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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Jan 03. 2018

아들의 훈련소 퇴소식記

  수백 킬로미터의 먼 길이면 어떻고 비바람 눈 오는 궂은 날씨면 또 어떠하며 험산준령 굽이굽이 산내들 가로놓인들 마다하리. 품에 아들 떠나보낸 어미 마음은 이미 시간도 공간도 다 초월하였고 오직 아들의 얼굴만 눈앞에 아른거릴 뿐이다. 이른 아침부터 설레는 아비의 마음은 분주하고 먼 길을 향하여 준비하는 어미의 손길은 자꾸 더듬거린다. 오랜 시간 흔들리는 차의 소음도 멀미도 막아서지 못하나, 아들 찾아 떠난 길 쉬이 지는 해가 아쉽고 진득하니 감내하지 못하는 육체의 노곤함이 귀찮을 뿐이다.

  

  아! 이 산하가 아들을 품었는가! 이토록 생살을 파고드는 추위가 아들의 맨살을 아프게 하였을 것이다. 몰아치는 한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찾아든 양구 산하의 햇살이 너무나 차갑기만 하구나. 아들의 인고의 나날들이 어깨를 내리누르매 어미는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아 쓸어내리기 바쁘다. 이제 아들과 함께 같은 체온으로 맞이하는 병영의 아침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다. 입김이 선명하게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날씨도 그리 낯설지 않았던 것처럼 여기며 가슴을 펴고 오매불망 그리던 아들 얼굴이 언제나 보일까 기웃거리며 기다리는 잠시가 지난 헤어짐의 날들보다도 길기만 하다. 


  웅성거리는 여러 부모들 마음이야 모두가 한결같을 터, 고개를 빼들고 발꿈치를 곧추세워가며 전에 없던 목소리를 높이어 아들들을 향하여 온몸으로 소리치고 있다. 잘한다! 멋있다! 장하다 내 아들! 모두의 목소리에 밴 즐거움과 격정과 아픔들을 품에 안으며, 불끈 쥔 두 주먹에 힘이 실리고 목소리는 우렁차고 뛰는 발에 힘이 실렸다. 아들들의 함성과 기개는 하늘을 찌른다. 부모들에게 보란 듯이 용맹스럽게 힘준 얼굴들에는 하나같이 핏줄 서려 씩씩하기만 하다.


  아!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인가! 이등병 계급장 가슴에 붙이는 이 순간, 모두의 가슴에 긴 한숨과 기쁨과 감격이 넘실거리고 얼싸안은 모두는 한마음 되어 따뜻함과 사랑이 오간다. 삐쩍 마른 얼굴에 서린 훈련의 고된 나날들이 어미의 마음을 후벼 파고 아비의 눈시울을 붉어지게 한다. 아무렴 어떠한가! 이 순간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다. 네가 어미의 아들인 것이, 아비의 아들인 것이, 조국의 아들인 것이 자랑스럽고 대견하여 가슴 뿌듯하기만 하다. 뭐라 소리치는지, 누가 옆에 있는지 보이지 아니하고 들리지도 아니하며 외오라지 아들의 여윈 얼굴만이 걱정스럽고 대견하며 감사할 뿐이다.


  아,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PX의 모든 것들을 다 사도 성에 차지 않겠지, 그리 흔하게 쉽게 할 수 있었고 먹을 수 있었던 것을 하지 못하게 된 그 억눌림과 자유롭지 못한 속박에 분풀이라도 하듯이 아들은 한 바구니 가득 초콜릿과 과자를 사재기한다. 그냥 그대로 모든 과자를 눈으로 다 삼켜버렸다. 바라보는 어미의 눈에 또다시 아들이 밟힌다.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그래 원 없이 다 사고 먹어라. 배 터지게 먹고 누리거라. 내 아들아, 너는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아들이니 그렇게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마음껏 누리거라. 사랑하는 내 아들아!


  아들은 아쉬운 몇 시간 내내 핸드폰 잡은 손이 쉴새가 없다. 여기저기 오가는 통화는 분주하기만 하다. 통화도 바쁘고 먹어야 할 입도 바쁘며 어미의 얼굴 쓸어 담을 눈도 바쁘다. 몇 시간 지나면 또다시 돌아갈 병영의 속박은 연신 마음을 채근하고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은 채 마음만 바쁘다. 


  이젠 헤어져야 할 시간, 언제 또다시 보게 될 것인가! 1분만 더 있다가 가요. 1분만... 아, 웬수같은 시간은 왜 이다지 마음을 몰라주고 이리도 속히 지나가는가! 떨어지기 싫어 또 돌아보고 다시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어미의 손이 떨린다. 


  아들아, 힘내서 잘 견디고 몸성히 돌아와야 한다. 온갖 바람을 담아 맞잡은 손에 힘주고 다독거리는 말에 듬뿍 정이 서렸다. 되오는 발길은 어찌 이리 힘들고 서운한지. 다시 볼 날을 기약했건만 그 세월 또한 너무나 멀기만 하구나. 밤을 벗 삼아 더듬거리며 돌아오는 내내 아들 얼굴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구나. 피곤에 지쳐 깜박깜박 졸다가도 눈 떠지면 아들 얘기에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다. 자랑스럽고 대견한 아들을 생각하며 우리의 대화는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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