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언어, 31개월
일을 다시 시작하고 우주는 어린이집에서 연장반까지 보내고 오게 됐다. 이제 주중에는 우주가 집에서보다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게 된 거다. 선생님, 친구들과 있는 오랜 시간은 우주의 말에도 스며들어 나와 함께하는 저녁 시간에도 튀어나오곤 한다. 어린 친구들에게 큰 어른이 주는 영향력은 그들의 키만큼 큰지, 작은 또래 친구들보다는 큰 선생님의 말씨들이 묻어난다. 그렇게 우리 집에 작은 선생님이 생겼다. 그리고 우주가 어리지만 나름 멋진 선생님이라는 것은 그녀의 당근과 채찍 기술에서 볼 수 있었다.
저녁밥을 먹고 놀이방으로 가서 함께 놀 때는 우주는 대게 당근을 줬다. 우주가 어찌나 다정하고 사려 깊은 말투로 이야기하는지 나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는 블록을 높게 쌓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주가 입술을 내밀고 미간을 찡그리며 한껏 걱정하는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자, 우리 엄마 할 수 있게써여~?”
그러다가 내가 블록을 쌓다 넘어뜨리면 이내
“괜차나여~ 다시 해보세여!”하며 응원했다.
블록을 우주 키 정도 쌓았을 때는
“너무너무 멋져여!”하며 박수를 쳐줬다.
우주가 놀이를 시작할 때 용기를 내고, 난관을 겪을 때는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고, 성공하면 기뻐하는 이 일련의 과정을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쓰시는 언어가 이끌고 있었다. 선생님이 지금 집에 계신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집에서의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사실 내 아이지만 한 명을 케어하기도 힘들 때가 많다. 그러니 선생님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될지는 안 봐도 훤하다. 7명의 아이들과 오랜 시간 함께 하시면서도 이렇게 따뜻한 말투로 아이들을 대해주신다고 생각하니 감사함만 가득 찰 뿐이다.
잠을 잘 시간이 오면 우주는 채찍을 꺼내어 들었다. 우주는 나와 남편 사이에 앉고, 우리들을 일자로 눕게 했다. 그리고 우리의 가슴을 토닥토닥이기 시작했다. (아, 토닥인다기에는 엄청 아프긴 했다.) 눈을 감으라는 말도 덧붙였는데 나는 안경과 핸드폰을 탁자 위에 정리하느라 우주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우주가 최대한 엄격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삐져나오는 귀여운 말투로 말했다.
“아빠도 눈 감았눈뒈,
긍데! 엄, 엄마는 왜 눙 앙가마?
우쥬가 눙 감으라고 했는데~“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잘 때 선생님께서 하는 말들 같았다. 놀이시간에서 보다 단호함이 묻어났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적절한 어투였다. 우주가 엄마, 아빠에게 훈육하는 것은 귀엽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말을 듣지 않는 엄마, 아빠가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지기도 했는지 훈육을 하는 우리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하기 시작한 눈치였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훈육을 할 때 우주가 받아들이는 시간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안 통하던 말이 통하기 시작한 거다. 멋진 선생님을 가진 우주는 우리 집에서 멋진 선생님이 되었다. 덕분에 우주도 엄마 아빠의
말에 심통을 부리기보다는 “그래꾸나~ 우주가 미안했어.”라고 말하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우주를 위해 기도한다. 우주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기를. 그리고 좋은 어른들과 좋은 친구들을 만나기를. 우주가 가족 이외의 어른을 오래 만나는 첫 장소는 어린이집이었다. 우주가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어른들인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사랑의 눈으로 보살펴주신다는 것은 기도에 대한 응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또 자연스레 기도가 나온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일하시다가도 잠시 쉴 수 있는 짬이 있는 하루들을 보내시기를. 마음이 편안한 하루들을 보내시기를. 걱정거리 없이 건강하시기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