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뮤하뮤 Jul 26. 2024

요새 메밀국수 근황

메밀싹 좋아하나요?

  얼음육수에 군데군데 녹지 않은 빙하가 떠있다. 그 위에 힘없이 둥둥 떠다니는 싹이 있다. 육수바다에 빠진다면 이 싹을 잡고 살아남을 수도 없게 매가리가 없다. 왜 메밀싹이 여기에 있는지 별로 이해가 안 된다. 식기와 밑반찬 모두 정갈하고 가게도 깔끔하다. 육수와 메밀국수의 간이 좀 센 편이긴 하지만 얌전한 간판을 보면 이런 생뚱맞은 토핑을 얹으려는 시도를 할 정도로 용감해 보이진 않았다. 나는 원래 물냉이냐 비냉이냐라는 질문에 1초도 기다리지 않고 비냉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었다. 국물라면이냐 비빔면이냐 물어도 2초 안에 비빔면이라 답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그게 언제부터인지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장막을 건너온 것처럼 비냉대신 물냉을 선택하는 나를 보게 된다. 


  여기 메밀국숫집에서도 자연스럽게 물막국수를 고르고 앉아있으려니 밑반찬으로 참기름과 깨만 넣고 무친 콩나물과 단식초물에 절인 얇은 무절임이 나왔다. 콩나물도 내 입에는 살짝 간이 센 편이지만 적당히 잘 삶아서 물기를 잘 빼서 무쳤다. 무절임은 아삭아삭 새콤달콤했다. 

새로 생긴 집인 데다 오픈 이래로 계속 손님이 문전성시를 이루길래 눈여겨봐뒀다. 친구가 근처에 왔다길래 옳다구나 하며 그 집으로 데려갔다. 곁들임으로 메밀배추 전도 시켰다. 갈색빛이 도는 전에 하얗게 숨이 죽은 배추가 몇 장씩 깔려있다. 배추 전은 야들야들하고 맛있었다. 역시 내 입맛에는 조금 짠 편이었지만 배추와 메밀은 잘 어울렸다. 문제의 물막국수가 나왔다. 아까 말했듯이 사리 지어있는 메밀국수 위에 시원한 얼음 동치미육수가 부어져 있고 고명으로 곱게 간 깨와 메밀싹이 올려져 있다. 

  

  혹시 나만 이상한가 싶어서 친구를 바라보니 불만 없이 먹고 있다. 주변을 둘려봤다. 메밀국수와 메밀싹을 젓가락으로 잘 감아 입에 넣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건 나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나는 원래 새싹채소를 안 좋아했던 것 같다. 새싹이 들어간 무언가를 먹으면 배가 차가워 자고 소화도 잘 안된다. 차가운 메밀국수에 차가운 육수에 새싹까지 먹으면 배가 아플 것 같다. 게다가 식당의 에어컨 온도는 20도 정도로 낮았기에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메밀싹뿐 아니라 전체적인 음식 밸런스가 별로라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웬만하면 안 갈 것 같다. 


  어제의 일이다. 볼일을 보고 다음볼일로 넘어가기 전 밥을 먹어두지 않으면 엄청 배고파지겠다 싶어 4시쯤 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맷돌로 간 메밀국수라고 쓰여있다. 별로 고민하지 않고 들어갔다. 여름에 메밀국수는 언제나 좋은 선택이다. 판메밀과 냉메밀, 생선가스, 등심가스 같은 메뉴가 있다. 요새 너무 탄수화물만 먹은 것 같아서 오래간만에 생선가스를 시켜볼까 했다. 등심가스와 냉메밀 세트메뉴는 있는데 생선가스 세트 메뉴는 없다. 혹시 판메밀에 생선가스 세트는 없냐고 했더니 생선가스에 판메밀을 조합해서 줄 수는 있단다. 그런데 가격을 등심가스 냉메밀세트보다 삼천 원 정도를 더 받는 거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뇌회로에는 이미 생선가스 판메밀이 바통을 들고 달릴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잠시 후 판메밀이 먼저 나왔다. 장국에 간 무와 가늘게 채 썬 파 등이 조화롭게 들어있다. 젓가락으로 메밀국수를 집어서 장국에 찍어서 후루룩 먹는다. 판메밀을 반정도 먹었을 때 장국에 고추냉이를 넣어서 살살 풀어준 뒤 나머지 국수를 다 먹었다. 곧 금방 튀겨낸 생선가스가 나왔다. 타르타르소스에 흑임자를 섞은 듯한 소스가 생선가스에 조금 얹어져 있고 묽은 겨자소스가 접시에 같이 나왔다. 생선가스를 집어 겨자소스를 살짝 찍어 먹는다. 바삭바삭하고 겨자소스가 맛있다. 겨자소스가 튀김의 느끼한 맛을 잘 잡아준다. 흑임자 소스도 고소하니 맛있다. 깍두기가 너무 작아서 감질나지만 생선가스 한입 먹고 깍두기를 하나씩 먹어줬다. 얇게 채선 양배추가 아삭아삭하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밥을 한입 먹고 생선가스와 양배추를 번갈아 먹고 채 썬 양배추를 한 번 더 요청해서 먹었다. 요새 먹는 양이 늘었는지 이렇게 먹어도 엄청나게 배부른 느낌은 없다. 적당히 배를 채웠다는 생각을 하며 결제를 했다. 역시 좀 비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메밀국수 자체는 먹을만했다. 이렇게 요새 메밀근황을 적어봤는데 최근에 먹었던 최고의 메밀국수는 일산에 있는 메밀집이었던 것 같다. 가격면이나 맛 모두 별로 나무랄 데가 없다. 여름이 가기 전에 두 번은 더 먹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