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면서 머릿속에서 떠다니는 할 일 목록에 한숨이 푹 나온다. 정신없이 어질러진 거실, 아이 셋 목욕과 설거지까지 끝내야 재울 수 있다. 게다가 지금 시각은 8시! 평소보다 저녁을 늦게 먹은 탓에 시간이 늦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더 조급하다. 평일에는 어차피 남편이 늦게 오니 나 혼자 어찌어찌한다. 의지할 곳이 없으니 정신력으로 하는 듯싶다. 하지만 이번 주말에 남편에게 기댈 수 있다는 나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2주간의 야근 때문에 무척이나 피곤해진 남편은 낮 시간 동안 계속 잤기 때문이다.
주말 저녁이면 남편은 축구를 간다. 일주일 중 그가 제일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일 것이다.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못 나가고 있다.) 바쁜 저녁 시간에도 돕지 못해 미안해하며 남편은 슬그머니 축구를 하러 집을 나섰다. 머리로는 피곤하고, 유일한 취미를 즐기는 그를 이해했다. 매주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나 보다. 아이들에게 툭툭- 짜증내고 있는 나를 보니. 아이들에게 빨리 정리하라고 큰 소리로 불호령을 내렸다. 괜한 불똥은 항상 아이들에게 튄다. 그럼에도 내 속은 시원하지 않다.
왜 이렇게 화가 나지? 설거지를 하면서 차분해보려 부단히 애썼다. 화라는 감정 뒤에 어떠한 욕구가 감춰져 있는지 보았다. 나의 욕구는 '빨리 누워 쉬고 싶다.'였다. 그랬구나, 일단 그저 내 욕구를 인정해주고 셀프 공감을 해준다. 인정만 해줘도 내 마음은 한결 좀 누그러진다. 하지만 빨리 눕고 쉴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느니 집안일을 좀 내려놓기로 했다. 고무장갑을 벗었다. 남편에게 좀부탁하면 되니까. 아이들에게도 나의 마음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얘들아, 엄마가 짜증내서 미안해. 엄마는 빨리 누워서 자고 싶은데,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 엄마가 설거지할 동안 너희들이 정리를 좀 해줬으면 좋겠어." 엄마의 진심 어린 사과에 아이들은 괜찮다고 나를 되려 토닥여준다. 엄마를 돕자며 재빠르게 정리를 하고, 양치를 하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간단하게 목욕을 시키고 침대에 누우니 그제야 숨이 편히 쉬어진다.
욕구란 "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바라는 일"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다. 화, 짜증, 분노와 같이 부정적인 감정의 이면에는 좌절된 욕구가 숨어 있다. 감정은 우리의 욕구를 알려주는 지표와도 같다. 그러기에 감정을 회피하거나 숨겨서는 결코 우리의 욕구를 알 수 없다. 욕구를 외면하는 것은 나 자신을 외면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반복적으로 외면하다 보면 결국에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르게 된다. 육아를 하면서 번번이 찾아오는 부정적인 감정에 자책하는 대신, 그 감정 뒤에 숨겨진 나의 욕구를 먼저 인정해줘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