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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Dec 30. 2017

해는 저물고

설그럭 설그럭 긴 밤과 함께 먹던 동치미
시린 가슴으로 이가 아리도록 시리게 먹던 그 세월


희부연 달빛에 걸린 세밑의 부시시한 아이들 눈망울
등줄기 구들장에서 지지직 타들어가도록
아버지의 고달픈 삶이 녹아내리던 기나긴 동지섣달
밤새 흩뿌리던 진눈깨비 속에 오만가지 하늘의 복이 내려온다.


허술한 문풍지 울어에는 소리와 함께 빌고 또 빌며 
그렇게 저무는 한해를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함께 살았다.


동치미 한 조각 입안에서 서걱거리는 오늘 밤
달빛 춤추는 창가엔 오래된 그림이 환영처럼 흔들리고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하늘에서 굽어 보고만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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