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군들 오늘 자네들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꼬막을 먹기 위해서다. 모두들 마음껏 먹고 마시도록. 물론 계산은 더치다."
나는 책상에 두 팔꿈치를 붙이고 두 손을 깍지 낀 뒤 목소리를 깔고 준비한 대사를 읊었다. 친구들은 조용히 목을 돌려 메뉴판에 써진 글자를 읽고 심사숙고했다. 가게 벽에는 이런 사진이 붙어있다. 갯벌에서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꼬막을 캐는 아낙들과 커다란 고무대야를 머리에 이고 가는 주인을 커다란 흰둥이가 발에 뻘을 묻히고 꼬리를 휘두르며 따라간다. 어쩌면 이 장면이 아니라 갯벌 위를 경운기 같은 기계가 지나가고 그 뒤를 흰둥이가 따라가는 것인지도 모른다(사실 안 간 지 10개월에서 일 년 정도 된 것 같아서 꼬막을 캐는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의 정확도는 떨어질 것 같다). 일단 간장꼬막을 시켰다. 간장꼬막은 꼬막 위에 파와 고추, 마늘양념을 얹어낸 것으로 꺳잎과 김이 같이 나온다. 밑반찬으로는 꼬들거리는 해초와 채썬오이를 새콤하게 무친 무침과 치커리 겉절이 그리고 따뜻한 두부와 볶은 김치가 작은 철판에 나온다. 꼬막이 나오기도 전에 두부와 볶은 김치로 입맛을 돋울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같이 기본으로 나오는 어묵탕은 어묵에 고추 파와 쑥갓만 들어있는데도 뜨끈하게 속을 풀어줘서 본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밑반찬이 동나고 만다.
나왔다. 간장꼬막. 야들야들하게 삶아 꼬막알만 젓가락으로 쏙쏙 빼먹어도 맛있지만 그래도 김과 깻잎을 함께 싸 먹으면 맛과 향과 식감이 풍부해진다. 김 위에 깻잎을 얹을지 깻잎 위에 김을 얹어야 할지 늘 고민되지만 나는 주로 깻잎 위에 김을 얹고 꼬막을 두 개 정도 올린다. 고추와 파 양념을 함께 넣고 해초도 몇 가닥 넣어서 쌈을 싼다. 깻잎의 향긋함과 김의 고소함 간장양념과 파와 고추, 담백한 꼬막이 어우러져 잘도 넘어간다. 간장양념이 좀 진한 편이므로 공깃밥을 두 개만 추가해서 나눠먹는다. 공깃밥을 더 시키지 않는 이유는 이따가 꼬막볶음밥과 묵은지가 얼큰하게 들어간 칼국수를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없이 마음껏 먹고 마시다 보니 양념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까 남은 밥에 양념을 얹어 먹어도 또 맛있고 양념을 밥에 비벼 먹어도 맛있다.(같은 맛일 것 같지만 사실 같지 않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좀 아쉬워서 간장양념 꼬막을 반접시만 추가해서 먹는다. 아까와 같은 과정이 또 반복되는 와중 이제 칼국수와 볶음밥을 주문해 둔다. 그래야 먹는 흐름이 끊기지 않고 꼬막을 거의 먹었을 즘에 칼국수와 볶음밥이 나올 테니까. 이제 콜라나 맥주도 좀 마시면서 한 템포 늦춰본다. 그 와중에 해초무침도 맛있어서 두 번 정도 리필했다.
볶음밥과 칼국수가 나왔다. 탱탱한 밥알과 꼬막을 파양념과 김가루를 뿌려 기름기 자르르하게 볶아 프라이팬에 담겨 나왔다. 그릇에 덜어 볶음밥을 퍼서 먹다가 붙기 전에 면을 먼저 먹었어야지, 앗차차. 이마를 치며 칼국수를 먹는다. 칼국수 맛은 별로 특별한 것 없이 묵은지가 들어가서 칼칼한 것뿐이지만 이상하게 칼국수를 먹지 않으면 깔끔한 마무리를 안 한 것처럼 어딘가 아쉽다. 가게가 동네에 있는 게 아니라 약간 마음먹고 가야 하기 때문에 한번 마음먹고 방문했을 때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제군들 오늘 꼬막. 마음껏 먹고 마셨는가. 자. 이제 각자 카드를 들고 계산대 앞으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