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by 주용현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만나서 툭툭 던지는 한마디에 진한 정이 담겼습니다. 대화가 좋아서 경황 중에 대접도 못했습니다. 돌아간 뒤로 아내한테 핀잔을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많은데 아무것도 대접을 못했다고... 그런데 사실 짧은 시간에 나눌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마음에는 있는데 행동으로 보이기까지 저는 많이 굼뜹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목사로서 건실하게 목회하는 친구가 많이 부럽습니다.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야 모르지만 하나님을 향한 구도의 마음가짐을 엿볼 때마다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낯간지러워서 이런 글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친구가 글을 썼기에 가슴에 있는 대로 몇 자 댓글을 썼습니다. 친구... 친구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그만큼 이 땅에서의 삶이 곤고하고 험난하다는 것을 뜻하겠지요. 엄밀한 의미에서 세상에 참된 친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죄 아래, 죄의 방식에 매어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자들 사이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도우시며 중재하실 때, 그리스도의 중보하시는 은총 안에서만 참된 친구 관계는 성립합니다.


친구라 부른다 해서 다 친구가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죄 아래 사는 인생은 언제나 참된 친구를 갈망합니다. 죄 아래 있는 한에는 극복할 수 없는 갈망을 끝없이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지푸스의 고역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끊임없이 갈망하고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좋아하고 혹은 목숨을 대신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죄악 된 방식에도 그렇게 죄악 된 모습으로 자기를 내어주는 우정이 있기는 하더군요. 그러나 그런 모습은 자신도 속는 것이고 남도 속이는 것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죄악 된 방식의 친구관계는 다분히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이 배경에 깔리기 때문입니다. 궁극의 지향 점은 자기만족과 이득을 취하는 데 있습니다.


당신이 친구를 친구로 여기는 까닭은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를 누리기 때문이고, 당신이 친구를 위하여 자신을 낮추고 베풀려는 마음가짐을 가졌기 때문이며, 언제든 낮은 곳을 향하여 자신을 굽히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마음가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친구란 이렇게 하늘로부터 주어진 은혜에 의존하는 것이고, 하늘의 뜻을 이 땅의 우리 안에서 이루고자 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늘 아버지의 거룩한 사랑 안에서 그 사랑으로 함께 나누려 할 때 성립합니다.


그런 의미로 우린 친구가 맞습니다. 그런 친구 관계를 항구적으로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린 연약하고 가변적이어서 언제 우리 안에 있는 육의 본성이 발동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육의 방식은 항상 이기적이고 이해타산 적이어서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비록 친구라 할지라도 이용하는 도구로 만들어버리며 그런 행동 뒤에도 자기변명과 그럴듯하게 포장한 가면 속에서 사악한 웃음을 갖기 마련입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이 죄와의 투쟁을 계속하지 않는 한 참된 친구관계를 지속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는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고, 부단히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참된 친구가 되셔서 항상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내어주시는 주께서 우리를 도우사 변하지 아니하고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하늘의 은혜 아래 평강을 누릴 수 있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친구가 좋아하는 말 아쉬레~ 나 또한 아쉬레~ 내가 좋아하는 Coram Deo!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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