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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뮤하뮤 Aug 02. 2024

외딴섬의 소금빵

도리도리 맛도리

  분명히 앞에 있는데도 접근성이 힘들다. 마치 사막의 신기루 같달까. 눈앞에 보이는 그곳에 건너가려면 횡단보도를 몇 개씩 건너가야 한다. 아니 신기루보다는 도도한 섬에 가깝다. 이 섬은 닿을 것처럼 가깝지만 주위의 통나무를 주워 뗏목을 만들어 건너가거나 자신의 체력만을 믿고 헤엄을 쳐서 고고한 섬에 닿아야 한다. 이렇게 그 가게자리는 접근성이 별로라 어떤 가게가 들어서든지 눈으로 확인만 하고 가본 적이 없다. 위치도 위치지만 그전에 어떤 업종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내게는 버려진 섬같이 존재감이 없었나 보다. 그래도 집으로 가는 길에서 고개를 들어 잠깐 옆을 돌려보면 보면 시야에 들어오기에 안부정도는 (일방적이지만) 묻는 사이는 된다.


  어느 날 목수들이 나무를 자르고 못을 박아서 단장을 하더니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다. 가게 크기도 작은 편인데 앞쪽에 바자리를 만들더니 간판을 내건다. 커피도 팔고 저녁에는 술도 팔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것 같지만 도도하고 버려진 섬에 커피와 술을 마시러 뗏목을 타거나 수영해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던 것 같다. 쓸쓸한 가을과 겨울이 지나고 또 목수들이 왔다. 나무를 자르고 못을 박고 단장을 하는 과정을 반복하더니 간판이 하나 올라갔다. 사람은 필체에 끌리기도 한다. 가게 이름을 쓴 글씨체가 단정해서 눈이 갔다. 무슨 집인가 검색했더니 빵집이다. 그래, 이 섬에서는 어떤 빵을 준비하려나. 언젠가 저 섬에 갈 수 있는 체력이 된다면 방문을 해야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늘 집에 가기 바빠 눈으로만 흘긋 보고 지나쳤다. 아무리 그래도 횡단보도 세 개는 너무했지.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충동적으로 그 집에 들르기로 했다. 더 이상 숙제를 미룰 순 없다고 생각하며. 예상대로 횡단보도를 세 개 건너는 길은 쉽지 않았다. 중간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무사히 가게 앞까지 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가게는 더 작고 아늑했다. 간판의 필체와 같이 멋을 부린 단정함이 가게 곳곳에서 느껴졌다. 주력하고 있는 빵은 무엇일까 살펴봤더니 주로 소금빵종류와 프레즐을 여러버전으로 배리에이션 했다. 일단 쟁반과 집게를 들고 명란소금빵에게 다가갔다. 꾸덕한 명란딥소스가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빵에 조금 흘러나와있다. 소금빵을 하나 담고 앙버터 소금빵을 담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만뒀다. 그리고 그 앞에 보이는 프레젤을 관찰했다. 바질페스토와 크림치즈가 발라져 있고 말린 토마토가 사이사이 끼워져 있는 프레젤이다. 바질페스토와 선드라이 토마토는 별로 거를 타선이 없다. 그밖에 보이는 다양한 빵을 더 담을까 고민했지만 나도 양심이 있지 하며 집게를 내려놨다. 이미 중국집에서 배가터지게 가지요리와 밀가루 요리를 먹고 오는 길이었다. 빵을 뒀다 먹어봤자 오늘만큼 맛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몇 개를 더 사서 냉동실에 얼려뒀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지금 수면이 부족한 상태고 바질페스토크림치즈 프레젤을 먹는다면 어느 정도 뇌에 기름칠이 될 것 같다. 그러나 맛있는 빵을 구하러 나가기엔 지금 체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다. 횡단보도 세 개? 생각만 해도 고개가 도리도리. 물론 횡단보도 한 개만 건너서 갈 수 있는 맛있는 빵집이 있기는 하다. 거기는 크루아상이 맛있는 곳인데 평소 너무 많이 먹어서 물렸는지 선뜻 발길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기억을 되살려 맛 좀 보려고 이 글을 써본다. 명란소금빵은 사장님이 살짝 데워서 포장해 줬다.


  빵이 식기 전에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손을 씻고 명란소금빵 먼저 맛을 보았다. 소금빵은 엄청나게 기름에 튀겨진 상태로 기름이 녹진녹진하다. 안에 있던 명란크림이 깊은 짠맛과 육중하게 느끼한 맛을 동시에 드러낸다. 짭짤하고 기름진 것에 한차례 위로를 얻는다. 이제는 프레즐샌드위치를 먹어본다. 맛은 음. 기본에 충실한 맛이다. 한입 베어 무니 탄수화물과 바질, 크림치즈, 선드라이 토마토 같은 내용물이 적정 비율 섞여서 만족스럽다. 후식으로 먹기에는 살짝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식사빵으로 먹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간식으로 먹을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다. 다 먹고 나니 해야 할 일 목록에서 한 가지를 해치운 듯한 성취감이 밀려온다. 나는 오늘 외딴섬에 홀로 헤엄쳐 가 야자수 열매한 개와 덤불사이에 열린 베리를 하나 찾아서 집에 온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또 그 섬에 가게 될 일이 있을까? 언젠가 또 내 체력이 충분히 충전이 된다면 아마 한번 정도는 작지만 멋 부린 그 공간에서 아이스커피와 명란소금빵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섬을 좀 더 구석구석 탐험해 보고 다른 먹거리가 있나 나무를 올려다보고 덤불사이를 헤집을 것이다. 그날까지 외롭고 도도한 섬에서 주인장은 열심히 빵을 구워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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