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참 Jun 19. 2023

“다들 너무!해!” : 우주의 끝나지 않은 시련

우주의 언어, 27개월

우주에게는 스스로만 모르는 아주 오래된 숙제가 있었다. 바로 쪽쪽이를 끊는 것. 외국에서는 덩치가 큰 아이들도 쪽쪽이를 물고 놀이터나 공원을 뛰어다니는 것을 본 적이 꽤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늦어도 24개월 이전에는 끊는 분위기다. 우주가 치과에 검진을 받으러 갔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도 스트레스받지 않는 선에서 24개월까지만 끊게 도와주면 된다고 하시기도 했다.


쪽쪽이. 사실 우주가 이리 오래 쪽쪽이에 의존할지는 엄마인 나도 몰랐다. 육아에 대해서는 일단 느긋하게 기다리고 지켜본다는 성향을 지닌 나는 속 편하게 ‘언젠가는 알아서 던지겠지.’했더랬다. 어차피 우주가 하루 종일 쪽쪽이를 물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잠잘 때만 하는 것이니 그리 큰 문제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물론 한 번도 조급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7개월이 되기까지 두 번, 쪽쪽이와 이별해 주기 위한 나름의 시도는 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몇 시간씩 그치지 않은 커다란 울음을 보며 아직 우주가 준비되지 않았구나만을 깨달았다. 아이가 극도로 불안하다면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전 날의 행태를 이어갔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어린이집 등원이 시작되었고,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니 낮잠 잘 때 우주만 쪽쪽이를 하는 것 퍽 이상한 그림일 것 같았다. 그리고 우주도 이제 네 살이고 27개월이면 이제 보내줄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을까. 남편도 어렸을 적에 쪽쪽이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고 한다. 네 살 때 간신히 끊었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님은 정흠이가 쥐를 제일 무서워해서 “쪽쪽이를 쥐가 물어가 버렸어!”라고 하니 그 후로는 안 찾았다는 스토리텔링도 덧붙이셨다.













우주의 27개월, 씹는 힘이 전과 달라선지 쪽쪽이들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양이 마치 어떤 생명체가 갉아먹은 것 같았다. 이건 뭐랄까.. 우주 아빠의 전통(?)을 이을 좋은 계시이자 기회일 것 같았다. 그래서 우주에게 덧붙이기 시작했다.


“우주야, 쪽쪽이를 거미가 물어 가서 갉아먹었나 봐..! “


우주는 언젠가부터 거미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우주가 자주 보는 한 핼러윈과 관련된 영상이 있었는데, 거미를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우주가 거미를 무서워하는 것이 직접적인 경험에 의한 공포가 아니기에 사실 내가 뭐라 하던 우주가 쪽쪽이를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고집쟁이 우주가 단념의 기색을 보였다. 그녀가 쓰레기통에서 찢어진 쪽쪽이를 발견했을 때에도(내가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녀는 거미가 쪽쪽이를 물고 가 쓰레기통에서 찢어 먹었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눈치였다. 그렇게 쪽쪽이 없이 자는 나날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이전에 쪽쪽이 끊기를 시도했을 때에도 하루는 어떻게 잘 넘어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두 번째 날 밤에는  다시 몇 시간 동안 광광 우는 우주를 마주해야 했던 우리는 이번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거미의 쪽쪽이 도둑질 이야기가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우주는 힘들어하지만 더 이상 쪽쪽이를 찾지 않았다. 물론 일주일 정도는 우주가 스트레스도 받고 잠도 오래 못 잤다. 잠을 자려면 불을 꺼야 하는데, 우주는 쪽쪽이가 없으니 어둠이 더 크게 무서웠다. 모든 것을 다 앗을 수 없으니 처음에는 불안하지 말라고 수유등을 오래 켜줬다. 엄마, 아빠가 거미가 절대로 오지 못하게 지켜주겠다는 말과 함께.


아이가 좀 적응하자, 불을 눕자마자 껐다. 그런데 그날 우주가 큰 소리로 구시렁대었다.


“쪽쪽이도 업꼬, 불도 끄고, 다들 너무!해!“


우주의 서운함이 잔뜩 묻어난 사뭇 진지한 이 말은 나름 엄격하게 그리고 고요하게 잠을 준비하던 나와 남편의 포커페이스를 깨버렸다. 엄마, 아빠의 웃음소리를 듣자 우주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다들 너무하다는 한탄을 한바탕 하더니 잠에 들었다.









살아가다 보면 정말 다들 너무할 때가 있다. 나는 마음을 곱게 먹고 싶은데 나쁜 일들이 엎친데 겹친 격으로 밀려들어오는 그런 날. 근데 그런 날도 내 신세한탄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름 견딜만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너무한 날들이 오겠지. 그럴 때 우주처럼 귀엽게 투정 부릴 수 있다면, 그리고 같이 분개해주고 웃어줄 사람들이 있다면 그날도 나름 좋은 날이 될 수 있을 거란 기분 좋은 상상을 한다.










이전 10화 “고기도 머꼬, 반창도 머꼬!” : 우주의 첫 사회생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