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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참 Jan 22. 2023

“내가 손 잡아주께” : 위로의 짬밥

우주의 언어, 25개월


아직도 가정보육 중인 우리 집은 나와 우주가 떨어질 일이 딱히 없다. 기껏해야 자유부인데이를 다녀오거나, 정말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반나절 정도 떨어져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는 우주와 늘 한 공간에 함께 있다.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면 우주는 나와 잠시 떨어져 있는 정도야 신나게 즐겼다. ”엄마가 없어도 잘 노네! “라는 말이 내게는 서운함보다는 대견함으로 다가왔다.  그만큼 우주와 나 사이에 신뢰가 생겼다는 거니까.


그러다가 우주와 며칠 밤 떨어져야 할 일이 생겼다. 담도암으로 투병 중이셨던 아버님이 소천하신 거다. 다행히 장례식 기간 동안 엄마가 우주를 봐주신다고 했고, 남편과 나는 우주에게 미리 설명을 했다. “할아버지가 하늘나라로 이사를 가시게 되었어. 그러려면 엄마, 아빠가 이사 가시는 걸 함께 도와 드려야 해. 그래서 우주랑 잠시 떨어져 보내야 해.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이모랑 두 번의 밤잠을 자면 엄마, 아빠가 꼭 우주 만나러 갈게. “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우주가 두 번의 밤이라는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할 리 없었다. 더더욱 잠은 항상 엄마가 있는 곳에서 잤던 아이에게 이런 상황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다.


우주는 자야 할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너무나도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춤도 추고, 그림도 그리고, 익숙한 사람들과 재밌게 보냈다. 그런데 깊은 밤이 되었는데도 엄마가 잠을 자러 오지 않는 거다. 그래서 우주는 보초병마냥 졸음과 싸우며 “엄마가 꼭 오꺼야!”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렇게 새벽 다섯 시가 넘어서까지 소파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잠에 들었다. 더 큰 문제는 눈을 떴는데도 엄마가 없다는 현실이었다. 아이는 울음을 참다가 결국 눈물이 터졌고, “엄마가 꼭 오꺼야!”를 반복했다. 이를 지켜본 이들의 마음도 무너졌다. 결국 하루 만에 우주는 다시 엄마와 만났다.










장례식 이후 한동안 우주는 전보다 나와 떨어지는 걸 어려워했다. 잘 놀다가도 엄마가 옆에 있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내가 놀란 건 그 이후 친정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동생이 도예 작가라 친정 집은 작품들로 차있는데 우주가 작품 속 주인공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한 거다.


동생의 방에는 울고 있는 파란 소녀의 그림이 있다. 파란색이 유독 감정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건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녀는 너무나도 슬퍼 보인다.

우주가 동생 방에서 놀다가 파란 소녀가 그러진 캔버스를 손으로 들고 유심히 봤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내미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걱쩡하지마! 우주가 꼭 찾아주께!”


거실 바닥에는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 고개 숙인 흙색의 사람 조형물이 있다. 사실 친정 집 거실에는 작품이 많아 난 전체적인 분위기만 보곤 했지 디테일을 들여다보진 못했다. 근데 우주는 작품 하나하나 만져보고 자세히 관찰한다. 그 흙색의 사람 조형물도 우주가 고개를 숙이고 그와 눈을 맞춰 표정까지 확인했는지 조형물의 손을 잡고 말했다.

“괜쨔나요? 울어요? 내가 손 잡아주께!“


아버님의 장례식 전에도 우주는 “곰돌이가 슬퍼!”, “루피가 똑땅해!”같은 표현을 쓰며 슬픔이라는 감정을 짐작하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엄마와 떨어지며 우주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겪고 마주하게 됐다. 그리고 그 이후로 우주는 조형물과 그림 속 사람들에게 공감해 주고 나름의 위로를 해주게 되었다.












3n살이 되면 위로가 좀 쉬워질 줄 알았는데 위로에는 짬밥이 쌓이는 것 따위 없는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위로가 하면 할수록 느는 것이 아닌 이유는, 아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심연의 바다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진심을 담으려 해도 경험하지 못한 삶에 대한 위로는 가볍기만 하고, 경험해 본 삶에 대한 위로는 짧기만 하다.


그렇지만 위로에도 경험에 따른 짬밥이 있긴 하다. 경험하지 못한 삶에 대한 위로는 정말 막막한 수수께끼 같지만, 경험해 본 삶에 대한 위로는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지에 대한 가늠 정도는 되니까. 물론 경험이 과거에 존재한다는 필연적 이유로, 당시 겪은 고난과 감정의 정도가 많이 요약되어 기억되고는 하지만..


우주가 조형물들에게 위로를 건네기 시작한 것도 엄마와 예상치 못하게 오래 떨어진다는 슬픔을 짙게 겪고 나서였다. 슬픈 조형을 보면 ‘어 얘도 엄마가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잠시 사라진 건가?’라고 생각됐나 보다. 그래서 ”우주가 꼭 찾아줄게! “라고 말한다거나 ”내가 손 잡아줄게! “라고 한 게 아닐까.












어느 날 나의 소중한 친구 K와도 앞서 적었던 ‘삶의 경험치와 공감(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왜 우리는 겪은 일만 제대로 알고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사이에 꽤 오래된 주제였다. 당시 K가 언어도 다르고 낯설기만 한 타지에서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하고 아프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나는 K가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누군가를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네가) 너무 힘든 일만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때 K는 ‘그럼에도 다양한 마음을 이해하고 어루만지고 싶다.’고 했다. 아마 나의 주된 역할이 엄마이고, 그녀의 주된 역할이 성직자이기에 나온 문장들이지 않을까 싶다. K의 그 말은 한동안 내게서 떠나가지 않고 맴돌았다.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자만하지 않기 위해,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을 갖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스스로를 위로할 수 없는 상황을 겪어야 한다는 것. 그 달갑지는 않은 숙명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K와 내 생각의 중간쯤에서 기도했다. 부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나이에, 시기에 맞는 고난만 주세요,라고. 고난을 달라는 기도라니… 참 이상한데, 어차피 겪고 공감해야 한다면, 그 고난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에 겪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는 말이 좋다. 조금은 생각이 짧고 자기중심적이어도, 해맑고 장난꾸러기인 아이들을 보는 게 좋다. 분명 그 시절의 행복이 그의 앞에 오는 힘든 일들을 극복하게도 해줄 테니까. 연시(年始)라 그런지 나의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무탈하고,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부디 감당할 만큼만 힘드시고, 그보다 더 큰 사랑과 위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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