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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콩 Sep 07. 2020

세상에 나쁜 엄마는 없다










집에 있기 너무 답답하여 아이들과 근처 갯골 공원에 다녀왔다. 요즘 동네에서는 찾기 힘든 모래 놀이터가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도 모래 놀이터를 참 좋아한다. 신발은 벗어던지고 도착하자마자 맨발로 뛰어다니는 자유로운 영혼들.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몇몇 부모와 아이들이 왔다.


그런데 놀다 보니 큰 소리가 나서 자연스레 보게 되었다. 한 엄마가 아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앞뒤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다른 데 가자고 했는데 아이가 싫다고 했나 보다. 그 엄마는 "너만 재밌게 놀자고 왔냐고!"라고 소리 지르며 화를 내고 있었다. 놀이터의 분위기는 정말 싸- 해졌고 남편은 무안했는지 "소리 지르지 말라고.."를 연신 이야기했다. 결국 그 엄마는 씩씩거리며 혼자서 걸어가고 그 뒤를 풀이 죽은 아이와 아빠가 뒤따라갔다.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오랜만에 나와서 모래 놀이터를 만나 즐거웠을 텐데.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오랜만에 가족들과 바람 쐬러 나왔는데. 그럼 그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엄마는 얼마 못가 아이의 손을 꽉 잡았다.
너무 미안했을 것이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한 것을.




수많은 육아서에서 엄마는 소리 지르면 안 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던가? 그 엄마를 보면서 나는 예전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참다 참다못해 폭발하면 이성을 잃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있는 나를 보며 분노 조절 장애인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육아서를 보면 "아.. 그래, 차분하게 말해야지." 다짐하면서도 실전에서는 여전히 소리 지르는 나를 발견하면 또 한참을 괴리감에, 자책감에 힘들어하곤 했다.



"나는 왜 안될까..?"
"우리 아이들이 나를 보고 배우면 어쩌지?"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고 난 후 시원함은 잠깐이고 더욱 우울해졌다.



나는 내가 화나는 순간들을 생각해 봤다. 나는 특히 아이들이 밥을 잘 안 먹을 때 화가 많이 났다. 그럼 왜 화가 나지? 결국엔 어렸을 적 나의 상처 지점에 맞닿아 있었다. 워킹맘이었던 엄마 대신 주로 엄한 할머니 밑에서 자란 나와 동생은 밥 가지고 많이 혼났다. 엄한 할머니 밑에서 충분히 나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조차 먹히지 않았기에 나는 항상 내 감정을 숨겨야 했다.



자연스레 아이들에게도 내 화나는 감정을 꾹꾹 누르기 바빴다.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는 건 너무 익숙한 일이니까. 하지만 감정은 참는다고 끝까지 참아질 수 없는 그런 것이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인정하고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더 이상 꾹꾹 누르지 않고 서툴지만 조금씩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예전에 화가 나면 시한폭탄 같던 내 마음을 어느새 나는 조금씩 조절하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와 나는 나쁜 엄마일까? 세상에 나쁜 엄마는 없다. 지치고 아픈 엄마만 있을 뿐. 나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충분히 인정하고 슬퍼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는다면 분노는 걷잡을 수 없고 통제하기 힘들다. 우리의 무의식 바닥에 있는 상처기 때문에 아이가 시간의 여유를 주지도 않고 툭- 툭- 칠 때마다 반사적으로 튀어 올라오기 때문에. 폭풍우의 한가운데 있어도 정신만 잘 차리면 된다.



육아를 통해 성장한다는 말도 이 말과 같다. 아이는 쉬지 않고 나의 상처 받은 지점을 건드린다. "엄마, 엄마의 상처를 봐요."라고 말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나의 상처 받은 지점은 어디일까? 어느 순간 화가 많이 나지? 분명 거기에는 상처 받은 어린 내가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손 내밀고 안아줄 때까지.



그림 육아 에세이  @hamk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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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올린 글을 조금 다듬어 웹툰과 함께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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