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정지

by 함사람


인생에 어떤 일이 있을 때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여행, 일상, 운동, 취미생활 모두 혼자여도 뭐든지 잘 해내서 사람 그 누구에게도 감정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잘 지내왔으니 그랬다. 내가 의지한 것은 말없이 나란 한 사람을 지나가면 지나가는 대로 머물면 머무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비춰주던 나무와 풀들과 자연, 그리고 우리 집 터래기들이었다. 고독함이 무엇인지는 알아도 외로움은 모르는 그런 사람이라고 여겨왔는데, 그 단단한 믿음은 나를 떠올리고 배려해 주는, 그런 나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배반하는 것이었음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어리석고 오만하였다.


멈춤. 삶을 잠시 멈추고 싶을 때는 나는 엄마, 아빠를 찾는다. 삶은 멈추고자 하는 것은 더 이상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거나 생을 끊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자신을 어르고 달래 어떻게든 끌고 간다. 남들이 하는 만큼, 남들이 사는 만큼은 아니어도 나만의 속도로 그만큼만 해도 충분한 나로 사는 것이 지속 가능한 삶인데, 그 삶을 영위하려면 나에게는 일시정지 버튼이 필요하다. 그 버튼을 수시로 누르고 싶은 것은 아니고 나 자신을 키우다가 힘에 부칠 때다. 타의로 인한 강제 독립생활이 8년째, 그러니 부모와 떨어져 산지도 8년째다. 혼자 사는 삶은 지금도 충분히 자유롭고 좋다. 그 자유로움이 안식이자 도피처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가끔 어떤 일들을 겪을 때 1인 가구로 산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을 종종 마주했다. 집이 법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나 법무사를 찾아 일을 자문할 때, 나름 내 인생에 큰일이 생겼을 때 나는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음에도 사회에서는 커다란 최약체 집단에 애매하게 속해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시간이 빠르게 돌아가거나 내 삶을 살다가 버거울 때쯤 나는 또 다른 나의 천국에서 다시 삶은 재충전하고 온다. 복잡한 생각과 나에게 얽혀있는 일들 그리고 혼자 있을 때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들이 그곳에 가면 모두 일시정지가 된다. 새로운 생활 방식이 만들어지고, 내 시계대로 삶이 돌아가다가 그곳에 가면, 처음 몇 년은 이걸 어떻게 다 듣고 살았을까 싶은 생활 소음과 방식들이 낯설다 못해 견딜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갈등과 슬픔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 가족이고 나에게도 물론 모든 날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나, 대개는 많은 날들이 또 하나의 안식처가 된다.


긴요한 일이 아닌 이상 평소 나의 부모님은 살갑게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하진 않았다.

왜 다정하게 위로를 해주지 않느냐 원망을 한 적은 없다. 위로의 방식은 다양하기에. 한참 묵혀뒀다 메시지를 보내준다거나 내가 무슨 일이 있든 애써 캐묻지 않고 내가 말하지 않는 이상 요즘 어떠냐 물어보지 않은 채 말없이 지켜본다. 그리고는 맛있는 음식을 사주거나 만들어준다. 언제나 내가 먹고 싶은 것으로. 어쩌면 그것이 내가 배운 위로의 방식인 것도 같다.


아빠의 정원과 직접 키운 작물들, 엄마의 음식과 가족이란 품, 이전의 익숙한 나로 살게 하는 것들이 말없이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의 정신적 지주인 반려동생들이 그곳에 있다. 사람이 아닌 동물과 산다는 건 자신보다도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내어주고 어떤 것들은 포기하고 희생해야 그 사랑이 동등해진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걸 내어줬다고 하지만 하늘로 보내고 나면 사실 내가 그들로부터 훨씬 많은 것을 받았음을 깨닫는다. 부모의 내리사랑은 내가 반려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닮았다. 우리는 꼭 누군가를 먼 곳으로 떠나보내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 존재들이 주는 사랑은 끝도 없음을.


사랑은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가. 완벽한 사랑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 내게도 있다. 존재함만으로 힘이 되는 이들의 사랑을 떠올려본다. 고민과 걱정을 모두 알지 못한 채 그들 역시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이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가늠해 본다. 마음의 여유를 나눠주고따뜻한 말을 건네주고 무언의 사랑을 보내주는 그들을 위해 평온하고 건강하길 묵묵히 기도 한다.


일시정지의 시간을 보내고 재생을 눌러 다시 나의 시간으로 돌아오면 짧게나마 얻은 동력으로 1인분의 삶을 살아간다. 우리가 오래오래 삶의 희락을 나누길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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