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아 Oct 18. 2020

첫 실연




- 야, 그만 좀 해라.

- 얘 진짜 오늘 왜 이래.



......



- 뭐야, 너 울어?

- 아니 뭔 다 큰 놈이 울고 앉아있냐~아유!

- 청승 맞게 뭐하냐 정말.



최근 헤어짐을 겪은 A는 술이 조금 많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결국 친구들 앞에서 찌질하게 목 놓아 엉엉 울었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서 담았던 일몰 사진. 피사체는 많지만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보여 찍었다.




스물한 살 때 첫 이별의 아픔을 겪었던 나는 서른 살이나 먹어서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A를 달래 줄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평생 ‘모쏠’로 살아 온 A는 스물 아홉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이따금씩 등장했던 날 것의 모쏠 습관들은 우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지만, 나를 포함한 친구들의 열렬한 조언 및 응원과 함께 둘은 나름대로 꾸준한 사랑을 보기 좋게 이어갔다.



- 나쁜 년 진짜...



A가 고개를 숙인 채 외마디 내지른다.

꾀죄죄한 분위기를 만든 장본인의 단말마치고는 전혀 쌍스럽지 않아 차라리 청승 맞다.




프라하에서 찍은 횡단보도.



둘은 소개를 통해 만난 동갑 커플이었다.


동갑이었기에 말도 나름대로 잘 통했으며, 어딜 가도 취향이 크게 엇나가지 않았다. A는 태어나 처음으로 꽃을 선물해보았으며, 밤새 삐뚤빼뚤 편지도 썼다. 장미 뿐만 아니라 수국과 프레지아를 선물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걸출한 회사의 신입사원이었던 둘은 데이트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도 않았다. 눈치 보지 않고 본인의 휴가와 주말을 활용할 수 있었던 그들은 휴일마다 되도록 많은 시간을 서로와 함께 보내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사랑은 기대가 되고 또 기대는 자연스럽게 때론 요구가 되면서, 그들도 여느 연인들이 그러하듯 사소한 부분에서 이따금씩 불필요한 감정적 충돌을 빚곤 했다.


A는 연인 사이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하고 대소한 문제들을 원만하게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말이 아마 적절할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둘은 종종 별 것 아닌 문제들조차도 격렬한 논쟁의 틀에 욱여넣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둘의 자존심 싸움이 습관처럼 지나친 감정 싸움이 되곤 했다. 미운 마음과 보고 싶은 마음이 저울질에 실패할때면, 화해하려고 만난 식당에서조차도 화살 같은 말들이 오가곤 했다.


서로의 표현은 수명이 정해진 건전지처럼 그간 쌓아두었던 사랑의 감정들을 조금씩 소비해갔다. 헤어지자는 말은 더 이상 주어가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되었다. 이별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동시에 이미 일어난 일이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지나간 인연에 대한 감정 정리가 유독 서툴고 느렸던 쪽은 A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헤어지고 난 다음의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모쏠일 당시엔 겪어본 적조차 없었던 감정이었기에 더욱 혼란스러워 했던 그였다.


그야말로 로맨스 영화에서도 다루지 않을 정도의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전형적인 두 청춘의 만남과 헤어짐이었다.



영국의 작은 시골 마을인 캐슬 쿰에서 찍은 할아버지. 빨간 문으로 들어가야만 할 것 같다.



- 나 어떻게 해야 되냐 진짜...


대단한 대답을 바라지는 않는 것 같은 그의 어조에 부응이라도 하듯, 아무도 말이 없었다.


- 헤어졌으면 헤어진 거지 뭘 어떻게 해 임마...

모두의 침묵은 그렇게 조용히 그를 윽박지르고 있는 듯 했다.


스무 살 시절과는 달리 아무도 섣불리 한 번 더 전화를 걸어보라던가 혹은 집 앞에 찾아가보라는 등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멜로나 감동이 아닌 범죄나 스릴러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별은 으레 누구에게나 그렇듯 오롯이 홀로 겪고 극복해내야 하는 조금 긴 고통과 인고의 시간일 따름이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사랑과 우정 같은 인간사에는 정의 같은 것이 없다는 것 만큼은 분명히 일러주었다. 정의가 없는 곳엔 당연스레 옳고 그름이나 전후 관계도 없다. 둘은 이러쿵 저러쿵 했기 때문에 헤어진 것이 아니라, 이러쿵 저러쿵 하다보니 어쩌다 헤어진 것 뿐이었다.


이별은 항상 결과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별의 원인같은 것도 기실 이 세상에는 없다고 말하는 편이 차라리 덜 틀린 말이다.


자꾸 원인을 찾고 싶어하는 그의 눈빛과 틈만 나면 핸드폰에서 전여자친구의 번호를 누르려고 하는 손을 저지하면서, 나는 스물한 살 때의 나를 보았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이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쓰린 것 같다. 이 지독하고 불쾌한 것을 서른이 된 이제사 처음 경험하고 있는 A에게는 그것이 유독 더욱 쓰라리고 아프게 느껴졌을 것이다.




A가 겪고 있는 시련은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 쯤은 겪는 보편적인 형벌의 요란한 버전 같기도 했다. 누가 되었든 언젠가는 겪게 될 벌이라면 차라리 상처가 이를수록 축복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매를 맞던 시절에도 나는 차라리 먼저 매를 받아들이는 편이 마음이 더 놓였다.


유독 커보이는 A의 아픔에는 뒤 늦은 첫 연애의 시기가 크게 한 몫한 듯 보였지만, 그가 뒤늦은 시기에게 진 빚은 한 점도 없었다. 다만 그의 인생에 취업이나 비트코인보다 연애가 다소 늦게 찾아와주었을 뿐이었다. 비록 연애는 늦었지만, 그는 연애에게 다할 수 있는 최선을 열렬히 쏟아냈다. 그렇게 그의 첫 사랑은 그에게 약 만큼이나 깊은 병을 주고 떠났다.




서른은 그런 식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가진 건 매일 자라는 수염 정도인데 되려 잃을 것은 훨씬 더 많아졌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전혀 대책은 없지만 짧은 그간의 삶을 반추해보면, 이럴 때는 무엇보다도 우선 가급적이면 절대 아파서는 안된다.


그게 몸이든, 혹은 마음이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