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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참 Jul 02. 2023

“하늘 좀 봐!” : 우리는 늘 지각하지만

우주의 언어, 28개월

아이들마다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기간은 다르겠지만 우주의 경우 마음이 편안해지는 데에 한 달이 족히 걸렸다. 오랜 가정보육 탓인지 엄마가 없는 환경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았나 보다. 등하원 의식도 만들어 보기도 하며 나도 엄마로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기는 했지만 우주가 스스로 온전히 버텨야 하는 몫이 당연히 더 컸다. 우주에게 내가 모르는 시간이 생기고,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하나씩 추가됐다. 남편과 나도 마음으로는 우주가 잘 해낼지 불안했지만 그 감정들을 곱게 싸서 들키지 않는 법을 배워나갔다. 우리가 부모로 할 수 있는 일은 어린이집 생활을 응원해 주는 것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이라는 감정을 집이라는 안정으로 희석시키는 일이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안정’이 되어야 했다.


어린이집에 관한 한 엄마, 아빠가 능동적으로 개입될 수 있는 시간은 등하원 시간뿐이다. 그리고 그리운 집으로 향하는 하원보다는 새로운 환경인 어린이집으로 가는 등원이 더 힘들다. 그 시간을 좋은 기억으로 채워나가다 보면 우주가 어린이집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예쁜 핀을 직접 고르게 하기도 하고,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고 가기도 하고, 색깔 찾기 놀이같이 게임을 하면서 등원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노력에도 우주가 나와 떨어질 때면 어김없이 눈물을 비쳤다. 매일매일 오열한 것은 아니었고 어느 날은 눈물 없이 쿨하게 떠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초보 엄마인 나는 ‘우주가 드디어 마음을 여나봐!’하며 쉽게 들뜨곤 했다.














그날따라 모든 게 수월한 날이었다. 늦잠이기는 했지만 아침에 평화롭게 눈을 떴고, 옷을 갈아입을 때도 덤덤했다. 현관에서도 스스로 가방을 메며 “쪼쪼미집(선생님집) 가야겠다!”하더랬다. 비장의 무기인 자전거도 든든하게 현관에 타고 나가기 좋게 세워져 있었다. 어린이집은 집 앞이 아니고 길을 건너야만 갈 수 있다. 보통 내 걸음이면 10분이 걸리는 거리인데 우주랑은 두 배가 걸린다. 우주의 속도에 맞춰서다. 우주는 가다가 멈춰서 멍을 때리기도 하고 개미나 나비 같은 곤충을 뚫어져라 관찰하기도 한다. 이 날은 하늘이 새파랗게 푸르고 양 떼 구름이 보였다. 그걸 보고 우주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하늘 좀 봐!

구름도 너무 예쁘다! “


등원길에 하늘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마음의 여유가 우주에게 생겼다니 고마웠다. 여유는 지각을 만들지만 그래도 괜찮다.















어린이집 선생님들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딸의 지각이 사실 마음에 든다. 조금 늦더라도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손 잡고 걸으면 우주의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이런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나름대로 천천히 음미하고 싶다. 예전에는 마음을 급하게 먹고 맡은 바를 빠르게 해치우면 시간을 퍽 잘 쓰는 것 같았다. 투두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는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내가 효율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서른둘의 나는 마음이 느긋해야 지나가는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 와는 조금 다르게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도 중요해졌다. 아마 이런 변화의 시작점은 느긋함의 대명사인 남편 덕일 것이다.


그렇게 우주를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은 왜 9시쯤 전화를 안 했냐는 거였다. 우주와 등원 준비를 하면 늘 9시쯤에는 아빠에게 전화를 했기 때문이었다. 어린이집이 가기 싫은 마음 반, 그래서 더 아빠가 보고 싶은 마음 반이었으리라. 그런데 오늘은 아이가 아빠에게 전화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마음이 잔잔했던 거다. 어른들도 새 환경이 낯설고 무서운 것은 마찬가지다.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것을 해내고 있는 우주가 사뭇 멋지다. 나보다 낫네! 하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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