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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잠깐 이별하자

by 일상이 글이 되는 순간

저녁 9시 이불 하나 챙겨 들고 혼자서 갑자기 길을 나섰다. 아니 갑자기는 아니다. 얼마 전부터 고민하고 있었던 일이다. 우리 가족은 아들의 군 입대로 한 달 전쯤에 진주행 KTX 3장을 예약해 놓은 상태이다. 그러나 진주에 도착하여 아들 점심도 먹이고 부대까지 이동하기 위한 교통수단이 만만치 않아 자동차를 가지고 갈 것인지 기차를 타고 갈 것인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들의 군 입대를 위해 큰 결단을 내렸다.(새벽에 가족 3명이 동시에 출발하면 길이 막혀 입소시간 안에 도착 못할 수도 있으니 내가 전날 저녁에 출발하여 안전하게 먼저 도착하여 다음날 기차 타고 오는 아내와 아들을 만나기로)

사실 우리 집 자동차는 2018년 쏘울 전기자동차로 DC 차데모 충전 방식이라 충전소도 별로 없고 한번 충전으로 몇 킬로 가지도 못하는데 진주 훈련소까지 약 350킬로미터로 숫자적인 단순 계산만으로는 한두 번 충전하면 되겠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그날의 기온에 따라, 주행 속도에 따라, 히터의 사용 시간에 따라 주행 가능 거리는 급속히 변한다. 70~80킬로 주행 단위로 가다가 충전하고 가다가 충전하기를 반복해서 7시간 30분 만에 진주역에 도착하니 새벽 5시가 조금 안되었다. 긴장도 풀리고 졸음이 몰려와 알람을 맞추고 차에서 잠을 좀 청했다. 드디어 열차가 도착되어 우리 셋은 얼마 후 큰 이별은 잊은 채 반가운 상봉을 했다. 아들이 훈련소에 입소하기 전에 맛있는 점심이라도 먹여 들여보내려고 맛집을 찾아가서 줄 서서 기다린 끝에 점심을 먹고 훈련소로 향하는데 차량 행렬이 너무 길어 제시간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아내와 아들만 자동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게 빠를까 걱정을 많이 하며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입소시간에는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입소식을 거행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약간의 입소행사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소대별로 모여 행진하며 부대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이런 생이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들은 엄마가 걱정할까 봐 애써 웃음을 보이며 손을 흔들어주고 애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손을 흔들어주고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시선을 피하면서 건강하게 잘 갔다 오라는 말만 큰소리로 되풀이한다. 혹시나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들이 핸드폰 끄고 반납한다는 문자를 받고 나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아내는 울기만 하고 나는 또다시 7시간 넘게 운전을 하면서도 피곤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적막한 집안

무엇인가 빠져버린 상실감

여기에 있던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허무

엄마를 부르고 있지는 않은지

괜히 눈물이 난다. 슬픔이 복받쳐 오른다. 누가 누구 때문에 이런 생이별을 해야 하는가

분단의 아픔

소식도 모르고 연락도 안 되는 초조한 하루하루,

잘 적응하고 있는지 시간은 너무 더디 간다.

그나마 다행으로 주말에는 한 시간씩 핸드폰을 돌려줘 통화를 할 수 있게 해 얼마나 다행인지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일주일이 지나고 전화로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던 시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잊고 지내기로 한다. 힘들지만 생활 속에 묻고 지내려고 이 일 저 일 손에 잡아본다. 그렇게 1년 같은 5주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아들을 만나러 퇴소식에 간다. 이번에는 아내와 같이 새벽 2시에 길을 나선다. 가다가 충전하고 또 가다가 충전하고 약 7시간 만에 도착했다. 9시가 좀 넘었는데 11시부터 시작인 수료식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5주의 시간이지만 사복 입고 입소할 때와는 다른 절도 있는 군인의 모습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든 군인의 모습들, 아들은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부터 보인다. 힘들어서일까 엄마가 보고 싶어서일까

이렇게 우리는 군 입대로 생이별을 안긴 군대의 호의로 2박 3일의 휴가 시간이 주어졌다. 헤어짐 속에 다시 만남의 시간이 주어지고 3일이면 또다시 긴 시간 동안 헤어짐을 감내해야 한다.

네가 있던 자리, 네가 생활했던 공간인 집으로 돌아가면 3일 후 다시 떠날 때 처음 입소 때와 같은 미련과 그리움으로 또다시 힘들게 하기가 싫어서 일부로 3일의 휴가 기간 동안은 할머니 댁에서 지냈다.

다시 부대로 돌아가야 할 시간

이번엔 혼자 보내기가 미안해 자동차로 셋이 같이 간다. 아들은 올 때도 그랬던 것처럼 5주 훈련만으로 제대하면 좋겠다며 다시 돌아가기 싫단다. 마음이 심란하겠지.

세상의 아들들이 거의 같은 심정이겠지

이렇게 이별을 하고 우리는 각자의 일에서 슬픔을 견디며 그리움을 품고 하루하루를 기다리겠지

어쩜 이별은 사람을 더 그립게 하나 보다.


그 애틋함을 모아 아내에게 보내 본다.


"제목 : 우리 아이 군대 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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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출판사의 '국어교과서작품읽기 중1시'를 읽고 운명인 듯 글을 씁니다. 삶이, 자연이, 사물이, 일상이 글이 됩니다. 우연히 내게 온 당신께 길을 내기 위해 노크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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