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우주 동화
사람들은 사라지는 생각을 붙잡아 두기 위해 글자를 만들었어요. 글자는 스스로 살아 숨 쉴 수는 없었어요. 글자는 사람이 손으로 쓴 의미만을 가질 수 있었고 마치 운명처럼 그 뜻을 받아들여야 했어요.
그건 우주의 일기장 위에 적힌 글자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우주가 행복을 쓰면 글자들은 행복했고, 우주가 슬픔을 쓰면 글자들은 슬픔을 느꼈어요. 일기장 위의 글자들은 우주가 쓰는 대로 느끼고 겪었죠. 그런 의미에서 우주는 글자들의 하루를 결정했어요.
일기장 위의 글자들은 우주에게 익숙해졌고, 정이 들기 시작했어요. 글자들은 우주의 따뜻한 손가락이 닿는 느낌, 꾹꾹 눌러써서 들어가는 종이의 곡선, 사각사각 연필 깎는 소리 같은 것들을 좋아했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주의 일기장이 슬픔으로 가득 찼어요. 그렇게 된 지 이미 한 달이 되었죠. 우주가 키우던 강아지인 ‘낮잠이’가 하늘나라로 가버린 후였어요. 우주가 낮잠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에 글자들도 마음이 시려지는 것을 느꼈어요.
<2021년 3월 26일 일기>
엄마는 하나님이 낮잠이를 너무 사랑해서 먼저 데려갔다고 했다. 나도 낮잠이를 너무 사랑하는데. 하나님은 너무해.
<2021년 4월 1일 일기>
낮잠이가 꿈에 나왔다. 우리 방에 있던 자기 공을 가지고 다시 나갔다. 낮잠이는 공만 보고 싶었나 보다.
글자들은 우주가 걱정되었어요. 일기장에 슬픔이 잠깐씩 왔다간 적은 있지만 이렇게 오래는 첨이었기 때문이에요. 우주가 잠든 밤, 글자들은 종이 위에서 어떻게 하면 우주에게 도움이 될지 이야기했어요. ‘ㄱ’이 말했어요.
“우리 우주 일기장의 내용을 바꾸는 건 어떨까.
아주 조금씩만 말이야.”
글자들은 일기 내용을 고쳐본 적이 없기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랑스러운 우주를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죠. 그렇게 해서 일기 내용이 바뀌게 됐어요.
<2021년 3월 26일 일기>
엄마는 낮잠이를 하나님이 너무 사랑해서 먼저 데려갔다고 했다. 하늘에는 우리 집보다 간식이 더 많기를.
<2021년 4월 1일 일기>
낮잠이가 꿈에 나왔다. 우리 방에 있던 자기 공을 가지고 다시 나갔다. 낮잠이가 꿈에 자주 나와줬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한 달간의 일기를 조금씩 수정했어요. 우주의 기억을 바꿀 수는 없느니 ‘느낀 점’ 부분만 각자의 위치와 모양을 조금씩 바꿔나갔어요. 우주가 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뭔가 바뀌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죠.
며칠이 지나고 우주는 일기를 쓰기 위해 공책 앞으로 다가왔어요. 종이 위의 글자들은 모두 두근두근했죠.
<2021년 4월 26일 일기>
은하가 강아지 인형을 들고 찾아왔다. 낮잠이가 생각나서 들어오지 말라할까 하다가, 은하가 웃고 있어서 거절하지 못했다.
우리는 같이 재밌는 만화도 보고, 웃긴 춤도 췄다. 다음에는 내가 은하 집에 가기로 했다.
글자들의 계획은 성공했어요. 우주의 글자들은 우주처럼 조금은 행복해졌어요.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단다. 힘든 일은 모두에게 찾아오지. 하지만 그 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아.
동화 속 우주처럼 슬픈 일에 슬퍼하는 것은 건강한 거야. 하지만 슬픔이 동화 속 우주보다 커지길 놔뒀다면 은하처럼 좋은 친구가 왔을 때 문을 열어주지 못했겠지. 다행히 글자들 덕에 동화 속 우주는 은하에게 좋은 친구가 되기로 한듯해. 글자들처럼 스스로 선택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우린 다른 길로 가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