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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참 Jun 07. 2023

“엄마 태어나주서 고마워.” : 사랑의 완성

우주의 언어, 26개월


우주의 26개월, 그 한 달간은 우리 가족에게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일단 나와 남편은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어른들도 적응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은 역시 우주였다. 우주의 어린이집 등원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주변만 둘러보아도 두 돌 이후까지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아이는 정말 희귀했다. 친구들도 복직을 하든, 하지 않든 아무리 늦어도 돌 전후로는 아이를 등원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다들 두 돌까지 어린이집의 문턱을 넘지 않은 나와 우주를 보며 신기해하기도 하고, 혹여 내 건강이 상할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사실 내가 우주를 두 돌 넘게 원의 도움 없이 혼자 집에서 키운 이유는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내가 읽은 책들로 인해 인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심리학과 교육학 관련 도서를 좋아했더랬다. 그리고 그 책들은 말하고 있었다. 24개월 혹은 36개월 간은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이의 정서적으로 좋다고. 물론 이 말을 무작정 따른 것은 아니다. 우주는 아기 때부터 불안감이 많은 아이였다. 내 아이의 기질 상 오래 함께 있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도 한 몫했다. 물론 정말 힘들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치명적인 귀여움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엄마와의 삶이 익숙해진 우주에게 어린이집을 가는 첫 두세 달은 악몽 같았을 거다. 실제로 새벽에 악몽을 꿔서 울며 일어난 적도 많다. 어른들도 새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힘든데 어린아이의 첫 환경 변화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새로운 사람, 새로운 공간, 그리고 엄마의 부재. 우주의 스트레스는 가시적으로 몸에서 나타났다. 우주 일생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배탈이 난 것이다. 열이 나길래 감기가 시작되나 했는데 밤새 설사를 하는 나날이 한동안 지속됐다.


뭐든지 잘 먹는 우주는 사실 설사를 해본 적이 없는 튼튼이였다. 그런 우주가 고통스러워하면서 응가를 하는 상황이 나도 처음이라 어쩔 줄 몰랐고, 그렇게 오열하며 아파하는 우주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픔이 깊어졌다. 어린이집을 보내는 일이 부모로서 마음이 무거워지고 힘든 일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어린이집은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니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아픈 우주 앞에 내 마음이 바스러졌다. 너무 늦게 보내서 더 힘든 것은 아닐까 스스로 탓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우주가 조금이라도 편안해질까 꼬리에 무는 고민을 했다.










일어나 보면 우주는 내 손을 잡고 찡그린 얼굴로 울고 있다. 배가 아프다고 손에 힘을 준다. 그런 우주가 덧붙이는 말은


“엄마, 내가 미안해..”였다.


새벽에 정신없이 자는 나를 깨웠다는 게 우주는 미안했던 거다. 아픈 것이 미안하다니… 마음이 아파 우주를 안아주며 설명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주야.

우주가 아프면 언제든 엄마를 깨워.

엄마, 아빠는 우주를 도와주기 위해 있어.

엄마가 기저귀 갈고 씻겨줄게. “








그렇게 샤워까지 하고 나온 우주는 힘이 없다. 먹은 것이 변변치 않고, 적으니 기운이 있을 리가. 우주를 눕히며 언제든 배가 아프거나 응가를 하면 엄마나 아빠를 또 깨우라고 말했더니 우주가 작게 이야기한다.


“엄마 태어나주서 고마워.”


꼬마가 이런 말을 어떻게 하지?라고 놀라는 찰나, 어둠 속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우주는 낯설기만 한 환경에 적응하고, 엄마의 부재를 견디느라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한데 그 와중에도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우주야, 우주도 태어나줘서 고마워.

너무너무 고마워. “


나는 이 작은 아이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걸까. 내리사랑이라고 우주를 향한 내 마음이 단연 더 크다고 생각했는데, 도통 그런 생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게 사랑은 언어로 완성된다. 그 언어가 어떤 형태이든 화자로부터 표현이 되어야 상대에게 닿을 수 있다. 몸짓, 표정, 말투 다양한 표현 방식이 있겠지만, 우주와의 새벽 대화로 나는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가 결국 사랑을 완성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니 오늘도 따뜻한 말로 내 진심을 표현하는 엄마, 딸, 아내, 친구가 되어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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