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과의 여행, 안 싸웠어?
모두들 답을 알고 있지 않나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수, ‘악동뮤지션’은 남매라는 특징 자체가 다른 가수들과는 다른 그들의 특징일 것이다. 외국에 출국할 때 공항에서 따로 서 있어도, 같은 멤버이면서 차를 따로 타고 다녀도, 서로를 바라보면 아주 극혐 하는 표정을 지어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다.
남매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내가 남동생과 유럽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모두들 하는 얘기가 있다.
“동생이랑 가면 안 싸웠어?”
다들 정답을 알고 있지 않나요.
우리는 정말 매일 싸우고 서로에게 짜증을 냈다. 친구들과 이렇게 여행했다면 아마 유럽에서 돌아오자마자 서로를 손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과 나는 서로를 손절할 수 없는 관계였고, 그래서 더 쉽게 서로에게 짜증 내고 화내고 다시 화해하는 것을 반복했다.
우리 남매는 말 그대로 평범한 남매사이이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서로를 거들떠보지 않은 것이 아주 평범한 관계임을 보여준다. 오히려 동성인 형제들보다 남매는 덜 싸울 수 있다. 서로의 관심사가 너무 달라 서로를 노터치 하기 때문이다. 단 둘이 붙어 있는 적도 없다. 그저 서로를 부모님의 또 다른 자식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남매 사이가 안 좋거나 했던 건 아니다. 동생이 다른 누구보다 편한 관계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서로의 관심사가 워낙 다르다 보니까 평상시에는 아예 신경을 안 쓰고 있는 것뿐이다.
16박 17일, 동생과의 유럽여행을 다녀온 기간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부모님 없이 둘이만 붙어있던 적은 처음이다. 또 둘이서만 모든 결정을 하면서 있었던 적도 처음이다. 출발 전만 해도 동생이랑 싸우는 문제는 내 머릿속에 있지 않았다. 여행에 대해 결정을 내린 것도 나고, 모든 준비를 도 맡아서 시행한 것도 나니까. 사실 동생이랑 ‘같이’ 여행한다는 개념도 별로 없었다. 원래 혼자 가려고 하는 걸 그냥 둘이서 간다 정도의 생각이지, 동생이랑 ‘같이’ 여행한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현실에 부딪혀서 알았다. 이제는 얘랑 ‘같이’ 다니고, 고민하고, 결정하고, 생활해야 하는구나.
가장 많이 서로에게 투닥거릴 때는 길을 찾을 때였다. 투닥거림이라 표현한 이유는 싸움이라 표한할 만큼 거창한 것은 아니고 서로에게 짜증을 내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행할 당시 스마트폰이 지금처럼 보급화 되기 전이었다. 지금 어린 친구들을 상상하지 못하겠지만, 나의 위치와 가야 하는 길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구글맵 대신에 진짜 종이 지도를 들고 여행을 다녔다. 유럽여행을 위해 출판된 지도 책자가 있었다. 두꺼운 지도 책자에 런던부터 파리, 로마 등의 주요 도시들의 지도가 실려 있었고, 우리는 그걸 보고 이동을 했다. 물론 명소들의 위치는 여행 전에 예습하긴 했지만 길을 찾는 건 실전이었다. 하루 대부분을 걸어서 이동했고, 우리는 이 책을 보면서 길을 찾았다. 어느 날은 동생이 책자를 들고 앞장섰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그러다가 길을 잘못 가게 되면 내가 동생에게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책자를 뺏어서 내가 길을 앞장섰다. 하지만 나 역시 길을 제대로 찾지 못했고 그러면 동생의 역공이 시작됐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우리의 투닥거림은 엄청 사소하고 또 유치한 것들 투성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런 것으로 싸웠다는 게 유치하지만, 그 당시에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고,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였다.
한 번은 베네치아에서 싸움이 발생했다. 동생은 그 당시 가고 싶다고 했던 도시가 전혀 없었는데, 딱 하나 베네치아에 가고 싶다고 했다. 어떤 영상에서 베네치아가 배경인 영상을 봤고, 그 영상에 나온 음악을 들으면서 베네치아를 걷고 싶다는 로망이 생겼다고 했다. 동생의 요청으로 가게 된 베네치아! 동생은 자신의 계획대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나랑 같이 있는데 자기 혼자서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에 짜증이 난 것이다. ‘왜 내 앞에서 음악만 듣고 있냐, 같이 있는 내가 뭐가 되냐’라고 동생에게 짜증을 냈고, 동생은 ‘이 얼마 되지도 않는 음악 듣는 것도 기다려 주지 않냐’라고 화를 냈다. 우리 둘은 괜히 작은 일로 감정싸움을 했고 나름 이 싸움은 길어져 반나절 정도 지속됐다.(우리에게는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 평상시에도 싸워도 반나절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인내심이 부족했다. 동생의 로망 정도도 기다려 주지 못했던 누나였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변명하자면 베네치아는 덥고 습했고, 나는 길어진 여행으로 체력은 고갈되어 있었다. 이 힘든 상황을 같이 토로할 동생은 자기만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래, 사실 모든 싸움의 이유는 덥고 힘들어서였다. 여러 싸움이 있었지만, 날이 쾌적하고 덜 힘들었다면 아마 우리는 덜 싸웠을 것이다. 초여름이라고는 하지만 하루종일 밖에서 돌아다니는 일은 땀도 많이 나고 체력도 많이 쓰게 했다. 요새 같으면 숙소나 카페에서 조금 쉬면서 여행을 했겠지만, 그 당시 하나라도 더 보고, 돌아다녀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고 우리는 쉬지도 않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래서 조금도 서로를 배려하기 힘들었고, 서로에게 짜증을 더 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싸우고 서로를 힘들게 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싸움은 거의 서로에게 한번 짜증을 내는 수준이었고, 워낙 감정 상해있는 상태에 있는 것을 둘 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한번 짜증 내고 한번 웃고 하면서 지냈다. 이 먼 곳에서 의지할 것은 서로밖에 없었고, 우리는 짧게 서로에게 짜증 내고 다시 다음 일정을 의논하고, 얘기하고 웃었다. 심지어 우리는 한 통장에서 돈을 꺼내 쓰는 관계였다. 즉, 우리는 아무리 싸워도 헤어질 수 없는 관계란 뜻이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빈번했지만, 그 지속시간이 아주 짧았다.
여행이 끝난 후, 우리는 다시 전처럼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는 남매로 돌아갔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당시에 동생과의 여행이 우리에게는 기회였던 것 같다. 자매들은 나이가 들어도 서로 여행도 같이 하고 다니지만, 남매간에는 그게 쉽지 않다. 가족 여행이야 같이 하지만 단둘이서 여행은 아마 이제 힘들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단 둘이서 같이 여행했던 거는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지금도 술 한잔 하면서 꺼내는 추억이 되었다. 동생 역시 둘이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를 때 같이 여행 갔던 게 좋았던 거 같다고 추억했다.
하지만 누나랑 같이 또 여행 갈래라고 물은 질문에,
“누나, 남자 친구랑 가. 핑계가 필요하면 내가 부모님 커버해 줄게”라고 했지만..
망할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