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특이한 성씨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어렸을 땐 조금 부끄러웠던 기억도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나와 같은 성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야 다른 한 명을 처음으로 만나보았다. 어릴 때 다들 그렇듯, 나 또한 흔하지 않은 성씨로 꽤나 놀림을 받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놀림받는 게 당연히 달갑지도 않을뿐더러,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도 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과는 달리, 그저 웃음거리로 전락해버린 나의 이름이 조금은 부끄럽기까지도 했다. 은행이나, 병원에 가면 꼭 한 번씩은 크게 되묻는 나의 성씨가 특이해서 부끄러운 나머지 말을 얼버무린 적도 있었다.
어느 정도 머리가 크고 나서는 더 이상 성씨로 놀림받는 일도 없었을뿐더러, 이제는 사람들이 내 성씨에 대해 생소하게 느끼는 것에 익숙해져 은행이나 병원에 가면 일부러 내가 명확하고 크게 먼저 얘기를 하곤 한다. 특이한 성씨는 김, 이, 박과 같은 흔한 성씨들보다 기억되기도 쉬웠고,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을 각인시키기에도 좋은 장치였다. 관심받는 것을 꽤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별다른 노력 없이 사람들에게 내 존재를 알릴 수 있다는 것에 나름 만족하며 살기도 한다. 지금도 새로 다니는 회사에선 내 성씨를 가지고 귀여운 별명을 붙여주기도 한다. 뭐 약간의 장난이야 섞여있긴 하지만, 나를 귀엽게 봐주는 그 자체로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여 마음껏 그 유희를 즐기고 있다.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내겐 위로 형이 두 명 있는데, 그중 둘째인 작은형은 요리를 한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형이 고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 시기부터 요리를 하고 싶다고 어머니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꽤나 이른 나이에 자신의 꿈을 정하고 여태까지 그것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는 점에서 나는 그에게 일말의 존경심이 생김과 동시에, 아직 이렇다 할 꿈이 없는 지금은 가끔 형이 부럽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가끔은 형에게서 간단한 조언을 얻기도 하고, 나랑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기에 가끔은 내가 보지 못 한 세상을 그를 통해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런 형이 처음 요리를 한다고 했을 때, 집에서 응원해주는 사람은 어머니가 유일했다. 아니, 처음에는 어머니도 반대를 하셨던 것 같다. 당시에는 요리사라는 직업이 지금처럼 유망하거나, 명예가 있는 직업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좋은 소리 한 번을 해주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역시나 작은형을 깎아내리며 그의 꿈을 짓밟아버리곤 했고, 집안의 어른이신 할아버지께서도 보수적인 사고방식 덕분인지 굉장히 탐탁지 않아 하셨다. 그러나 결국 무너지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덕에 대학을 진학할 수 있었고, 10년을 훌쩍 넘게 요리만 보고 살아온 결과 지금은 번듯한 본인의 가게를 낼 정도까지 이르렀다.
쉽지는 않은 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요리도 하나의 예술분야기에 굉장한 감성을 요할 것이고, 때문에 직업적으로 어쩔 수 없이 예민한 감수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매 순간을 번뜩이는 한 가지를 찾아내기 위해 더듬이를 곤두세우고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그만이 가진 저주라고도 할 수 있겠다.
더군다나 주방은 전쟁터이기 때문에 한순간도 긴장을 놓으면 안 된다고 건네들은 적이 있다. 매번 뜨거운 것들에 데어 벌겋게 부어오른 형의 팔과, 한 번의 어긋난 칼질로 몇십 바늘을 꿰매야 했던 형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보고 있으면, 어쩌면 정말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직업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왜 그토록 엄마가 말리셨는지에 대해서도 이해가 감과 동시에,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일을 하는 형의 열정도 와닿았기에 한때는 내가 다 마음이 복잡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랬던 형도, 다시 태어나면 절대 요리를 하지 않으리라며 내게 토로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처음으로 형이 본인만의 가게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처음에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어느 한 분야에서 날고 기는 사람들도 어려워하는 게 장사인데,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심지어 코로나가 끝난 직후라서 외식산업은 더욱이 힘들 것이라는 걱정은 덤이었다. 뭐 그럼에도 형은 항상 해왔던 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묵묵히 추진했다. 공감형 인간인 나 또한 그런 형을 보면서 걱정은 접어두고, 우선 격려해주었다. 걱정은 나중에 해도 상관없지만, 응원은 지금이 아니면 해줄 수가 없기에 항상 응원을 우선시해 주었다. 아무래도 걱정은 세상에서 형 본인이 가장 많이 하지 않았을까. 어차피 할 일이었다면 마음에 남아 무거워지는 걱정보다는, 머릿속이라도 가볍게 해주는 응원의 힘이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가게 이름으로 정한 것은 우리 삼 형제가 공통적으로 가진 성씨였다. 처음엔 웃음밖에 안 나왔다. 이름을 대충 지었나 싶다가도, 그게 형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잘 지었다가 싶다가, 결국 에이 그건 아니라면서 타박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저히 처음엔 가게 이름까지는 응원을 못 해줬던 것 같다. 그럼에도 형은 또 언제나 그랬듯이, 본인의 고집을 지켜가며 결국엔 본인의 성씨를 붙여 가게 이름을 지었다. 뭐, 나름 디자인하고 나니 또 유니크하고 괜찮은 것 같더라.
