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언어, 27개월
두 돌이 다 지나고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 우주의 첫 사회생활이 순탄할 리는 없었다. 물론 그간 가족들이나 엄마 친구들이 찾아오거나, 아기 친구들을 만난 적은 있지만 그 모든 시간도 대부분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이 디폴트 값이었다. 그러니 모르는 어른들과 또래들이 많은 곳, 거기다가 의지할 엄마, 아빠는 들어갈 수 없는 이곳이 낯설기만 한 건 당연했다. 어린이집 상담을 간 날, 원장님과 엄마가 나눈 모든 대화를 알아들은 우주가 내 품에서 숨 죽여 울고 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어린이집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우주의 어린이집은 5단계로 적응 프로세스가 나뉘어 있었다.
1단계: 엄마와 같이 등원해서 엄마와 함께
2시간 정도 어린이집에 머무는 기간
2단계: 엄마랑 등원하지만 점심 먹는
시간부터 엄마와 떨어지는 기간
3단계: 등원 후 바로 떨어져서
밥까지 먹고 오는 기간
4단계: 등원 후 바로 떨어져서
낮잠까지 경험하고 오는 기간
5단계: 하원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는 기간
감사하게도 우주의 어린이집은 각 구간의 텀을 엄격하게 구분해두지는 않는 편이었고, 우주가 적응하는 속도에 맞춰주셨다.
어린이집에 간 첫날, 나는 희망을 보았다. 오전 2시간 정도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에서 놀이를 하는 날이었다. 어색하지만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며 놀다가 이제 집에 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우주가 말했다.
“맛있는 냄새가 나!”
곧 점심시간이라 냠냠쌤이 밥을 하고 계셔서 어린이집이 맛난 냄새로 가득 찼던 거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원장님이 우주에게 물어보셨다.
“우주야, 점심은 아기들만 먹을 수 있어서 엄마는 집에 가셔야 해. 우주는 여기서 밥 먹고 엄마는 잠시 집에 가셨다가 우주 데리러 오시라 할까?”
사실 그 질문을 물어보실 때, 난 우주가 당연히 집에 가자고 할 줄 알았다. 2시간 동안 우주가 잘 놀긴 했지만, 나를 끌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우주는 밥 머꼬 갈래.” 하는 거다. 내가 살짝 당황해서 “우주야 그럼 엄마는 먼저 갈게~?”하니까 “웅!” 대답한다. (머쓱타드)
두 번째 날도 프링글스를 들고 있는 친구에게 “ㅇㅇ아 안녕?”하면서 과자를 얻어먹는 우주를 보고 적응 꽤나 잘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육아가 예상대로 흘러가는 일은 거의 없다. 엄마와 떨어지기 시작한 날부터 극강의 오열의 시간이 시작됐다. 우주가 먼저 다가갈 용기를 얻거나 어린이집에 더 있고 싶었던 것은 조금 웃프지만 ‘먹이’ 때문이었다. 그 외의 시간은 목적(밥이나 간식)이 없기에 울음이 터질 수밖에 없는 우주였다.
우주가 심하게 우는 며칠간은 나도 우주를 등원시킨 후 집에 돌아오며 청승맞게 눈물이 맺히곤 했다. 동시에 잠시 어린이집에 너무 늦게 보낸 나를 탓하기도 했다. 우주를 데리러 가서 어린이집의 하루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우주는 “엄마가 없어서 슬퍼떠..”하는 나날이 길게 이어졌다.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들만 생기는 시기였다. 하지만 가정 보육을 하는 동안 우주의 다시 오지 못할 시간을 최대한 행복하게 채워주려고 매일 노력했기에 후회는 없다는 결말로 빠르게 전환했다. 처음이 힘든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어린이집 등원은 그 기간이 두렵다고 쉽사리 그만두면 안 되는 일이다. 과거를 바꿀 수도 없고, 어차피 당장 해야 하는 일이라면 마음을 단단하게 먹기로 했다.
그래서 우주 엄마표 등하원 의식을 만들었다. 등원에는 머리핀을 함께 고르기. 하원에는 킨더조이(안에 조립장난감이 든 달걀 모양의 초콜릿이다.)가 든 공주 가방을 들고 데리러 가기. 우주의 등하원 경험이 조금이라도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이벤트였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등원 이벤트는 반만 성공, 하원 이벤트는 대성공이었다. 확실히 엄마와 떨어여야 하는 등원길에는 제 아무리 예쁜 머리핀이라도 우주에게 통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하원 길마다 받는 선물인 공주가방 속 킨더조이는 우주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나 보다. 한 일주일은 이런 의식들이 계속되었음에도 우주에게 어린이집이 괜찮았냐고 물어보면 “엄마가 없어서 슬퍼떠..”라고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이런 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친구들이랑 재미써써!”
말이 정말 많은 우주가 적응기간 하원길에는 과묵해지곤 했었다. 그런데 우주와 엄마 모두 마음 졸이던 시간들도 한 달 정도 지나니 정말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다. 우주는 점점 말들을 되찾았다. 요즘에는
“고기도 머꼬, 반창도 머꼬!
우주가 다 머거써!“
라고 말하기도 하는 우주가 대견하다.(밥 이야기만 하는 것도 웃기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전부터 적응기 동안은 우주가 잘 때마다 소리 내어 우주를 위해 기도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적응을 하니 우주도 중얼중얼 기도를 하더라.
“하나님 아부지 쪼쪼미(선생님) 집에 가야 해요. 엄마 없어서 슬퍼써요. 친구들이랑 재미떠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작은 소녀가 기도할 때면 남편과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어렸을 적 만화였던 <빨간 머리 앤>에서 어렴풋이 기억나는 장면 생각했다. 앤이 하나님은 어린 소녀의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고 하는 장면이었다. 하나님이 이 작은 아이의 기도를 듣고 계시기를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