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탕보다는 샹궈파다. 매운 거 잘 못 먹는 맵찔이 일지라도 알싸한 마라맛은 또 좋아해서 비록 아기단계에서 신라면단계(라면회사의 한 상품이 맵기 단위의 척도라니 놀랍지 않은가!)지만 주기적으로 먹어주는 편이다. 마라탕이나 샹궈를 먹으러 가서 좋은 점을 꼽으라면 커다란 스테인리스 보울과 집게를 손에 들고 마음에 드는 재료를 골라 담는 것이다. 나는 주로 두부피나 유부와 피쉬볼을 담고 버섯종류와 숙주를 수북하게 쌓는다. 면은 옥수수면이나 넓적한 당면을 담는다. 샹궈냐 탕이냐에 따라 재료 선택이 살짝 달라지기도 한다. 샹궈일 때는 감자나 연근을 빼놓지 않고 넣는다. 연근의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샹궈양념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어제는 탕의 날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프로틴요구르트를 한 병 마시고 12시쯤 옥수수 한 개와 사과 세 조각을 먹고 나왔다. 그랬는데 뭔가 끼니를 못 챙겨 먹었다는 느낌 때문에 1시쯤 편의점에 들어갔다. 다음 일정이 있어서 식사를 하기는 어려웠다. 단백질바와 두유를 1분 컷으로 먹었다. 일정이 끝나고 네시쯤 뭔가를 먹어야겠는데 가고 싶었던 식당들이 거의 쉬는 시간이었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식당 사냥을 해본다. 둘러보니 그 시간에 영업을 하는 곳이 마라탕집과 가락국수집이었다.
마라탕 집에 들어갔는데 작고 깔끔한 데다 내가 그릇과 집게를 들고 주인장과 눈이 마주쳤는데 싱긋 웃는 폼이 마음에 들었다(주인장: 어서 마음껏 고르시게, 내가 맛있게 조리해 줄 테니). 거의 몇 년 만에 탕을 먹는 것 같다. 맵기 종류를 잠시 고민하다가 신라면 단계(!)를 골랐고 늘 먹던 대로 두부 종류와 유부, 버섯, 숙주등을 담아 사장님께 건네어드렸다. 기다리는 동안 얇게 썬 단무지를 종지에 담고 소스를 제조해서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땅콩 소스를 넉넉히 담고 다진 마늘과 설탕 조금, 굴소스 약간, 다진대파, 고추기름을 살짝 넣어서 만들었다. 핸드폰 배터리가 20퍼센트 정도 남아서 사장님께 핸드폰 충전을 부탁했다. 다른 건 몰라도 확실히 우리나라는 폰 충전인심은 정말 좋은 것 같다. 각종 스마트기계에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다? 그것은 모두의 안타까운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현대사회에서 스마트폰의 배터리는 과장 좀 보태서 거의 목숨 같달까).
곧 시뻘겋지만 하얀 국물에 각종 재료가 익혀 나왔다. 먼저 아삭아삭한 숙주를 집어 먹고 두부와 피쉬볼을 하나씩 집어 땅콩소스에 살짝 찍어먹었다. 밥 먹는 시간대가 아니라 그런지 번잡한 느낌 없이 충분히 천천히 씹으면서 먹을 수 있었다. 거의 40분을 앉아 마라탕을 먹은 것 같다. 먹다 보니 이른 저녁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가게 안으로 들아왔다.
마지막 피쉬볼을 땅콩소스에 찍어먹으며 엄마와 초등학생처럼보이는 딸이 사이좋게 보울에 재료를 담는 것을 바라봤다. 마라탕 먹기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