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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콩 Oct 14. 2020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육아'와 '자기 계발' 사이에서의 균형 

어려서부터 욕심이 꽤나 많은 편이었다. 방학이 시작되면 나의 생활 계획표는 빼곡하게 채워졌다. 끝까지 실천한 적은 몇 없지만 빽빽한 계획표를 보면 언제나 배부른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무엇을 배워봐야지.' 마음속에는 하고자 하는 욕심은 그득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몸뚱이의 실행력은 영 꽝이다.




꿈 많던 아이는 꿈을 잃은 어른으로 자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쫓아 몰입하며 시도해보던 어린 시절과 달리 나는 내 안에 한계를 긋고 있었다. 사회가 정해준 대로, 타인이 설정한 기준에 맞추어서 나를 줄 세우기 바빴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사회가 정해준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명 '경단녀(경력단절 여성)'가 되면서 그 어떠한 기준에도 나를 더 이상 맞출 필요가 없어졌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일도 없었다. 오직 아기와 나에게만 집중하면 되는 시간들. 엄마가 되어서야 나는 다시금 나를 바로 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하나씩 거창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일들을 시작했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그 누구의 인정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것들은 내 삶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아이들 생각 말고도 내 글감, 아이디어를 하루 종일 틈틈이 생각했다. 글과 그림을 그린다는 건 단조로웠던 나의 일상의 순간들을 특별하게 본다는 일이다. 그냥 지나쳤을 법한 일과 장면들도 유심히 보게 되고, 그 안에서 어떠한 메시지를 얻기도 한다. 일상이 더 이상 일상이 아닌 순간이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해야 할까. 여러 SNS를 다루다 보니 소통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주로 새벽에 일어나서 글과 그림을 쓰는데 시간을 다 할애한다. 그렇다면 하루 중 짬을 내어 SNS에 들어가 소통을 해야 하는데, 양이 많아질수록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화장실은 나의 유일한 휴게소다)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고 시간이라도 넉넉하면 모를까 가정보육을 하는 나에겐 턱없이 시간이 부족했다.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을 보니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나의 성장과 아이들 모두인데, 그 균형이 깨져 있었다.




 <천천히 자라는 느티나무>라는 동화책의 주인공 민수는 조금이라도 느린 걸 답답해하는 친구다. 소풍날 친구들 손을 잡고 천천히 가는 게 싫어서 민수는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혼자서 빨리 뛰어간다. 공원 입구에 도착한 민수는 소풍 시작도 전에 지쳐버렸다. "빨리하다 보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못할 때도 있단다." 지친 민수에게 다가온 선생님이 남긴 말이다. 남들처럼 빨리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나는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그보다 시간이 좀 걸리지만 꾸준히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빨리'만 생각하다가 정말 중요한 걸 놓치는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더딘 것 같은데, 남들은 척척 잘만 나가는 것 같을 때 조급해지곤 한다. 하지만 분명 이들에게도 숙성과 인내의 느린 시간은 존재했다. 가속도가 붙은 지금의 모습만 보고 더욱 다져져야 할 내 현재의 모습은 외면한 채 성과만을 바래서는 안 된다. 나와 아이의 가운데에서 균형을 잘 잡는 건 어렵다. 자칫하면 나에게 너무 쏠릴 때도 있고, 아이들에게만 온통 쏠리기도 쉽다. 그럴 때마다 다시 무게를 맞춰야 한다. 조금 더 무게가 쏠린 쪽에서 덜 쏠린 쪽으로 중심을 실어주면 된다.




나에게 너무 중심이 쏠릴 때 내가 쓰는 방법으로는 핸드폰으로 SNS 하는 시간을 나름 정해놓고 하는 것이다. 수시로 보지 못하도록 알람을 모두 해제해놓는다. 나는 카카오톡부터 해서 모든 SNS에 새 알람이 울리지 않는다. 내가 직접 SNS에 들어가야만 새 알람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이래도 무의식적으로 자주 보게 되는 날에는 아예 핸드폰을 안방 안에 둔다. 회사에서 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잠시 핸드폰과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와 집안일에 집중해본다. 아이들과 어디든 밖으로 나가는 것도 좋다. 밖에서는 집안일에서 해방되기에 온전히 아이들에게 집중해줄 수 있다. 아이와의 시간을 일부러라도 늘리려 노력한다.




아이들 일에만 너무 관심이 쏠릴 때는 일부러 좋아하는 책을 곁에 놓는다. 부엌 아일랜드 식탁 위에 떡하니 두어 지나다니면서 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아이의 낮잠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짧더라도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한다. 아이와 나 모두 소중하기에 어떠한 것 하나 놓칠 수 없다. 대신 이렇게 균형을 맞추어 가면 남들보다는 느릴 수밖에 없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이 어디 쉬울까. 대신 나에게는 '육아'라는 다채로운 경력과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아줌마만의 깡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반 고흐도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하기까지 미술상, 교사, 목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여러 삶을 경험하고 탐색하는 이 '샘플링 기간'이 길수록 인간은 자신의 길을 찾기에 능하다고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의 저자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서둘러 전문가가 된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 그 이상을 보지 못한다. 인간에게 '늦음'이란 뒤처짐과 아둔함이 아니라 현명함과 지혜로움을 향하는 유일한 지름길, 조금 늦어진 삶이야 말로 진짜 인생이라고 한다. 조금 느리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해가면서 나만의 화풍을 만들어 가는 이 과정을 진심으로 즐기면서 살고 싶다.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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