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존재 더욱더 편하게 사시도록
스마트폰에 문자가 하나 와있다.
히뮤님의 생일을 축하드리며 가온헤어전품목 30%
DC/단문자제 시시 무료거부 08080808000
이게 언제 방문했던 헤어숍이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곳에서 생일을 축하한다며 메시지를 보냈다. 게다가 히무라니 이름도 틀렸잖아 나는 정성스럽게 애플폰의 정보아이콘을 눌러 발신자를 차단한다.
가족단톡방에는 하뮤 생일축하해라는 메시지와 장미꽃, 케이크, 풍선 이모티콘이 올라와있다.
나는 ㄱㅅ이라는 자음과 폭죽, 웃는 얼굴, 샴페인 이모티콘을 보낸다.
뭘 검색하기 위해 네버버 창을 열었더니 메인에 하뮤님 생일축하해요!라는 메시지와 풍선이 날아다닌다. 할 일도 별로 없기 때문에 메시지를 클릭해 본다. 김이나는 미역국사진과 함께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네버버가 말한다. 그 밑에는 내가 태어난 해의 띠와, 별자리와, 탄생석을 나열해 놓고 좀 더 아래를 보면 나를 위한 선물을 고르게 되어있다. 네버버가 이렇게 나를 생각해 주다니 조금 감동스럽다(물론 돈은 내가 내겠지만). 고글앱을 열었더니 역시 생일축하 메시지와 함께 꽃가루가 날리고 풍선이 떠다닌다.
나는 친절에 답하기 위해 내키진 않지만 조명이 환하게 켜진 원형 무대에 올라가 드레스 자락을 쥐고 다리를 굽히며 인사를 한다. 조명 때문에 부신 눈을 찌푸리며 관객석을 바라보니 네버버, 고글, 가족단톡이 띄엄띄엄 앉아있지만 무대를 주의 깊게 보지는 않는다. 네버버와 고글은 전 세계의 오늘 생일 맞은 이에게 메시지를 보내느라 굉장히 바쁘다. 그래도 나는 꽤나 기쁘다. 내가 이곳에 있기 위해 별로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한 번이라도 방문했던 헤어숍, 안경점, 쇼핑몰 또 로그인되어 있는 포털사이트는 잊지 않고 내 생일과 존재를 축하해 주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를 낳고 돌아오는 길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고 했다. 부른 배를 안고 병원으로 갈 적에는 작은 잎사귀들이 고사리손을 흔들었는데 나를 안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푸르게 변한 온 세상이 너무나도 생경하여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고 했다. 4월 말과 5월 초는 초목이 훌쩍 자라며 자기 모습을 바꾸는 시기이기도 하고 아이를 낳기 전과 낳은 후의 엄마의 세상 또한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엄마의 무의식이 풍경을 그렇게 본 게 아닐까
생일파티에 진심인 가족문화와는 상관없이 나는 생일주간이 되면 이상하게 우울해졌다. 어린아이주제에 갖가지 상념에 잠겨 껍데기 안으로 들어가는 달팽이처럼 내면으로 기어들어갔다. 가족들이 생일 케이크에 초를 켜고 소원을 빌라고 할 때도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혼란스러웠다. 원하지도 않고 준비도 안 했는데 세상에 던져졌다는 것이 좀 어색했다. 주변사람들이 내 생일을 거하게 챙겨줘도 부담스럽고 생일을 잊어버리고 안 챙겨주면 서럽고(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추면서) 뭐 그랬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일은 그냥 365일 중 똑같은 날일 뿐으로 더 이상 태어난 것에 킹 받아(열받았다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킹을 더한 신조어) 하지 않는다. 나는 태어난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래도 가끔은 생일을 빌미 삼아 가까운 사람을 괴롭히기도 한다. 왜 내 생일을 기억 못 하냐고 심술을 부리는데 그건 내가 심술을 부리는데 특화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아주 가까운 사람 한정이며, 사실은 생일에 아무 관심도 없고 잊든 말든 아무렇지도 않다.)
어릴 땐 몸과 마음의 불협화음이 컸는지 숨 쉬는 게 좀 힘들었는데 생일이 여러 번 돌아올수록 숨쉬기 편해짐을 느낀다. 이제 태어난 것이 어색했던 시기는 지났고 누군가 나에게 요즘 어떠냐?라고 물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는 게 편합니다.”
다시 돌아오는 생일에는 나는 또 얼마나 편한 존재가 되어있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