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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Oct 13. 2020

주식하세요?



나에게까지 닿은 좋은 소식은 이미 늦은 소식이다.


기실 아무 것도 품고 있지 않은 듯한 이 문장을 나는 날카로운 진리라도 되는 양 가슴 한 켠에 새기며 살아왔다. 이 문장을 마음 속으로 읊다보면, 마치 잃을 수도 있었던 대단한 것을 수호해낸 듯한 묘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성실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뿐인데 말이다.



프라하 광장에서.




재테크를 하지 않으면 큰일날 것이라 이야기 하는 사회가 왔다. 물론 이런 사회는 진작에 도래했겠지만, 첫 문장처럼 보란듯이 나에게는 조금 늦게 소식이 도착했다.


좋아하는 이성에 대한 상상이 어느새 그(녀)와의 손주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에 대한 고민까지 뻗어나가듯, 나는 내가 산 귀여운 주식들을 불려 요트를 사고 태평양을 횡단하는 상상을 했다. 태평양의 물살이 무척 거셀테니, 요트 양 쪽 전부에 안전한 구명 보트를 실을 필요도 느꼈다. 주된 식단은 낚시로 잡은 참치 정도가 될 것이었다. 나는 회를 칠 줄 모르니 주방장이 필요한데, 더 이상의 상상은 왠지 모르게 수치스러워져 관뒀다.




의외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방법이 너무 쉬워서 기계치인 나조차도 터치 몇 번만으로 여러 회사의 (부분적)주인이 될 수 있었다. 이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내가 속한 모든 회사의 주주회의에 참여하여 기업 경영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훈수를 두려 하였으나, 본업이 있으므로 절제하기로 했다. 실무는 그냥 실무자에게 오롯이 맡기는 편이 낫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처음 사 본 주식이 위아래로 출렁거리는 모습은 묘한 두려움과 흥분을 주었다. 타고난 떠벌이인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주식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물어본 것이 민망하게 주변 사람 대부분이 이미 어느 정도의 주식을 관리 하고 있었다. 나한테나 늦은 소식이었지, 사실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외려 ‘주린이’에 불과한 나와는 달리 많은 ‘주등학생’들은 더 이른 시기부터 많은 돈을 진작에 갈아 넣지 못했던 것에 대해 탄식했다. 빚을 내서 부동산에 영혼을 넣었던 이들은 지금의 주식 투자자들보다 빨랐고, ‘주등학생’들은 나보다 훨씬 더 빨랐다.




모두의 투자 방식은 조금씩 달랐지만, 많은 이들이 꾸준히 돈을 잃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묘하게 동일했다. 나도 나름대로 많은 시도는 해보았으나 우습게도 내가 산 주식은 그날부터 나락을 찍고, 울며 겨자먹기로 판 주식은 다음날부터 탄탄대로를 달렸다. 누가 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사람의 심리와 충동에 대한 이해만큼은 훌륭한 편이라고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자문을 얻고 나도 그들과 비슷하게 투자를 하면 적어도 모래 위의 성 같은 나의 투자 논리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겠지 싶었다. 가장 수동적인 판단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나의 주식에 관한 사유 중 가장 그럴듯한 결정이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있지는 않은 도비도항이다. 특유의 안개가 멋진 곳이다.




물론 주식을 위해 주선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은사님도 찾아뵙고 지난 근무지의 동료들과도 만나면서 나는 나름대로의 기준과 관점들을 확장해나갔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시절 무척 부유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사이다 잔을 기울이면서 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 시간 평행을 달렸던 두 개의 선이 다시 만나는 시간은 즐거울 수 밖에 없다.


대뜸 혹시 평소에 맘에 들지 않았던 회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보통 내가 사면 주식이 높은 확률로 떨어지는 편이니, 그런 회사가 있으면 내가 크게 혼을 내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이미 부동산과 주식을 모두 하고 있었다. 부유했던 친구는 가지고 있던 정보도 무척 부유했다. 물론 정보 만으로 재테크의 격차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이 얼마나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는 그가 가지고 있고 또 접하게 될 정보들에 많은 부분 기인했다.


급변하는 주식 시장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존버’의 자세가 빛을 발하는 공간이라고 그는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그건 비속어 아니냐고 농담 차 물었더니 친구는 슘페터의 제자였던 존 버(John Burr Williams. 1900-1989)를 언급하며 나에게 장기투자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도 없느냐고 질타했다. 나는 그게 이외수 씨가 유행시킨 말인 줄로만 알았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오전 9시를 기해 친구가 추천해 준 주식을 샀다. 나흘 간 주가를 살펴보니 아무래도 그 친구가 회사에 대해 평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던 모양이다. 나같은 킬러를 보낼 정도라니.


민망했는지 친구가 나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1900년부터 1989년까지의 삶을 살았던 한 경제학자를 기억해야 할 때라고 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회 초년생은 약간의 빚을 지거나 월급에서 남은 소량의 금액 만으로만 투자에 참여할 수 있다. 친구가 넣었다는 엄청난 금액을 들은 나는 한 달 생활비까지 털어 넣어 투자했다. 나는 친구에게는 ‘존’하게 ‘버’하겠다고 하고, 더욱 작아진 소량의 원금을 회수해 도로 생활비로 썼다. 생활비는 꼭 나가야만 하는 돈이니, 어쩌면 이 문장에 주체가 없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친구의 원금에는 타격이 더욱 컸다. 원체 돈을 많이 부었던 친구였으니 그도 그럴듯 했다. 타인의 고통에 대비되는 상대적 안락함은 속 빈 강정처럼 무의미한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지만, 나는 그것을 차라리 나의 작은 손실을 잊는 도구로 삼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확히 내가 90끼 정도의 식사를 마친 후에 주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오히려 피가 더 붙어서 돌아온 주식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내 친구는 본인의 이론이 맞지 않느냐며 연신 전화기에서 떠들었다. 그야말로 향년 90세의 ‘존 버’씨가 승리한 순간이었다.




상승 할 주식만 골라서 투자하면 될 것 같지만, 세상에 떨어질 거라 생각하고 주식을 고르는 사람은 없다. ‘존버’는 어쩌면 기반이 완성된 사람들만이 부릴 수 있는 재주이기도 했다.



티끌을 모아봐야 결국엔 티끌이다.

그러나 이 문장이 주는 허탈한 느낌과는 달리, 티끌이 일상에서 유의미한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에게 이 문장은 수치가 아니다.


조금 더 꾸준히 그리고 철저하게 준비한다면, 시기는 조금 늦더라도 언젠가 나도 영끌과 티끌로 요트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미래에 욕조에서 놀고 있을 내 아들을 위한 장난감으로 말이다.



주식하세요? 에서 질문을 좀 바꿔야겠다.



주식, 어떻게 하세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기를 담은 사진. 비행기가 향하는 방향만으로는 당최 어디를 가는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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