행을 했던 일이 없다. 동서에게 물어보니, 그녀 역시 그렇다고 한다. 거주지가 멀었고, 집안의 대소사에 다 같이 모이는 일은 있었지만, 명절이나 부모님의 생신, 제사 등의 행사 아니고는 자매가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작 친자매와는 단둘이 여행을 해보지 못한 우리는 전동서지간이 되어서 여행을 떠나왔다.


동서와의 여행도 놀랍지만, 전동서와의 여행은 얼마나 획기적인가.

한번 형님은 영원히 형님, 이라는 전동서에게 나는 계속 장난을 쳤다.


우리 너무 헐리우스 스타일 아닌가?

내 전 시동생은 집에서 혼자 뭐 하고 계셔?


계속되는 나의 우스갯소리에 전동서는 어질어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전동서. 내가 요즘 남성호르몬이 많아졌나 봐. 갱년기가 먼저 온 전형님을 좀 이해해주기를.


우리는 마치 조선시대 어디쯤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사회와 어쩌면 화성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는 사회 사이에서 변화에 적응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갈 것이다..

세상이 변하는데, 관계도 바뀌는 건 당연한 거지.

그러니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누구와 함께 여행을 떠날 것인지 고려할 대상 중에,

전동서 한 명쯤 있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안 되는 경우가 어딨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지.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어쩌면 내가 속해있던 이상하고 괴상한 세계관 속에서

마침내 탈출했을 때, 자유와 함께 허탈함이 있었다.

나의 30년 노력이 헛수고였고 애를 쓰며 지켰던 관계들이 일순간에 무너졌으니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지금까지의 삶 중 절반이 통째로 날아간 기분이다.


이혼소송은 끝이 났고, 30년 동안의 인연들은 모두 악연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게 전동서복은 있는 것 같지 않나요, 하하하.

부모복, 자식복, 돈복 있는 사람은 많지만, 전동서복 있는 사람은 흔히 보기 어려올걸요. 그 보기 힘든 사람이 바로 저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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