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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우는 남자

가끔 혼자 우는 버릇이 생겼어요.


길을 걷다가

타인의 행복을 보고는,


음악을 듣다가

누군가 떠올리고는,


혼자 집에 있다가

옛날 생각을 하고는,


1.

오늘도 엄마 보러 갔다가 또 싸우 왔다.

"넌 처갓집 가서 농사일 도와줄 시간은 있고 우리 집은 이제야 오냐,

며느리 잘 못 얻어도 한참 잘못 얻었다,

오죽 못 난 놈이 그러고 사냐,

넌 벨도 없냐 뭐 좋다고 그렇게 붙어 사냐"


"엄마 좀 더 기다려 주면 안 돼요"


찾아가서 엄마 얼굴 한번 보고 이런저런 세상사는 얘기하다가 밥이나 먹고 오려던 건데 감정이 격해지면 서로 언성을 높이며 욕을 하고 싸우게 된다.

그때는 나나 엄마의 모습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하다.

내가 저런 놈 낳고 미역국 먹었다며 목이 메이고 눈물을 글썽이신다.

엄마에게 소리치며 싸우고 도망치듯이 돌아서 나오면 잘못하는 게 너무다는 생각에 미안해서 항상 가슴에 응어리가 진다.

목소리 커지기 전에 저번처럼 약속 있다며 둘러대기라도 하고 빨리 나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만 남는다.

모처럼 갔다가 렇게 싸우고 돌아 나오면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할 뿐, 어머니 댁에 자주 안 온다며 욕먹은 만 못하다.

그나마 큰맘 먹고 찾아 간 건데 이제 또 언제쯤이면 응어리진 마음을 헤집고 엄마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2.

장인 장모가 나를 욕할 때 아내가 거들어들 줄 알았다.

웬걸 같이 죽이 맞아 흉보는 것을 보면 그 옛날 신혼의 애틋한 감정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만 든다.

예전처럼 한번 안아 보려고 구걸하며 애원하다가 허망하게 뒤돌아 내방으로 돌아갈 때도 가정을 해체하지 않으려는 나의 덧없는 몸짓에 혼자 눈물만 흘렸다.

처갓집 가서 농사일 마치고 돌아와 지쳐서 곤히 자는 아내의 모습, 거친 숨소리, 왜 아내에게만 더 많은지 보기 싫은 흰머리 등을 보면 내 잘못만은 아닌 것 같은데도 애처롭기만 하다.

이런 애처로운 마음이 서로 부딪혀 싸울 때는 독기에 가려져 보이질 않는다.

치매에 병마로 누워 계시는 아버지 대소변 가려주며 아버지와 단둘이 곁에 있을 땐 왜 나의 부모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는지 원망하기도 하며 당신은 어떻게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느냐며 당신 부모도 늙고 병들어 봐라 하며 속으로 저주를 퍼붓기도 했었다.


3.

이제 쉽게 울지 말자.

살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외로운 시간들은 나에게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안겨 주었다.

밥 하기, 설거지, 빨래, 청소, 외로움에 적응하는 방법 등등

사실 지금 당자 혼자가 되어 산다고 해도 삶을 지탱하는 일상적인 생활에는 큰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가끔 혼자 있을 때 아내와 내가 둘이 살아가야 할 시간에 대한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상상은 항상 나에게 이로운 쪽으로 그려진다.

아픈 아내를 내가 돌보며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

나를 꼭 의로운 사람으로 미화시킨다.

어쩌면 상상 속에서조차 나에게 이로운 쪽으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먼 훗날에도 아내는 나를 지금처럼 홀대하려나,

언젠가는 아내로부터 그렇게 모질게 해도 참고 기다려줘서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다.

아니 어쩌면 그때도 따져 묻고 싶은 말은 숨기고 지금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나에게 왜 그랬냐고

도대체 왜 나를 힘들게 내버려 뒀냐고'


또 운다.


"그 사람 날 웃게 한 사람

그 사람 날 울게 한 사람

그 사람 따뜻한 입술로 내게

내 심장을 찾아 준 사람


그 사랑 지울 수 없는데

그 사랑 잊을 수 없는데

그 사람 내 숨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떠나가네요"


(출처 : 이승철 노래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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