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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색 Nov 28. 2022

잠시 겨울잠에 들겠습니다

내 삶의 공백을 맞이하는 법

모든 삶이 형형색색 원색으로 채워질 수는 없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평일에 일을 한다. 누군가는 틀에 박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이 나라에서 휴일이라고 정한 빨간 날 빼고는 당연하게도 일을 시키니 일반적인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그럴 것이다. 나 또한 무려 7일 중 5일이라는, 일주일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평일에 일을 한다. 일이 끝나면 운동을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고, 매주 화요일엔 북큐레이터 수업을 듣는다. 매일 할 일이 채워져 있어야 마음이 편한 나는 웬만큼의 일주일의 일정이 정해져 있는 편이다. 사실 주말 또한 그렇다. 일정 어플을 보면, 비워져 있는 란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일정을 꽉꽉 채워 넣는 것을 좋아한다. 비워져 있는 란, 공란. 그 공란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싶어졌다.




성향 차이이기도 하겠지만, 사람들은 "주말에 뭐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마치 외국어를 배울 때 "how are you?"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사치레처럼 주말 일정을 묻는 말을 건네곤 한다. 그리고 그 말은 사람들에게 주말에 꼭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단 나는 그렇다. 매주 주말에 뭐하냐고 묻는 질문은 마치 내가 집에만 있으면 할 일 없어 보이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 것만 같았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웃긴 말이기도 하지만, 필자는 집에서 쉬는 것조차 일정으로 보이기를 좋아한다. 마치 너무 많은 것을 해서 주말에는 집에서 쉬어야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도대체 왜 나는 이런 강박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필자는 누군가에게 자랑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내 능력이 되었든 가지고 있는 것들이든, 모든 분야에서 잘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늘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공부만 잘하면 착한 아이, 대단한 아이 취급을 해주었고 그것이 습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대학생 때부터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없었다. 내가 간 대학은 나와 비슷한 성적 수준인 사람들만 모아 놓았고, 그 친구들 사이에서 성적을 잘 받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헤맸다. 다른 친구들이 공부를 할 때, 동아리 활동이나 봉사활동을 하며 어느 누군가에게 대단해 보이는 무언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확히 내 마음을 진단하려면 심리학을 부전공한 정신과 전문의 정도는 되어야 알 수 있을 것 같으니, 일단은 그렇게 생각해본다.


9급으로 시작한 공직생활, 이것 또한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을 것이다. 나름 이름 있는 대학교를 나왔건만 결국 종착지가 9 공무원이라니. 요즘  괜찮은 대학을 나와서도 공무원 공부를 많이들 한다지만 어느 누구나 도전해볼  있는 직업이라는 사실이 안착을 힘들게 만들었다. 7 공부를 다시 해보려고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공부를 하려   발령이 났고, 이후 퇴근 후면 지쳐서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사실을 알고부터 대학 때처럼 열심히 취미 활동을 즐겼다. 아니, 어떻게든 아등바등 매달렸다는 말이 맞을  같다.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곳에 안주하면  된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일을 하면서도 매일 사직서를 내고 이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곧잘 했다. 그렇게 3 이상을 살아왔다.


매일 할 것을 찾아 헤매던 내가, 요 근래 겨울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회사를 마치고 운동을 가는 것이 생활화되어 이제는 습관으로 굳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회사를 마치면 곧장 집에 와서 침대에 눕고 싶었고, 간단하게 먹곤 하던 저녁도 굳이 맛있는 요리를 해서 먹고 싶었다. 정말 웃기게도, 저녁을 같이 먹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혼자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말이다. 가을에서 겨울이 오고 있는 계절이 전환되는 시기라 그런 걸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기엔 또 작년 겨울엔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PT를 결제했던 이력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안정' 분명 좋은 단어였다. '안정' 목표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서는  그런 변화를 경계한다. 혹시나 내가 너무나 느긋해질까 , 이런 생활에 안주할까 .


'발전'과 '안정' 사이 균형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발전'에 초점을 맞추어 살고 있었다면, 이제는 스스로를 내려놓는 연습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시 내 몸을 위해 인생의 공란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사회적으로 잠시 머무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의 내면은 다른 의미로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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