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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묭 Jul 10. 2023

하루를 가장 충만하게 마무리하는 방법

아주 작지만 충만한 의식

하루를 충만하게 마무리하는 나만의 리추얼 루틴이 있는데, 바로 하루 회고하기이다. 이건 아주 작지만 충만한 의식이다. 단순히 하루를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2가지 조건이 붙는다.


첫 번째는 내 탓하지 않기이다. 잠들기 전, 하루 중 화가 났거나 불편했던 일들을 끄집어낸다.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한 누군가의 말이나, 맛집이라고 기대한 식당이 맛이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다. 아침에 버스를 놓쳐서 지각할 뻔한 일, 잘난 누군가와 나를 비교한 일 등 순간 짜증이 났던 일들부터 자기 전까지 나의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는 것들도 다 괜찮다. 여러 개일 필요 없이 하나만 떠올려도 된다. 우선 그렇게 하루를 돌아보며 불편한 감정이 들었던 일들을 떠올린 후, 혹시라도 그 일에 관해 내 탓을 하고 있었다면 내 탓하는 걸 멈춘다.


그 상황에서 이런 말을 했었더라면, 내가 이렇게 행동했더라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같은 생각들 말이다. 문제를 반성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은 필요하지만 하루의 끝에서까지 내 탓을 하며 잠이 드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그저 이미 지나간 일임을, 이미 벌어진 일임을 인정하면 된다. 자책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다음에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더 나은 대처를 할 수 있는 경험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두 번째는 그 안에서 감사를 찾아낸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말 한마디로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한 일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에 나는 남아 있는 나의 상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돌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 사람이 한 말 정말 불쾌했어. 열받아!’라는 감정으로 남기지 않고 내가 왜 그리고 얼마나 마음의 불편함을 느꼈는지 돌아보고 내 감정을 잘 알아차려준 것에 대한 감사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감사 속에 자기 비하, 자기 연민, 자기 검열이 포함되면 안 된다는 점이다.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사정이 있었을 거야’,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그 사람에게 잘못을 했었나?’처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는 내팽개쳐두는 시간이 아니다. 오직 나의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하루를 회고하는 것의 목적은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고 자책하는 시간이 아니라 지나간 것들은 그대로 두되 나의 마음이 더 편안해지도록 돕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직전 있었던 일이 또 다른 예시가 되어 준다. 나의 아침 식사는 두유에 오트밀을 타 먹는 것으로 고정되어 있다. 여행을 가서 타지에서 아침을 챙겨야 하는 일이 아닌 이상 무조건 같은 메뉴를 먹는다. 소화기관이 약하기 때문에 특히 공복에 먹는 첫끼는 먹었을 때 속이 편안한 음식을 먹으려고 주의를 기울인다. 그런 나에게 오트밀과 두유의 조합은 수년간 아침 메뉴를 시도해 발견한 최적의 조합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두유가 똑 떨어져 있었다. 미리 사놓는 걸 깜빡했기 때문이다. 다른 걸 먹으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 있는데 일정한 루틴을 지키다 보면 루틴이 변경됐을 때의 영향이 꽤 크다.


마치 스포츠 선수들이 경기 전 몸을 푸는 방식이나 꼭 먹는 음식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지도 모르겠다. 괜히 어딘가 찝찝하고, 편안하지 않은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결국 경기 내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비교 대상의 간극이 크지만 어쨌든 이 감각은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행히 식사 대용으로 사둔 통밀빵이 있어서 크림치즈와 땅콩버터를 곁들여 함께 먹었다. 배는 채워졌지만 먹는 동안 도무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여기서 감사를 찾는다면 아침 식사를 대체할 통밀빵이 있었다는 것이다.


꾸역꾸역 감사할 거리를 찾아내는 것 같다고? 사실 맞다. 감사를 찾아내는 게 이 리추얼 루틴의 진짜 목적이다. ‘오늘 아침밥 너무 찝찝했어’라는 생각으로 남겨두는 것과 ‘통밀빵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는 건 정말 다르다. 특히 하루 끝 잠들기 전에 감사를 찾아내는 건 나의 하루가 근사해지는 느낌을 준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고, 실은 감사할 거리가 많았다는 감상을 남기며 잠에 들 수 있다.


내가 하는 루틴이라고 남에게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각자는 각자에게 맞는 루틴이 있다. 똑같은 루틴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하루를 회고하며 종이에 적고, 메모앱에 기록하고, 하루를 되돌아볼 때보다 그 순간에 바로 감사를 찾아낼 수도 있다. 루틴의 내용과 방식이 어쨌든 중요한 점은 나를 위한 루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불쾌한 일이 몇 개쯤 있어도 괜찮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도 감사를 찾아낼 수 있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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