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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뮤하뮤 Nov 08. 2024

옛날돈가스


  어제의 일이다. 돈을 들여서라도 쉽게 갈 수 있으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요새 시간도 없고 정신이 산만하여 지금 만들고 있는 음원의 보컬은 Antares사의 오토튠으로 튠을 해보기로 했다. 떨리는 손으로 이십만 원 상당의 비싼 구독료를 지불하고 맥북의 iLok 같은 상당히 귀찮은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힘들게 설치해놓고 보니 의외로 쓸만한 게 없거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겹치는 기능들이 많았다. 결국은 늘 쓰던 멜로다인을 사용하여 수작업 튠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녹음된(마음에 안 드는) 보컬소스를 만지작거리다가 나갈 시간이 되어 기타를 메고 나갔다. 사과 두 조각만 먹은 터라 주린배를 움켜쥐고 영원히 오지 않는 경의선을 기다리며 자판기에서 요구르트하나를 뽑아먹었다. 맛은 있었으나 허기는 더 깊어졌다. 시간이 간당간당했기에 도착해서도 뭔가를 먹기는 어려웠다. 급한 대로 편의점에 들어가 단백질바를 낚아채듯이 나왔다. 목적지로 걸어가면서 바를 오물거렸다. 머릿속에는 1종 도로주행시험, 오토튠돈 아깝다. 배고프다는 문장이 꼬리를 물며 빙글빙글 돌았다.


  얼떨결에 빅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어리바리 다른 사람의 연주를 감상하다 네시가 넘은 시간에 거의 첫끼를 먹었다. 근처에 보이는 아무 식당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식당이 안 보인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3일 굶은 암사자의 모습에 빙의하여 사냥을 나서는데 저 멀리 메밀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생뚱맞은 노란 간판에 살짝 망설였지만 굶주린 처지에 무슨소리냐하며 들어갔다. 평소라면 얌전히 들기름막국수를 먹었겠지만 3일 굶은 것 같은 암인간은 이상하게 옛날돈가스를 주문했다. 육고기랑 친하지도 않은 인간이 옛날돈가스를 주문하다니 이상한 일이긴 하다. 기왕이면 망원동에 있는 가락국수집에서 파는 걸 먹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예전에 가끔 먹던 얼큰한 가락국수집에는 얇디얇은 고기에 적당히 두꺼운 튀김옷, 눅진눅진한 진한소스가 범벅된 옛날 돈가스가 있는데 일행이 시키면 몇 조각 맛있게 얻어먹었던 기억 때문일까. 익숙하지 않은 주문을 넣어두고 기다리면서 브런치 글을 읽었다.


  묘하게 식사가 늦게 나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기다렸다. 넓적하고 둥근 플라스틱 그릇에 큼직한 옛날 왕돈가스에 소스가 따로 나왔다. 이럴 수가 소스는 미리 뿌려서 튀김옷 깊숙이 맛이 배어야 하는데. 일단 소스를 골고루 뿌리고 잘게 잘라뒀다. 냉면과 메밀을 주로 하는 집이라 겨자소스와 식초가 식탁에 기본으로 깔려있었다. 밑반찬으로 무채를 새콤하게 무쳐놓은 것과 삭힌 작은 고추가 있길래 무채와 고추 몇 개를 셀프바에서 덜어왔다. 배는 엄청 고프고 튀김은 너무 많이 튀겨졌다. 빵가루 입자는 거칠어서 먹다 보니 입천장은 다 까졌다. 뭉쳐서 접시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밥은 차갑고 딱딱했다. 이래서 사람이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꼭꼭 씹어먹었다. 그래도 뜨거운 돈가스 튀김을 (냉면) 겨자소스에 찍어먹으니 먹을만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끝까지 먹었다. 요새 이상하게 끼니를 자꾸 놓치게 되는데 배부르게 밥을 먹여주는 언제나 고마운 일이기 때문이다. 밥때를 놓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오늘은 틈틈이 세끼를 먹었고 이제 남은 한 끼와 간식을 먹기 위해 떠난다. 보컬튠은 내일 기타 연습도 내일부터 하면 된다. 기쁜 소식은 오늘 1종 도로연수에 합격했으므로 즐겁게 한 끼를 해치우러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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