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무르익어갈 때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열리곤 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정도는 가보는 것이 연례행사다. 근처 자라섬 캠핑장에서 캠핑을 하기도 하고 당일치기로 갈 때도 있다. 표를 사서 입장할 때도 있지만 갈수록 때론 그 근처 잔디밭에서 팝업텐트를 던져놓고 울타리밖으로 넘어오는 음악을 들으며 포장해 온 뱅쇼를 마시기도 한다. 갈수록 비싸지는 표값을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이상하게 페스티벌 시즌의 자라섬은 뼛속까지 한기가 느껴진다. 분명 가을이고 볕은 좋은데 해만 졌다 하면 땅속 깊은 곳과 강에서 올라오는 추운 기운이 마치 얼음으로 만들어진 생명체가 내뿜는 숨 같다. 있는 옷들을 다 꺼내 입고 가지고 간 돗자리를 몸에 두르고 나서야 곱은 손으로 박수를 칠 수 있다. 그래도 가을인데 엄살이 너무 심하다고? 진짜다. 게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는 둥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제주도 저리 가라다.
이번해 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에는 그냥 멍하니 하루를 반나절정도 흘려보내다 갑자기 자라섬에 가고 싶었다. 에멧코헨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듣고 싶은 건 덤. 닭갈비를 먹자고 친구들을 꼬셔 가평으로 출발했다. 예상보다는 덜 막혔지만 차는 막혔다. 커피를 한 사발을 마신 터라 오줌이 마려웠지만 내릴 때까지 견뎌야 한다. 이런저런 대화로 근황을 업데이트를 하며 과자도 두 봉지 까먹었다. 그때 보이는 옥수수라는 큰 글자. 잃어버린 친구를 만난 듯 급하게 차를 세우고 옥수수 두 봉지를 샀다. 방금 쪄낸 옥수수가 한 봉지에 세 개씩 들어있었다. 옥수수를 손에 쥐고 오물 오물대다 보니 지루함이 어느 정도 가셨다. 드디어 도착했다. 가평에.
벌써 해가 저물어가는 모양이다. 일단 급한 화장실을 해결하고 무대 밖 소리가 잘 들리는 공원 스폿에 자리를 잡았다. 산책을 나온 강아지들과 주인의 모습이 새삼 정답다. 지나가는 강아지마다 알은 체를 하며 저쪽 하늘 너머로 붉게 저무는 해를 바라봤다. 캠핑매트를 깔고 돗자리는 덮은 채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가함과 조용함이다. 누워서 서서히 얼음생명체의 입김을 느끼는데 에맷코헨의 연주가 시작됐다. 눈을 감고 멀리서 들리는 음악과 잔디밭과 땅냄새를 맡는다. 역시 좋다. 몇 곡을 더 듣고 이제 약속대로 닭갈비를 먹으러 간다.
일단 막국수를 한 그릇 시켜서 후루룩 먹고 닭갈비 3인분에 우동사리와 고구마와 떡을 추가한다. 나는 닭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누군가 닭갈비를 먹는다면 한편에서 양배추와 우동사리를 주워 먹는 것을 좋아한다. 밑반찬으로 나온 고추장아찌가 시원하다. 후식으로 밥을 두 공기 볶아 먹고 나서야 식사가 비로소 끝났다. 총평을 하자면 막국수와 닭갈비는 그래도 춘천이 맛있다. 하지만 잔치가 열리는 곳에 잠깐이라도 가지 않으면 왠지 소외감이 느껴지는 나로서는 좋은 나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가평-옥수수-재즈-노을- 닭갈비우동-이런 순간들이 기억 속에 또 맛있게 버무려져 저장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