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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참 Jun 07. 2023

“아빠 공주님 같다!” : 우주의 남자 어른 보호자

우주의 언어, 26개월


사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남편과 싸울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작은 다툼이야 피할 수 없었지만 서로의 한계를 마주할 정도의 사건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소소하게 시트콤처럼 살면서 우리가 나름대로 정의한 행복을 하루하루 이뤄나가며 살고 있었다. 아,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친구들과는 거의 매일 톡을 주고받는다. 내 주변에는 육아 동지가 많지 않지만, 있는 동지들과는 가족처럼 끈끈하다. 출산은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그 큰 변화와 전환을 비슷한 시기에 경험하니 동지애가 남다를 수밖에. 같은 엄마로서 우리는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리고 그 사랑스러움에는 얼마나 큰 대가가 따르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 이야기만큼 많이 하는 말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남편과의 관계 대전환에 대한 것이다. 같은 아내로서 우리는 전보다 훨씬 남편이 아니꼽다는 공통점이 생겨버렸다.


출산 직후의 호르몬 변화는 엄마를 예민하게 만들고 스트레스에 취약하게 한다는 말을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생리도 그렇고 여자는 평생 호르몬의 손바닥 위에서 벗어날 수 없나 탄식한다. 어쨌든 그래서인지 우주가 태어나고 남편의 모습이 곱게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왜 새벽에 애가 쩌렁쩌렁 우는 데 나만 눈이 떠지는 건지, 남편은 베이비타임 어플을 왜 다운만 해두고 보지 않는지, 예방 접종 시기는 왜 나한테 묻는 건지, 돌잔치는 왜 나만 기획하는 건지, 어린이집 신청은 왜 또 나만의 일인 건지! 부모라는 단어로 묶여있는데 항상 나보다 한 발짝 뒤에서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연애 시절, 나는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문 느긋함을 가진 남편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늘 나보다 세 템포는 느린 그가 답답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조급함은 불안을 낳기 마련이라 그런지 늘 무언가에 쫓기듯 급하게 살아온 나는 남편 옆에 있으면 안심이 되고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 들었다. 비효율이 주는 멋과 맛에 눈을 뜨게 되었달까. 아,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말이다.


막상 육아라는 최장기 프로젝트에 같은 팀의 팀원으로 마주하니 이런 느긋한 캐릭터가 세상 빌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상 모든 일은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행동하게 되어있는지라, 상대적으로 급한 내가 육아의 많은 부분을 커버하게 됐었다. 오래 전에 3가지 일을 나열해 부탁했는데 아직 1개도 처리 중인 남편의 속도를 감내하고 있으면 순간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그렇게 서로 손발을 맞추고, 서로 다른 사람이란 것을 인정하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다.









남편이 나와는 임출육 시기별로 각기 다른 잡음이 있던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우주에게 늘 좋은 아빠라는 것은 확실하다. 우주에게는 늘 사랑을 표현해 주니까. 남편의 우주를 향한 모든 형태의 언어는 늘 사랑이 담겨있다. 우주를 바라보는 표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우주를 향한 몸짓, 따뜻한 목소리, 느긋하고 기분 좋은 말투, 그리고 사랑을 꾹꾹 담은 말들. 그래서인지 우주는 일어나자마자 아빠를 찾곤 한다.


“엄마, 아빠가 없어져떠..

아빠 일하러 갔나보다..

전화해보까?“


그리고 아빠가 전화받으면 속상한 듯이 이야기한다.


“아빠 우주가 보고시퍼요,

빨리 오세요!“










우주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 이외에도 내가 남편에게 고마운 것이 하나 더 있다. 집안일이 어렵다는 것을 공감해 주고 집 안의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주부가 고군분투한다는 것을 잘 알아주기 때문이다. 나는 우주가 두 돌이 넘어서까지 가정보육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남편의 도움이 핵심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편의 손길이 아예 닿지 않은 집안일은 거의 없었다. 나 홀로 육아의 고됨을 잘 아는 남편은 평일에도 내가 지치면 설거지를 해주기도 하고, 장난감 정리를 도와주곤 했다. 주말에는 빨래며 분리수거까지 함께 했다. 우주가 좀 더 어렸을 때는 이유식을 나눠서 하기도 했다. 평일에 출근을 하며 얼마나 힘들게 보내는지를 잘 알기에 이런 한 줄기 빛 같은 도움이 나를 살린 순간이 많았다.


고로 우주는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며 엄마를 돕는 것을 보고 자라나고 있다. 집안일이 엄마’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을 직접 체험하며 자라나는 것을 나는 좀 과장을 조태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집안에서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과정은 집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주는 아빠에게 이런 칭찬을 하곤 한다.


“우와 아빠 정말 공주님 같아! “


손에 물을 묻히고 사는 다소 혁명적인 공주님이자 멋진 아빠라는 칭찬이 아닐까.











물론 아이에게 한계를 지어주는 단호함은 아직 배워나가는 단계다. 귀여운 딸에게 묵직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은 남편에게 아직 어렵다.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육아는 산 넘어 산이고, 퀘스트가 무한인 게임이다. 유독 부모로서 우리의 부족한 점도 많이 보이고, 그래서 배울 것은 책으로 한 트럭이다. 최소한 나쁜 부모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면 되었다, 싶다.


아빠: 아이를 세상에 만든 사람 중 하나이자 아이의 남자 어른 보호자. 엄마와 부모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지만 육아에 대한 모든 생각이 같을 수는 없는 평생 대립의 존재. 분명 우주를 키우며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이 싸울 거다. 하지만 우주의 건강과 행복을 바란다는 공동의 목표는 변하지 않기에 또 화해하게 되겠지.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우주의 남자 어른 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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