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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Dec 04. 2018

비탈진 음지

조정래 장편소설. 1973년 발표 2011년 전면 개작. 해냄출판사

머슴살이로 잔뼈가 굵은 복천 영감은 아내가 병고를 겪다 죽고, 있던 재산마저 다 없어져 살길이 막막해진다. 급기야 이웃집에서 빌려온 소를 팔아 야반도주를 한다. 자식 남매를 데리고 무작정 상경을 한 것이다. 큰아들은 아내가 죽기 전 돈을 벌어온다며 서울로 떠난 후 두어 번 소식을 준 뒤로 감감무소식이 되고 제 어미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기실 큰아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고 남은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상경을 했지만 서울살이가 녹록지 않다. 가진 게 몸뚱이뿐이라 지게벌이라도 할 요량으로 나섰다가 패거리들의 텃세에 밀려난다. 겨우 만든 지게는 패대기쳐서 박살이 나고 패거리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물러난다. 훔친 소를 팔아 가지고 온 돈을 다 털어 리어카 행상으로 시작한 땅콩장사가 잘 되가는 듯했는데 사기를 당하고 리어카를 통째로 잃어버린다. 며칠 끙끙 앓고 난 뒤 시작한 것이 칼갈이 일이었다. 칼갈이에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그럭저럭 살만하다 싶은 어느 날 그날 번 돈을 꺼내 들고 기분 좋게 세고 있다가 날치기를 당하고 날치기를 뒤쫓아 가다가 차에 치이고 쓰러진다. 복천 영감은 다리 하나를 자르고 깨어난 병상에서 두 남매를 끌어안고 허망한 삶에 대해 푸념을 하면서 책은 마무리된다.    


“... 이적지 살아온 꼬라지가 비렁뱅이 짓이나 진배읎었응께. 목발 짚은 한쪽 다리 읎는 꼬라지넌 영축 읎는 빙신잉께로, 비렁뱅이맹키로 살 팔짜라먼 아조 비렁뱅이가 되야부는 것이 편헐 것잉께. 사지 멀쩡헌 몸땡이로 차마 비렁뱅이 짓거리 못헌 것이었는디, 인자 표나는 빙신이 됐응께로 비렁뱅이로 나서는 거여. 한 집서 10원씩만 동냥혀도 열 집이먼 백 원이고, 백 집이먼 천 원 아니라고. 칼 가는 것보담 낫구만 그랴. 비렁뱅이 짓거리 혀서 묵고 살아도 비렁뱅이 짓거리 허는 사람만 비렁뱅이제 그 자석덜언 비렁뱅이가 아닌법잉께. 비렁뱅이 되라고 비렁뱅이 짓거리 혀서 먹여살리는 것이 아니랑께. 이 애비가 무신 짓얼 혀서라도 느그덜 밥 안 굶기고 살릴 팅께...”    


열심히 일을 해도 비렁뱅이로 사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는 현실에 대한 자조 섞인 푸념으로 70년대 우리 사회의 고단한 삶을 보여준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들춰내 우리 앞에 보여준다. 사실 70년대나 그 후 거의 50년이 지난 오늘에나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OECD 국가로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의 위상이 외견상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렇게 다양한 어두움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장탄식이 나온다. 복지사회로 가는 길이 아직 아득하다는 느낌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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