가게가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며 작은형은, 큰형과 내게 자랑을 하는 듯이, 그리고 조금은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인정을 받고 싶은 듯이 가끔 가게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준비가 되는 과정도 신기했지만, 내 가게인 것 마냥 뭔지 모를 뿌듯함이 내게도 조금씩 차올랐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한 형이 대단함과 동시에, 걱정보다는 응원을 해줄 것을 택한 나 스스로의 모습을 다행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 해 8월의 어느 날, 비가 쏟아지게 내리던 오후에 드디어 가오픈을 시작했다. 그 영광의 자리에 남아있는 유이한 가족인 큰형과 내가 초대되었다. 비를 쫄딱 맞으며 가게까지 걸어가는 동안, 큰형과 나는 이런 날 오픈하는 가게는 꼭 대박 날 것이라는 설레발을 치며 한껏 기대감에 부푼 채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도착한 그곳에는, 말 그대로 작은형만의 작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구석까지 하나하나 형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조그만 집기 하나까지도 직접 골랐다는 형의 말에, 이 꿈은 나의 생각보다 더 원대했고, 빛을 보지 못하고 꽤나 오래 묵혀있었던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사실, 들어가자마자 낯부끄럽게 형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 공간은 치열하게 살아온 형의 염원이 담긴,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온 또 다른 한 사람이었던 엄마가 생전에 이루지 못한 작은 소망이 담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들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를 형의 노고가, 그것마저 옆에서 지켜보지 못한 엄마의 형용할 수 없는 아쉬움이 가슴에 갑자기 사무쳤기 때문일까. 음식은 두말할 것 없이 맛있었다. 언제나 나의 걱정은 단순히 사업이라는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었지, 형의 실력에 대해서는 항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지금도 그날 먹었던 음식들의 맛이, 타는 장작들의 냄새가,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음악이, 여전히 창밖에서 부지런히 퍼붓고 있는 빗줄기의 무늬가 내 머릿속에 선연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지난주, 약 3년간의 영업을 무사히 마치고 가게가 문을 닫았다. 함께 가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결국 같이 가지 못해서 아쉬웠다. 또한 마지막이라는 기념비적인 날을 형과 함께하지 못한 것도 아쉬웠지만, 나만큼 아쉬워하는 단골들이 한 트럭이라서 도저히 내가 있을 자리가 없을 거라던 형의 말을 듣고 내심 다행이었다. 작은 가게에, 찾아오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은 위치였지만, 마지막 달에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단골손님들이 꽉꽉 들어찼었다는 형의 말이 반갑기도 하면서 자랑스러웠다. 얼마간의 휴식을 가진 뒤, 새로운 컨셉으로 새로운 지역에서 시즌 2를 오픈할 것이라는 형의 당찬 포부에 이번에도 응원의 말만 전해주었다.
형은 본인의 첫 식당이 성공이라고 생각했을까, 실패라고 생각했을까? 그만둔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가장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왜냐면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이어도 좋고, 실패여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근데 아마 성공과 실패 사이 그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지 않을까? 모든 일이 자로 잰 듯 정확히 맞아떨어지진 않으니까 말이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도,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현실에선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도 이미 형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젠 형을 믿고 쓸데없는 걱정은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알아서 잘 판단했을 것이라는 생각과, 아직은 완벽히 판단하기엔 좀 이를 것이라는 생각이 공존하기에 궁금증은 마음에 묻고 가려한다.
한 가지 내가 바라는 것은, 형이 이 처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경험이 쌓이다 보면 노련해지고, 그에 따른 이점이 많아지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래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을 때의 형의 모습을 기대한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의 그는,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의 그는, 뛰어들고 싶은 대로 어디론가 직접 뛰어들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의 그는, 잃을 것에 대해서 걱정하기보다는 얻을 것에 대해 기대할 수 있었다. 만약 정말 힘든 시기가 온다면, 나는 형이 순수했던 그 처음을 잊지 않고 생각해냈으면 한다. 나의 성씨가 부끄러웠던 그 처음의 내가, 결국엔 지금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모르고 부끄러워한 처음의 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에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처음은 나만 할 수 있는 고결한 특권이다. 그리고 그 고결함은 언제나 미흡하고 보잘것없다. 그렇기에 형도, 나도 모두 부끄러워했던 그 시절을 소중히 여겼으면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부끄러워했으면 한다. 부끄러울 일이 많다는 건, 그만큼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성장할 기대치 또한 많다는 것이 아닐까.
내게도 처음이 주는 순수함의 가치는 소중하다. 처음의 미숙함과 찌질함이 그 순수를 마구 더럽혔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