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어둠을 만났다. 7월의 마지막 날까지만 해도 근 몇 년을 포함해 내 삶은 큰 파도 없이 평온했다. 기억이 미화됐다고 해도 많은 날이 그랬다. 어깨가 다쳐 수영을 쉬고 있어서 울적한 날이 있을지언정 일주일이나 쉴 수 있는 오랜만의 휴가였다. 아주 소소하고 별일이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시한 여름 방학.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평소의 나는 운전을 할 때 터널을 지나가는 걸 싫어한다. 긴 터널을 만나면 폐쇄된 공간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동공이 커서 빛 번짐이 심하므로 어두운 터널은 나에게 쥐약이기 때문이다. 터널을 지나면 곧 밝아지고 또다시 어두워져도 이 어둠은 끝이 나니 불편함을 안고서라도 지나갔다. 그렇게 버텼으나 더 또렷한 시야로 터널을 잘 지나가기 위해 안경을 맞춰야 했다. 미루고 미뤄둔 안경 맞춘 날이 8월 1일이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기 좋은 날, 1일.
그날 아침, 재발급받은 카드가 소식이 없기도 했고, 우편함에 쌓여있을 고지서들이 생각났다. 고지서들 사이에 껴있던 카드사에서 보내온 우편 하나.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내 것은 아닌데 이전 세입자인가. 아닌데 그 사람은 여자인데, 남자 이름이다. 낯익다 누구지.’ 생각이 났다. 임대인. 5년 전의 일이 평행선처럼 펼쳐졌다. 그때의 전셋집 일로 나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 무너지고 갉아지고 그렇게 버텼던가. 결코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함께 힘들어했던 가족들을 떠올리면 그것만큼 나를 괴롭히는 것은 세상에 없었다. 그런데 그 일이 다시 나에게 일어났다. 임대인이 연체한 카드 빚은 7천만 원에 육박했다. 임대인 이름을 재확인차 중개했던 부동산에 들렀다. 역시나다. 전화해서 확인을 해야 했다. ‘이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이마를 짚었다. 전화번호를 없앤 임대인, 이 집에 걸린 가압류, 앞으로 펼쳐질 법적 과정들이 나를 괴롭혔다. 시간과 돈을 버리는 일. 그 일을 알게 된 날부터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찾아야 했다. 법무사를 찾아갔고 변호사 7명과 전화상담을 했다. 또 전세사기 피해자 오픈 톡방에 들어가기도 했다. 중개사 말이 본인이 이 업을 15년 넘게 해 오면서 전화번호를 없앤 집주인은 처음 본다고 했다. 나, 로또인가. 삶은 가장 평온할 때 따귀를 때린다는 아무개의 말이 맞았다. 누구
의 삶도 평온한 듯하지만 그렇지 않듯, 나의 삶도 평온한 듯 그렇지 않았다. 흔들리는 파도, 태풍의 눈처럼 그 안에서 정온함을 찾아 사는 것이 내 삶이었다. 내가 한량 같은 마음으로 살아서 그런 걸까, 이 일을 또 어떻게 지나가지. 이 터널을 나는 또 어떻게 지나가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무서웠다. 차라리 출근해서 일하는 시간이 마음이 편했다. 누군가와 북적이다가 집에 혼자 있는 밤이 되면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 불안함에 잡아먹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자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친구의 신경안정제 추천이 다행히도 효과가 있어 밤에는 꼭 먹고 자야만 했다. 정확히 일주일 만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동안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파악하고 지금은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긴 터널은 정말 싫다. 그럼에도 이 터널도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을 5년 전과는 다르게 나는 이제는 안다. 끝이 나면 내가 좋아하는 환한 빛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퍼붓는다’라는 단어로 부족한, 극단적으로 쏟아지는 비가 벌써 여러 해다. 비가 유난히도 퍼붓는 날이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너무 많이 와서 낮인데도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물줄기를 뚫고 달리다가 첫 번째 터널에 들어갔다. 알게 모르게 긴장이 되었나 보다. 숨통이 트이며 “휴, 살 것 같다.”라는 말을 뱉었다. 마치 첫 숨을 내뱉은 신생아처럼 ‘탁’하고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내가 싫어했던 터널은 꼭 어둠의 공간이 아닌 바깥세상의 험난함으로부터 피난처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사람들은 흔히 고통과 힘듦을 견디는 시간을 인생의 터널을 통과한다고 비유하지 않나. 나 역시 그랬다. 터널은 어둡고 길고 잘 보이지 않는 마치 나의 미래와 같은 거였으니까. 그런데 세차게 내리는 바깥세상의 비를 피할 수 있는 곳도 터널이었다. 아, 이 어둠의 시간도, 비를 피할 곳도 나에게 필요하구나. 산과 동물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이 어둠의 터널을 잠시 피난처로 써야겠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떠올렸다. 나의 일상을 유지해서 모든 일을 지혜롭게 해 나아가기로 했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은 채로 잠시 이 고요함 속에서 기다리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그 순간 내 앞에 맞닥뜨린 이 어둠의 시간을 잘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전
히 마음이 자주 요동치고 궂은 요즘의 날씨처럼 오락가락이지만 어쩌면 나는 의외로 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여러 번의 어둠을 지나왔으나 안경도 맞췄겠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기에. 울고만 있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때로는 근본 없는 자신감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