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돕는 사람들
방문의료를 진행하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방문을 하면 할수록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어떤 분인지 질병상태는 어떠한지 여러 상황을 들여다 보기 바빠서 질문만 하다가 첫 만남은 끝나버린다. 그 다음번에 방문했을 때에는 주변 환경을 좀 더 보게 되고 동의를 얻고 냉장고도 열어 보기도 했었다.
의료에만 국한되지 않고 삶의 전반을 두고 바라보면 하루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들이 모이면 미처 보지 못한 것들도 보일 때가 많아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폭넓게 접근할 수 있었다.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 집에 있는 배개로 하지 근력운동이 가능하다고?
방문의료도 중요하지만 운동과 재활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의 방문이 절실할 때가 많았다.
오죽하면 의사와 간호사보다 재활과 물리치료를 담당하는 물리치료사나 작업치료사를 반기는 현장을 더 자주 만나왔다. 만성통증을 모두 다 경험하고 있는 공통적인 숙제인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진통제만 처방하는 것과 달리 실질적으로 근육을 이완시키고 스트레칭을 해서 아팠던 부위를 직접적으로 해소시키는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진통제 약물요법은 통증을 잊게 하는데 도움을 주긴 하지만 실질적인 치료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도구를 가리지 않고도 집에서 간단하게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근력은 점점 감소하기 시작하는데 노화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는 근감소가 최대한 늦게 진행될수록 돕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허약단계에서 더 허약해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어 허약 전단계나 허약단계에 머물게 해서 질병의 단계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미션이다.
영양과 함께 중요한 것은 운동인데 운동이라 하면 거창하게 도구를 사용하거나 외부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던 반면 재활 영역 전문가들은 집 안에서 간단하고도 효율이 좋은 방법을 찾아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교육할 때 매우 놀라웠다.
사회복지사 : 지금 받고 있는 복지 서비스는 무엇인가요?
사회복지 영역은 정말 어려운 분야이다. 지차제 별로 사업도 조금씩은 상이하고 기본적인 복지서비스도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찾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회복지 영역 전문가들과 방문의료를 진행하였을 때 먼저 대상자가 수혜 받고 있는 서비스를 쭉 나열하고 중복되는 것, 복지 서비스를 받지 않고 있는 것, 앞으로 해당되는 것 등등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야 말고 제대로 된 복지를 받기 위해서 정리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 불필요한 것을 나누어 우선순위를 정해서 개인별 맞춤형 돌봄이란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지 서비스는 무조건 많이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왔지만 막상 중복되는 것은 다른 문제를 만들었고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예를 들면 식사를 제대로 안 하시는 어르신이 반찬을 두세 군데에서 제공받는다면 냉장고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고 음식물 쓰레기만 늘어나고 그것이 방치되어 악취와 쥐와 벌레가 가득한 환경을 만들었다. 그 해결방법으로는 어르신이 좋아하는 반찬을 가져다주는 곳 한 군데에서만 받기로 하고 나머지 반찬을 지원해 주는 곳은 더 많은 어르신에게 기회를 드는 방향으로 설정했을 때가 오히려 환경개선과 영양중재에 훨씬 도움이 되었다.
치위생사 : 밥을 왜 못 드시는지 보았더니 틀니가 안 맞아서?
방문의료의 영원한 숙제는 영양과 식사가 아닐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영양이 너무 부실하거나 과잉인 분들을 너무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식사를 못하셔서 기운이 없고 근감소증이 진행되어 집 안에서 낙상하게 되는 상황이 너무나도 많다. 한번 넘어지게 되면 계속적으로 넘어지게 되는데 이는 곧 골절로 연결된다. 골절로 인해 수술과 재활시기를 거치게 되면 침대에서 계속 지내게 되는 상황으로 너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렇다면 그토록 식사를 못하시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더니 틀니가 맞지 않아서 식사를 안 하시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음식을 꼭꼭 씹을 수 있는 저작근이 약해서 쉽게 사레가 들어 식사를 기피하는 특수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에는 혼자서는 정말 역부족이었다. 전문가를 모셔야 하는데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치위생사와 같이 구강위생 전문가를 모셔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아쉽게도 방문의료를 진행할 때 구강위생 전문가를 모시진 못했지만 다른 방문의료팀의 이야기들 들을 때마다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그저 대단해 보였다. 지역사회에서 참여하는 치위생사 전문가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정말 절실했다.
