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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Dec 16. 2017

햇살 좋은 날

마노瑪瑙 주용현

오랜만에 화창한 날씨에 환한 햇살 놓칠세라
아내는 베란다 창문 활짝 열어젖히고 빨래도 널었다.
그런데 지지배배 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던 녀석들이
오늘은 아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대붕시 벌려놓은 광주리에 이게 웬 횡재냐 싶었으리라
편안하게 앉아 다 뭉개 놓고 여기저기 쪼아 파먹은 것도 모자라
널어놓은 수건 빨래 위에 앉아 그야말로 편안하게 퍼질러 놓았다.
여기저기 얼룩진 수건을 바라보며 아내는 주절주절 새들을 향해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악담을 뱉어놓는다.  



아내) 오메 이 징한 것들이 해꿎이를 다 했능갑네!
그냥 곱게 쳐묵고만 갈 것이제 이것이 머시여!


나) 허허! 그냥 본능대로 한 것뿐이랑께!
그거 가지고 뭐 그리 깊은 시나리오까정 써분당가!


아내) 아니여! 새들도 해꿎이 한당께!
당신은 암것두 모름시롱 그라네!
오메 이 잡것들이 먼 짓을 해놨당가!


오늘 볕 든 우리 집에 새들이 잔치 벌였다.
아침에 해 널은 빨래 다시 세탁기에 넣고
오랜만에 활짝 열었던 창문 모다 닫으며
아내의 모진 가슴에 생채기 하나 생긴다.


(아내에게 대놓고 말했다간 또다시 퉁박 맞을 게 뻔한 노릇이기로 
나 혼자 속으로) 어허! 그게 세상 사는 일인디 뭐 그리 대수라고
사람이 맘을 곱게 쓰믄 모다 좋게 뵈는 법이여!
그냥 새들한테 좋은 일 했다 생각하게나
날마다 창밖에 와서 지지배배 지저귀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준 대가 치른 요량 하게나


햇살 좋은 날 베란다에 자연의 소리가 질펀하다.
대붕시 파먹어 대박 맞은 새들이
즐거이 퍼질러 싸놓은 분비물로 얼룩진 빨래에
자연의 향취가 질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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