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잘못이 아니야.
불가항력, 사람의 힘으로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말한다.
어느 주말, 갑자기 내 일상을 찍어보고 싶어진 필자는 어느 유명 유튜브 브이로그처럼 구도를 잡아놓고 동영상 기록을 시작했더란다. 노트북을 하며 글을 쓰는 내 모습이 가장 많이 나왔다. 당연하다. 나는 책상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앉아 있기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웃픈 것은 하루 종일 입이 쉬지를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쩜 저렇게 끊임없이 먹는지. 입에서 당류를 떼면 죽는 사람처럼 오전 내내 일어서고 앉았다를 반복하며 계속해서 간식을 꺼내왔다. 요거트, 사과, 귤 등. 건강한 간식이라 괜찮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다들 들어보지 않았는가? 판다도, 코끼리도 초식동물이라고.
옆으로 불어 가는 살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이렇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찾도록 만들어졌는데, 왜 살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모순적이다. 자극적인 음식에 열광하면서, 살이 찐 사람들에게는 엄격한 세상. 이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중 '살'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마른 사람들일 터이다. 뭐, 그 사람들은 살이 찌지 않는 것이 스트레스라고는 들었다. 여하튼, 요 근래 헬스를 하며 보는 드라마 '멜로가체질'에 이런 대사가 있어 가져와 보았다.
"그럼 신이 막았어야지. 인간이 자기 영역 밖에 있는 걸 어떻게 막아내나?"
"누구를 원망할 거 없어. 원망한다고 바뀔 세상이 아니고, 그냥 이해하고 받아들여.
당신도 나도 잘못이 없어."
-멜로가체질 4화 중에서-
사실 이 글은 '살' 그리고 '몸매'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과거의 나를 위해 쓰는 글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먹는 것을 좋아했고, 그 먹는 것들은 키를 크게도 만들었지만 옆으로도 살을 찌우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에는 맞지 않게, 남학생들과 체구가 비슷해졌고 그 친구들을 오히려 이겨먹는 여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당당하게 자라났으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중학교 때 사회의 틀에 편입되기 위해 사회가 덧씌운 규정에 나 자신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살을 빼기 위해 음식을 먹지 않았고, 그것은 곧 몸의 이상으로 나타났다. 무조건적인 마름을 선망했던 것이다. 그 당시 잃어버린 건강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내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살을 빼는 것도, 그리고 이 빌어먹을 사회에서 '여성'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것도, 모든 것이 내 결정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 결정들은 이미 내 영역 밖에서 결정된 것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사회는 여자가 여자다워야 인정받는 분위기였고, 그래야 어른들에게 칭찬받았다. 학생이 어른들에게 칭찬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잘못일까. 필자는, 지금보면 안쓰러운 어린 시절의 필자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과거의 내게 죄가 있다면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노력한 착한 학생이었다는 것 정도였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렇다고 사회 분위기 자체를 어쩔 수 없다고 용인하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주어졌다.) 그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내가 못나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말자. 내 노력으로 이뤄낼 수 없는 것들은, 그냥 그렇게 흘러가도록 놓아두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아무 의미 없이 그날들을 회상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미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빌려 말하고 싶다. 어린 날의 너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으며 너의 선택에는 잘못이 없었다고. 그리고, 버텨주어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