약사 : 약 때문에 울고 불고
방문의료에서 최고의 난재, 바로 약이다. 먹고 바르고 넣고 뿌리고 주사하고 정말 다양한 제형의 수단이 아닐 수가 없다. 양약과 한약, 영양제, 주사제, 소독제 등등 용도도 용법도 아주 다양하다. 나는 직역이 간호사라서 양약과 주사제는 친하지만 한약과 영양제와 같은 부분은 아직도 낯설다. 하지만 방문의료를 진행하다 보면 너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고 때로는 피하고도 싶었다. 그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무래도 약물 오남용이 아닐까 싶다. 만성통증이 있다 보면 자연스레 진통제를 찾게 되는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서 복용하다가 안 듣는다 싶으면 또 다른 성분의 진통제를 사고 이마저도 효과가 없다고 생각되면 의료기관에서 진통제를 처방받는다. 그러다 보면 진통제는 종류와 성분 할 것 없이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이 뒤 엉겨 한 움큼 있는 것을 볼 때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잦고 많은 진통제를 복용하다 보면 속 쓰림이 자연스레 발생하는데 덩달아 위장약도 늘어난다. 민간요법으로 좋다는 것도 늘고 모든 것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약사 전문가를 집으로 모셔가니 상황은 좀 나아졌다.
가지고 있는 약물의 유효기간을 점검하고 폐기할 것들을 동의하에 수거하고 비슷한 부류끼리 약을 정리하니 훨씬 깔끔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이 먹으면 안 되는 것 식전에 먹어야 할 약, 정말 필요시에만 먹어야 되는 약을 알려드리니 생각보다 이해도 잘하시고 그동안 잘못된 습관임을 빨리 인정하셔서 놀랐다.
그토록 간호사인 내가 말할 때는 듣지도 않으시더니 약사 전문가를 모셔가니 바로 수긍하는 모습에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다.
영양사 : 잘 먹는다는 것
현대인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먹는다는 것이 정말 잘 먹는다는 것일까? 이 질문은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먹는 것에 비해 영양소는 흡수가 잘 되지 않고 오히려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소는 늘어나는 것은 과학이다. 특히나 단백질은 나이가 들수록 채워야 하는 3대 영양소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어려가지 상황으로 부족해지는 영양소는 부족해지고 과잉되는 영양소는 여전히 과잉되기 쉬운 것이 현대인의 식습관이다. 음식을 씹기 힘들어서 혹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음식이라서 어떤 음식은 향이 세서 등등 각자의 취향이 모두 다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는 바로 영양사이다. 씹기 힘들다면 조리방법을 바꾸고 선호하지 않는 음식이 있다면 다른 식품으로 대체하고 이러한 중재들을 전문적으로 전공하셨기에 접근하는 방식은 정말 남달랐다. 영양성분과 칼로리 그리고 부족하거나 과잉되는 영양소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맞춤형 식단과 조리방법을 손쉽게 알려주셨다. 그 방법들은 안 그래도 입맛 없어하시는 분들에게 맛있게 입맛을 돋우기도 했고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이 만성질환이 있는 분들에게는 점점 수치가 안정되는 놀라운 기적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위의 전문가들처럼 간호사인 혼자 끙끙 고민했을 때와 다르게 다학제팀이 함께 했을 때 나의 부담도 줄고 방문의료대상자들에게는 양과 질적인 생활수준을 높는데 훨씬 도움이 되었다.
더 많은 직역의 전문가인 상담치료사, 심리상담사, 원예가, 운동처방사, 음악치료사, 명상가 등등이 있지만 방문의료에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이 때로는 아쉽기도 했다. 방문의료의 핵심이 의사와 간호사가 아니라 더 많은 전문가들이 함께해서 의료를 뛰어넘어 진정한 돌봄을 실현할 때야 말로 방문형 돌봄이 완성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