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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Jan 28. 2022

훈풍薰風

탐스럽게 익은 풍요로운 결실들 

그리고 눈부시게 화사한 햇살

가슴까지 따뜻하게 데워 주었던 따순 기운들 


가슴 한켠에 쓸어 담아두었던 지난 가을      

한기 가득한 동토(凍土)의 밤들을 

가벼이 넘겨주리라 기대하였던 그대로 

얼어붙은 기나긴 겨울밤 지새워 가는 내내 

하나씩 꺼내 들고 

만지작거리며 얼굴 부비며 

설움도 삼키고 

괴로움도 털어내고 

외로움도 덮어 누르며 

오래도록 내내 따순 가슴으로 

숨 죽여 또 다른 기다림에 가슴을 연다.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후려치고 있지만 

느껴지지 않는가! 

아아! 그렇다! 

봄의 전령사가 벌써 훈풍(薰風)으로 다가왔다.      


대지는 꿈틀거리고, 

추위에 떨며 부족한 먹이를 찾아 

분주히 날갯짓을 퍼득거리는 

새들도 아는 게다. 

훈풍이 가까이 왔음을.     


사람들 지나간 자욱은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 

길 가운데 새겨진 

그들의 이름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사람들은 알지 못해도 

그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 

햇살과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풀이파리와 나목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헐거운 가슴으로 흘려 놓은 

그 아픔과 탄식과 슬픈 눈물 자욱들이 

숨 가쁘게 헐떡거리고 있음을 

그들은 바라보고 있다.     

 

따순 바람이 불오고 있지 않느냐고 

새들도 함께 뾰삐쫑 지지배배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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