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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참 Jul 20. 2023

"포르투카에서 살고 싶어.” : 여행 안의 행운

우주의 언어, 30개월

전 편에 썼듯 아이와의 여행이 힘든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주가 어느 정도 자기 통제가 되는 나이가 되면 꼭 다시 먼 나라에 우주와 함께 여행 가고 싶다. 미래에 우리를 웃음 짓게 할 추억들이 너무 많이 생겨서다.








잃어버린 지갑이 돌아오다.


모든 일에 처음이 가장 힘든 이유는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 편하게 마음을 놓는 일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일 거다. 여행도 첫날이 가장 긴장 상태다. 스스로만이 아니라 아이의 안전과 행복도 내 어깨 위에 두고 여행을 해야 하니 리스본에서의 첫날에는 기대감과 함께 책임감도 바짝 따라왔다. 나와 남편만 여행할 때는 짐도 콤팩트하고 스케줄도 유연하게 맞출 수 있었는데, 불 보듯 뻔한 이야기지만 아이와는 불가능했다. 짐을 줄이고 줄여도 무게가 있고, 계획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것을 보여주자라는 마음을 접고 아이가 편안하고 힘들지 않게만!이라는 생각을 채웠다. 어차피 배경은 리스본이니, 그냥 앉아만 있어도 그게 어디인가라는 소박한 행복이 심어졌다.


남편과 나는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나는 MBTI로 보면 J 성향이 강하고 남편은 엄청난 P이다. 이미 아시겠지만 여행을 할 때에 이 성향은 두드러지게 차이가 난다. 나는 다음 날 갈 곳들을 대충이라도 정리해 두고 갈 방법과 주변 맛집 정도는 서칭을 해둔다. 짐도 미리미리 싸두고 중간중간 잃어버린 물건이 없는지 체크한다. 남편은? 여유를 갖고 걸어간다. 즐긴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온다. 이리 써놓으니 나만 바쁜 것 같지만 사실 시간을 들여 기다리는 일을 남편이 도맡아 했고 내겐 그런 일들이 더 어렵다. 그러니 참으로 상호보완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첫날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에 실패한 거다. 남편에게 짐을 맡기고 나는 아이를 살피기로 둘이 나름 첫날의 포지션을 정했는데 남편이 마트에서 계산을 한 후 지갑을 거리에서 잃어버리셨다... 우리의 여행 경비를 쓸 수 있는 수단이 대부분 지갑에 있었기에 리스본 거리의 집들처럼 하늘이 노래졌다. 아이와의 여행에서 어떻게 그리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는지 화가 치밀어 오르려는 찰나, 한 아저씨가 내 어깨를 쳤다. 급하게 뛰어온 듯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우리가 그리 오매불망 찾던 지갑이 있었다.


“이거 너네가 떨어뜨린 거지?” 하며 건네주는데 고마워서 허리를 몇 번이고 숙이며 오브리가다(고마워)를 외쳤다.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전하는 게 서양 문화와는 동떨어지는 것을 인지한 것은 그가 사라지고 나서였다. 그만큼 고마워서 어떻게든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던 거다. 유럽은 소매치기가 많다던데 리스본 아저씨는 지갑을 찾아주네. 리스본 여행에 마음을 열린 순간이었다.











She’s beautiful. & After you!


사실 포르투갈 사람들이 타 유럽인 대비 친절하다고는 남편에게 익히 들었다. 여행에 있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큰 행운이기에 리스본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도시였다. 유모차를 끌며 가는 우리에게 “거기 힘든 길이야. 다른 길로 돌아가.” 하며 쉬운 길을 알려주셨던 할아버지, 김포에 5년을 거주해 한국말 엄청 잘한다고 하시며 유난히 우리를 반가워하시던 마트 아저씨, 다른 장소에서 만난 우리를 기억하고 신기하다고 말을 거는 거리 예술가 등 우리는 매일매일 행운을 만났다.


전 편에서 아이와 함께라 여행이 유난히 힘들었다고 했지만 사실 아이와 함께이기에 유난히 모든 게 수월하기도 했다. 우리가 여행하던 시기 리스본에서 동양인을 보는 일은 힘들었다.(아마 코로나 시기의 영향이 컸을 거다.) 한국인을 보기는 더욱 어려웠고, 아이와 여행하는 한국인은 정말 딱 한 번 봤다. 그러니 리스본 사람들에게 동양 여자 아기는 흔치 않고 신기할 수밖에! 포르투갈을 여행하며 느낀 건 전반적으로 아이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다는 거였다. 씩씩하게 걸어가는 우주를 보며 내게 ”She’s so beautiful!”이라고 미소 지으며 말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밥을 먹을 때에도 뒤에 있던 영국 부부가 자리를 뜨며 “Thanks for being lovely and well-behaved child.”라고 인사해 주며 갑분 합장을 하고 떠나기도 했다.


우리 숙소의 호스트였던 카타리나도 우주가 혹시라도 아프면 언제든 자기에게 연락하라고 말했다. 사실 매일 일이 바쁘긴 한데 아이의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화장실이나 마트에서 줄을 설 때도 사람들은 우주를 안고 있는 우리에게 늘 “After you!(너네 먼저 가!)”라고 말해주었다. 땀이 삐질거리며 힘들어하는 우리에게는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유명한 관광 명소들은 어린 아이와 함께면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항상 양복을 입은 경비원분들이 우리를 불러 따라가면 바로 입장을 하곤 했다. 어른들에게만 배려를 받은 게 아니다. 우리는 우주를 위해 매일 두세 번은 놀이터를 갔는데, 포르투갈 아이들은 놀이터에서도 축구를 한다. 그런데 놀이터 안으로 들어오는 작은 동양 여자 아이를 보고 아이들이 공을 약하게 차기 시작하는 거다. 우주가 놀 수 있게 공간을 만들어 주기도 하면서. 한국에서보다 비교적 불특정다수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느낌을 우주도 받았는지 아침을 먹는데 “나 포르투카에서 살고 싶어.”하는 거다. 우주의 마음이 편안한 여행이라니 이번 여행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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