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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Apr 30. 2017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한강

[채식주의자]는 난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나 범인의 눈으로 그 의도하는 바를 읽어내기가 어려웠다는 말이다.     


   평범했던 주부 영혜는 꿈을 꾼 뒤로 모든 육식을 거부한다. 평범했던 일상 속에 섬뜩하게 숨겨졌던 숱한 사실들이 매일 반복되는 꿈속에서 처절하게 나타나 괴롭힌다. 불면의 밤들을 지새우며 파리하게 말라간다.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했기 때문에 마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까닭을 알지 못하는 가족들은 그가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주의자가 되어 그렇다고 생각한다. 계속되는 육식의 권유와 거부가 반복되며 치열한 대립이 이어진다. 급기야 친정아버지의 폭력행사로 파탄을 불러일으킨다. 육식을 강요하는 가족들에 저항하며 칼로 자해를 한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영혜를 그의 형부가 들쳐 업고 병원으로 옮긴다. 그런 과정에 성적 충동을 느낀다.   

 

   영혜의 형부는 아내의 경제적인 뒷바라지를 받으며 그닥 표 나지 않는 예술가로 살아간다. 처제인 영혜의 엉덩이에 박힌 몽고반점에 영감을 받아 행위예술의 거창한 명목의 비디오를 촬영하기에 이르고 결국 정사장면을 촬영한다. 그 사실을 목격한 아내의 분노에 이어 파경에 이르고 집에서 내어 쫓긴다.     


   평범한 샐러리맨인 영혜의 남편은 아내를 이해할 수 없어 떠나간다. 영혜는 정신병원에 감금된 채 이제는 먹는 행위 자체까지 거부한다. 나무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자신은 식물이라고 생각한다. 물구나무를 서서 나무 흉내를 내며 굶어 죽어간다.     


   작품의 줄거리는 쉽지만 이런 내용들을 풀어가는 언어 하나하나가 무언가 깊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문명의 오만함과 인간성의 상실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그 안에 함몰되어 가는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이 투영된 것으로도 여겨진다. 아무튼 이 의미 깊은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마치 한 폭의 명화를 놓고 범인의 눈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전문가의 눈으로 해석을 해줄 때,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듯이, 여러 전문가들이 내용을 이해하고 멘부커상을 수여했다. 그런 유명세 때문에 읽기는 했지만 이 책은 이해하기가 난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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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이 온다]는 80년 5월을 젊은 피로 거쳐 오며 아픔을 느꼈기에 많은 부분에서 잘 이해되었다. 5.18의 참상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의 파편들을 간접적으로 접하며 피상적인 앎을 간직한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80년 5월 당시 희생된 중학생 소년의 죽음과 그에 연루된 여러 정황들을 묘사하는 픽션과 논픽션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당시의 참상을 세밀한 언어로 묘사하는 작가의 필체는 예술이다.     

   80년 5월 광주를 모르는 자라 할지라도 이 글을 통해 그날의 참상과 슬픔이 가슴에 전달될 것으로 생각된다. [채식주의자]에서의 난해함보다는 [소년이 온다]는 훨씬 깊이 체감되어 교감을 가질 만하다. 그날 계엄군이 밀고 들어오던 도청의 마지막을 지키던 사람들의 비감한 모습과 계엄군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간 숱한 사람들의 주검의 역한 시취가 코에 느껴질 만큼 생생하다.     


   80년 5월의 깊은 의미를 다 모를지라도 그 아픔만은 생생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당시 상황들을 생생하게 기억하면서도 선뜻 밖으로 꺼내놓지 못하고 아직도 피울음을 울고 있는 이들이 있다. 피 흘림의 역사는 침묵으로 흘러가고 있다. 37년이 지났는데 많은 부분들이 밝혀졌지만 아직도 진실은 다 밝혀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형국이 여전하다. 사건은 있는데 책임을 지는 자는 없다. 역사를 아는 백성은 현명하다. 그러나 역사를 외면하고 왜곡하며 무지한 백성의 미래는 암담하다. 오늘 이만큼이라도 당시의 상황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아직도 5.18문제는 숙제로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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