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참 Sep 26. 2023

“괜찮아, 그럼 고슴도치가 다쳐.“ : 내리사랑

우주의 언어, 34개월

우주의 어린이집은 활동이 정말 다양하다. 선생님들이 힘드실 것 같아 걱정이 되면서도 우주가 늘상 재밌어 하니 얄팍하게도 감사하기도 하다. 화요일에는 특별활동 선생님이 오시고, 목요일에는 체육 선생님이 오신다. 그 외에도 원에서 매주 한 번은 요리 활동이나 숲체험, 창작 활동, 기념일 이벤트 등이 하나씩은 껴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은 만나면 얼굴이 밝다. 활동은 차치하고서라도 선생님들이 마음 편하게 해주시는 게 느껴진달까. 우주를 데리러 가면 오늘은 뭘 했는지 이야기하느라 정신 없다. 이 날은 점토로 고슴도치를 만든 날이었다.









사각형의 두꺼운 종이 위에 갈색 점토로 타원형의 몸뚱아리가 놓여 있다. 몸통의 윗 부분은 다앙한 색의 끝이 뭉툭한 가시가 꽂아져있다. 이쪽이 얼굴이라는 것을 보이려는 듯, 앞쪽에는 눈이 붙여져 있다. 우주는 작은 두 손으로 두꺼운 종이를 아슬아슬하게 들고 어린이집 문을 나온다.


“이 고슴도치 우주가 만들었어. 그런데 가시는 만지면 아프니까 조심해야 해.“

고슴도치를 설명하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우주가 귀엽다.


귀여움은 귀여움인데 오늘은 거세게 비가 온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올 때는 우주만 데리고 가기도 힘든데 고슴도치를 들고 어떻게 집에 갈지 막막하다. 비가 거센 날 아이와 길을 건너는 것은 이왕이면 피하고 싶다. 정말 다행히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길이라 데리러 오겠다고 한다. 어차피 15분이면 도착한다며. 구세주가 따로 없다. 남편을 기다리기 위해 지하 주차장으로 향한다. 내가 고슴도치를 대신 들어줄지를 이미 물어봤으나 우주는 자신의 손으로 들고 있는 고슴도치를 아빠에게 당당히 자랑하고 싶은가 보다. 우주와 슬슬 차가 들어올 상가 쪽으로 걷고 있는데 남편이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마음이 급해져 우주에게 물었다.


“우주야, 엄마가 안아줄까?”

우주는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본다.

“괜찮아, 그러면 고슴도치가 다쳐.“









결국 우주는 자기 두 발로 천천히 아빠 차를 탔다. 그리고 내게 한 설명을 아빠에게 똑같이 반복했다. 우주가 자기보다 작은 무생물(아 물론 우주에게는 생물로 인식되었을 수도 있지만)을 보호하려고 하다니. 벌써 이렇게 커버린 건가 놀랍다.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보는 시선이 이것과 비슷하려나.


내가 우리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것과 우주를 사랑하는 것은 비슷한 듯 다르다. 크기는 분명 비슷한데, 느껴지는 자극은 아이에게 주는 것이 크다. 부모님이 주신 사랑은 태어날 때부터 (감사하게도)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는데 아이에게 주는 사랑은 형태부터 밀도까지 내게는 생전 처음 겪는 혁명이다. 부모님과의 사랑은 익숙하고 편안했는데 내가 아이와의 사랑은 매일의 생성이며 그래서 극적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부모의 사랑은 출발 선이 달라서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기 전부터 나와 남편은 우주를 위해 기도했다. 이 시기 사랑은 희망의 형태였다. 아이가 만들어진 것을 알고 태어나기 까지의 37주간의 시간도 간절한 기다림이라는 사랑을 지속했다. 물론 우주도 세포 분열을 시작하자마자 나와 남편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느낀 감정의 스펙트럼처럼 다양한 사랑을 경험하고 나오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니 내리사랑이라는 말에는 일리가 있다.


내리사랑은 내가 본 가장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사랑의 정수랄까. 그래서 우주를 낳고 이 사랑을 경험하게 된 것에 감사하다. 아마 이런 사랑을 느끼며 나를 키우셨을 엄마, 아빠에게도 감사하다. 몸도 좋지 않고, 일도 바쁘고, 이런 저런 약속도 많은 요즘 같은 날, 사랑의 정수를 모아모아 힘내본다.

















이전 08화 “긍데 엄마능 눙 앙가마?” : 감사해요 선생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