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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콩 Oct 07. 2020

형제자매 싸움, 지혜롭게 대처하는 엄마의 역할

엄마는 해결사가 아니다

"엄마!! 언니가 장난감 뺏어갔어!! 엉엉엉..."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의 다리품에 쏙 들어와 서러움을 폭발시키는 둘째 아이. 둘째 아이가 가지고 있던 장난감을 첫째가 뺏어간 모양이다. 토닥토닥 우는 아이를 달랜 후 '속상하겠다. 언니한테 가서 달라고 말해봐' 아이에게 조언을 해준다. 그럼 멀리서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첫째 아이가 큰 목소리로 외친다.

"엄마!! 내가 뺏은 거 아니야. 원래 내가 먼저 가지고 있던 거라고!"

엄마는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 걸까? 공평하게 대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초보 엄마 시절 내가 많이 실수했던 것 중 하나는 엄마가 나서서 재판관이 되는 것이었다. '이거는 이러해서 이러하고, 저거는 저러해서 저러하니깐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 어때?' 의문형으로 끝나지만 결국 엄마가 다 정해서 아이들에게 통보하는 것과 별 다를 게 없다.




아이들 간의 다툼은 형제자매가 있는 집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상>이다. 일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것만큼 싸움도 자연스러운 것임을 표현하고자 함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사이좋게 놀았으면 좋겠지만, 옛말에도 그러하듯 아이들은 정말 싸우면서 큰다. 아니, 싸우면서 배우는 것이 많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조율하는 법, 내 욕구를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 상대방의 의견도 존중해줘야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사회성을 위한 교육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일 어려운 일은 아이들 사이의 싸움을 중재하는 엄마의 역할이다. 누구 한 명 속상하거나, 마음이 다치진 않는지 신경 쓰고 살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재판관을 자처하고 나서면 엄마는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판결을 땅땅- 치고 내리면 어느 한쪽은 분명 재판 결과에 불만을 가지고 이의 제기를 외치기 때문이다. 엄마도 그럼 덩달아 화가 난다. 나보고 어찌하란 말인가. 특히나 하루 중 싸우는 횟수가 잦은 날에는 엄마도 지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왜 자꾸 싸움이 일어나는 걸까? 어른도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예민해진다. '나 오늘 건들지 마쇼'라고 이마에 써 붙여놓은 것처럼 날카롭게 날이 선다. 그런 것처럼 아이에게도 유독 힘든 날이 있다. 그래서 자주 마찰이 일어나는 날. 그런 상황에서는 결과만을 가지고 얘기하기보다는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낫다.




재판관이 아니라면 그럼 엄마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정말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저 아이들의 속상한 감정을 들어주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해결사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면 깜짝 놀랄 정도로 훌훌 털어버리곤 한다. 한 번은 둘째 아이가 언니의 부당한 행위를 토로하며 울면서 나에게 달려왔다. 평소 같았으면 첫째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너 왜 동생한테 이렇게 하니! 어서 사과해."라고 말했을 텐데, 이 날은 둘째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의 마음에 진심으로 공감해주었다. "저런, 그래서 정말 화가 났구나. 엄마 같아도 속상할 것 같아. 언니가 왜 그랬을까." 단지 공감만 해주었을 뿐인데 아이는 울음을 멈추더니 '언니'를 부르며 다시금 아무렇지도 않게 놀았다. 나는 그 당시 상당히 이 일이 충격적이었다. 단지 공감만으로 아이의 감정이 누그러지다니!   








공감의 힘은 참 강하다. 이 공감능력을 이용해서 첫째 아이에게도 대화를 시도해봤다.

엄마 : "아까 정말 동생 때렸어?"

아이 : "동생이 먼저 나 때렸어."

엄마 : "아 그랬구나. 동생이 왜 때렸을까?"

아이 : "자기한테 장난감 안 빌려 준다고 그러지 뭐."

엄마 : "동생이 때려서 속상했구나."

아이 : "응.."

엄마 : (아이 둘을 바라보며) "OO(첫째)는 동생이 먼저 때려서 화가 났고, ㅁㅁ(둘째)는 언니가 장난감을 안 빌려줘서 화가 났구나. 그런데 얘들아, 속상한 감정이 들어도 때리는 건 나쁜 표현이야. 어떻게 그럼 표현해야 하지?

아이들 : 때리지 않고 말로 표현해.

엄마 : 그래 맞아. 잘 아네. 둘이 다시 한번 대화해볼래?

둘째 : 때려서 미안해. 그런데 장난감 언니 혼자만 가지고 놀면 나도 속상해.

첫째 : 나도 때려서 미안해. 이건 근데 나에게 소중한 거라서 망가질까 봐 못 빌려주겠어. 대신 이건 괜찮아. (다른 장난감을 건네준다.)




만약 내가 공감 대신 재판관의 역할을 선택했더라면 억지스러운 화해를 이끌어 냈을 것이다. '언니가 왜 동생을 때리니'부터 시작해서 '장난감은 같이 가지고 놀아'라며 첫째의 감정은 묵살했을 것이 뻔하다. 아이들에게도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낼 권리가 있다. 언니라고, 동생이라고 양보하거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걸 요구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착한 아이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감정이 있는 사람 같은 사람을 키우는 것.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할 줄 아는 건강한 아이를 부모들은 소망한다. 그러려면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계 설정은 그 다음이다.




<싸우지 않고 배려하는 형제자매 사이>라는 책에서는 "가정은 인간이 처음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곳이다. 부모가 된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형제끼리 치고받고 싸우면서도 어떻게 서로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우리의 영원한 사랑이고 선물이니까..."라는 말이 나온다. 부모가 어떻게 아이들을 대하느냐에 따라 형제자매의 사이가 결정된다. 늦은 시기는 없다. 아이들이 좀 컸어도 부모의 대처법이 변한다면 아이들의 관계 또한 개선될 수 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아이들이 싸우는 소리에 엄마도 지치고 화나기 쉽다. 그때마다 부모로서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다. 부모도 힘든 날에는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주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힘든 날에는 나부터 토닥이고, 나를 먼저 추스른 후 아이들의 감정을 수용해보자. 이론처럼 잘할 수 있는 날도 있지만 그대로 잘 안 되는 날도 있는 법이다. 나도 엄마이기 이전에 감정이 있는 사람임을 인정한다면 한결 엄마의 무게감도 가벼워진다. 지금 재판관의 역할을 맡고 있다면 해결의 열쇠를 슬며시 아이들에게 쥐어 줘 보자. 어리다고 생각한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반짝이는 해결 방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안 싸우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잘 다툴 줄 아는 아이들로 커나가도록 오늘도 엄마는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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