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집에 베지 옵션이 있으면 맛을 떠나서 일단 그 음식점과 주인장에 신뢰가 간다. 우연히 집시재즈 잼세션이 열리는 곳에 놀러 갔는데 놀랍게도 클럽이 아니라 음식점이었다. 높은 층고에 천장에는 커다란 팬이 돌아가고 바비큐 굽는 냄새가 났다. 세상에, 참여하는 연주자에게 공짜밥을 준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메뉴는 고기패티를 넣은 햄버거와 베지밤버거를 고를 수 있었다. 나는 베지밤버거를 고르고 잼세션을 시작하고 있는 연주자들을 바라보았다. 집시재즈는 주로 기타들이 모여 드럼을 대신하는 특별한 주법으로 반주를 하고 돌아가면서 솔로를 한다. 낯선 공간에서 집시재즈를 들으니 프랑스 어느 다리(왜 하필 다리일까, 모름)에 서서 버스킹연주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일단 배도 너무 고프고 집시재즈잼에는 별로 참여를 안 해봐서 일단 음식이 나오면 먹고 눈치 봐서 시작해야겠다 생각하며 몇 곡을 더 듣다 보니 베지 무슨 버거가 나왔다. 둥그스름한 한쪽 번위에 작은 피클을 빵가루를 묻혀 튀긴 것이 세 개 얹어져 있다. 다른 쪽 번위에는 양파와 버섯을 볶은 것과 콩으로 만든 패티가 소스에 버무려져 있었다. 이것을 조립해서 먹으라는 것 같다. 두꺼운 빵을 손가락으로 움켜쥐고 소스를 뚝뚝 흘리면서 먹고 싶은데 왠지 음식을 먹으러 갔다기보다는 낯선 사람들과 잼을 하겠다는 목적으로 갔기 때문인지 식욕이 많지는 않았다. 칼과 포크로 튀긴 피클이 얹어져 있는 빵 쪽을 조금 썰어 먹어봤다. 오, 피클튀김, 이 맛 참 오묘하다. 빵가루의 거친입자와 피클의 아삭아삭 물컹한 식감과 단맛 신맛이 느껴지고 마요네즈 소스와 조화를 이루면서 빵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피클튀김을 몇 개 더 추가해 먹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버섯과 양파가 적당히 잘 볶아져서 맛있었다. 그걸 캐러멀라이징이라 하던가, 단맛이 날 정도로 투명하게 잘 익혔다. 소스가 너무 범벅이 되어 있는 부분이 조금 아쉬웠지만 돈을 주고 부른 연주자도 아니고 잼세션에 참여하는 연주자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주인장의 따뜻한 마음씨를 생각하며 열심히 먹었다(정말 최고다).
따뜻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상당히 쌀쌀했는데 얇게 옷을 입고 나갔다가 추위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던 중 그날의 버거가 생각이 났다. 집 근처 버거집에서 새우버거를 사서 집으로 왔다. 버거는 항상 이걸 먹고 배가 부를까 싶은데 막상 다 먹으면 속이 꽉 차고 위장에 빈틈이 없는 느낌이 된다. 채소가 비싼 탓인지 가느다란 상추와 얇은 토마토가 살짝 끼워져 있다. 감자튀김도 와구와구 먹어주며 사이드로 추가해 온 치즈볼을 베어 물었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조금 식긴 했지만 치즈가 잘 녹아있어서 맛있었다. 입가심으로 코울슬로도 먹어주고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뭔가 부족하다. 예쁘게 생긴 사과 한 알도 깎아먹고 어제 먹다 남긴 단감도 주워 먹었다. 뭐지, 이 아쉬움은. 분명 배는 부른데. 그게 뭔지 이제 찾으러 나서야겠다. 뭐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