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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색 Jan 16. 2023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다

후회가 가득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소중한 연가를 사용한 꿀같은 휴일, 연차를 자주 쓰지 않는 편이라 이렇게 쉬는 날이면 한참을 고민하곤 한다. 도대체 무얼 해야 가장 효율적이고 뿌듯한 휴가가 될 수 있을지 말이다. 어느 사람은 집에서 푹 쉬라고 하고, 어느 사람은 밀린 일을 해치우라고 하며, 또 다른 사람은 자주 가지 못하는 전시회나 미술관을 방문해보라고 권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택하는 것이 옮은 선택이겠지만, 나같이 귀가 얇은 j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고민을 시작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다 옳은 선택이겠지만,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선택에 신중을 기한다. 그래, 오늘은 쉬다가 운동가야지! 그렇게 결정하고 회사에 있는 사람들도 퇴근에 설레하는 저녁시간이  다가오자 괜시리 연차를 잘 보냈는지 곰곰이 되짚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후회들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오랜만에 쉬는 거였는데 전시회라도 다녀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 등의 후회들 말이다. 쉬려고 사용한 연가였는데 왜 나는 이 과정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으며 평가를 반복하는 것일까. 


분명 나라는 사람은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요근래 제대로 쉬지 못해 피곤이 누적된 상태였고, 그렇기 때문에 연차를 쓰며 집에 있고자 한 것이었다. 집에서 쉬며 부족했던 잠을 보충했고 체력을 채워 넣었다. 확실히 얻은 것이 있었다. 그럼에도 후회를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마치고자 하는 욕심.


분명 내가 한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사람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본능이기에, 무의식적인 나의 본능이 내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시켰을 것이다. 다만 선택을 통한 득보다 실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스스로 완벽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나는 내가 잃은 것에만 집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완벽하지 못한 내 선택을 탓하고 후회한다. 이렇듯 스스로를 옥죄는 완벽주의는 그닥 바람직하지 못하다.


완벽주의라는 성격이 가끔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끔은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몰아넣기도 한다. 필자는 그 경우를 모든 선택의 결과를 의심하며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최악으로 꼽는다 .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심을 하고, 내가 한 선택이 옳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한 선택에 대한 의심이 반복되면 결론적으로 '나'를 믿지 못하게 된다.  내 선택에는 계속해서 후회가 남으니까, 내 스스로가 선택하는 상황을 피하고 남의 선택에 의존한다.


말그래도 악순환이다. 어릴 적엔 내 욕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바로 윗 문단처럼, 내 선택은 왜 자꾸 후회를 남길까 하고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나는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인 것을 깨닫고는 후회가 남는 선택을 한 나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내 자신을 달랜다. 충분히 훌륭한 선택이었어. 넌 너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 거야.


아무리 후회를 한다 한들, 내가 한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다. 가끔 선택에 후회가 마음 깊이 빼꼼 고개를 들 때면 생각해보자. 내가 그 선택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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