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심심하지만, 자유롭고 편안해
여행에는 다양한 짝꿍이 존재한다. 부모님, 형제자매, 친구들,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의 동행까지. 여행의 형태 중 하나로 ‘나홀로 여행’도 있다. 나의 여행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이 ‘나홀로 여행’이다. 최근에는 혼자 여행하는 모습들이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면 종종 사람들이 묻는다.
"혼자 여행하면 재미있어? 외롭지 않아? 무섭지는 않아?"
그럼 나는 대답한다.
"외롭고 가끔 심심해. 그리고 무서울 때도 많아서 다른 사람들이랑 갈 때 보다 엄청 조심해.
근데 자유롭고 편안해."
처음에 나홀로 여행을 했던 이유는 어쩔 수 없어서였다. 회사 생활이 안정되고 이제 좀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친구들과 휴가를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부모님의 일 특성상 쉽게 일정을 맞추기 어려웠다. 나에게 주어지는 휴가가 너무 아까웠다.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라고 느낀 어느 날 혼자서 떠나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 때 도전하려고 마음먹었지만 결국에는 실천하지 못한 나홀로 여행을 성인 돼서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해외는 아직 어려워서 국내 여행을 계획했다. 그렇게 떠나게 된 순천, 여수여행. 지금까지 여행과 다르게 모든 계획과 준비들을 나 혼자서 결정하고 실행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관광지 위주로 여행 일정을 계획했고, 당시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카페 일정은 최소화했다.(지금은 카페 일정을 좋아하는 편이다.) 혼자 가는 거지만 도미토리룸에서는 잠을 잘 자지 못할 거 같아서 싱글룸을 돈을 더 주고 예약했다. 내 마음대로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했다.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편했던 것은 다른 사람의 편의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그냥 내 편의만 고려해서 모든 걸 예약한다는 것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 없었다.
기차를 타고 순천역에서 내렸을 때 ‘이제 정말 뭐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잠시 멍해져다. 모든 일정을 계획했음에도 갑자기 ‘나는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부터 확 들었다. 그리고 이젠 이 3일을 오롯이 나 혼자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떻게 움직일지 무엇을 먼저 할지 같이 의논할 상대가 없다는 사실이 더 피부로 와닿았다. 동시에 내 하루가 무척 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긴 하루의 모든 일정을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실행해야 했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지고 때로는 더 과감하게 결정했다. 내 결정에 대해 조언을 해줄 사람도 없고 태클을 걸 사람도 없으니까.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사진을 찍고, 혼자 좋은 풍경을 보고, 혼자 느낀다는 것이다. 그것은 외로움과 불편함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평소에 혼자서 무엇인가를 해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혼자 밥을 먹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다행히 나는 혼밥을 많이 해봤었다. 하지만 내가 혼밥을 할 수 있는다는 사실보다 혼밥을 할 수 있는 식당을 찾는 게 힘들었다. 최근는 많이 늘어났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1인 손님을 받지 않는 식당도 많다. 여수까지 와서 간장게장 정식을 안 먹을 수 없으 정말 남들의 2배 이상을 서치 해서 겨우 겨우 1인을 받는 식당을 찾아 먼 길을 가기도 했다. 그렇게 어렵게 먹은 식사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 싶어도 함께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 또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사진도 혼자 찍어야 한다. 여행지에서 남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웃고 있는데, 나는 뻘쭘하게 삼각대와 셀카봉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었다. 일부러 뷰가 별로여도 남들이 없는 곳을 찾아가 사진을 찍기도 했다. 가장 외로웠던 거는 좋은 풍경을 봐도 내가 느낀 이 감정을 나눌 사람이 없는 것이다. 같이 호들갑 떨면서 웃고 떠드는 상대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무섭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안전한 편이어도 여자 혼자 다니는 것은 언제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최근에는 카카오택시가 잘 되어 있지만 첫 여행을 다닐 때만 해도 카카오 택시가 없었다. 즉, 나의 택시 탑승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수에서 야경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대중교통으로 오기 불편해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이 친절하게 여행을 왔는지, 왜 혼자서 다니는지 물었다. 기사님이 친절하게 물었지만,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오갔다. 그래서 기사님께는 친구들이 숙소에 있고 친구들이 너무 피곤해해서 나만 야경을 보고 돌아가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나를 기다리는 일행이 있음을 어필한 것이다. 그 기사님은 아무런 의도가 없었겠지만, 나는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혼자 여행하는 것은 나에게 온전한 자유를 준다. 나의 컨디션과 기분에 맞게 일정을 짜고 쉽게 변경했다. 내가 하기 싫은데 다른 일행의 눈치를 보면서 해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이동 시간이 길든 말든 무리해서 이동했다. 때로는 그 결정이 비효율적일 때도 있다. 하지만 원망할 사람도 없고, 원망받을 일도 없다.
순천 여행 중 선암사에 갔을 때, 너무 평온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차가 없어 버스로 거의 1시간 넘게 이동해서 왔지만, 산과 사찰이 주는 편안함에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이 기분을 이어가고 싶어 순천에 또 다른 유명 사찰인 송광사에도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가는 길은 산을 넘어서 걸어가거나 아니면 버스를 환승해서 가는 방법 밖에 없었다. 두 사찰을 차 없이 이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만약 그 순간에 다른 일행이 있었다면 나는 송광사로 가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내가 좋다고 해서 어려운 일정을 고집하는 것은 안되니까. 하지만 나는 혼자였고, 내가 하고 싶은 데로 여행을 실행했다. 비록 송광사를 찾아가는 중에 환승해야 하는 버스를 놓치고, 아무도 없는 산길을 무서운 마음으로 헤매다가 겨우 택시를 잡아타서 송광사에 도착했지만, 내 스스로 했던 결정과 경험을 후회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움직였을 때 이런 삽질을 했다면 속으로 그 사람을 원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반대로 내 고집 때문에 그랬다면 다른 일행에게 너무 미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이런 일을 겪으니 이런 삽질도 여행의 묘미지 하면서 웃고 지나가버렸다.
혼자 여행은 이처럼 자유롭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힘들면 쉬어가고, 남들이 안 가는 곳이어도 내가 가고 싶으면 갔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내 감정에만 신경을 썼다. 혼자서 나름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숙소에 돌아와 씻고 맥주 한잔을 마시는 순간, 아 오늘 하루 행복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비록 심심하기도 외롭기도 했지만, 나의 하루를 온전히 내가 쓴 느낌이었다. 남이 아닌 오직 ‘나를 위한’, ‘나에 의한’ 시간의 쓰임이었다. 오롯이 나를 위한 하루는 생각보다 경험하기 어렵다. 평상시에는 출근을 해야 하고,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이 있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나가다 보면 생각보다 나의 모든 시간을 나에게 투자하는 일이 드물다. 여행지에 있는 그 2박만큼은 내 시간은 오롯이 내 거였다.
첫 혼자 여행 이후로, 거의 일 년의 한 번쯤은 혼자 여행을 다니고 있다. 혼자 여행을 가면 생각보다 바쁘고 정신이 없다. 가끔 심심해서 일부러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카톡을 보내기도 한다. 혼자 있는 것이 뻘쭘해서 괜히 스마트폰을 들여도 보기도 한다. 밤에 택시를 탈 일이 있으면 아직도 겁이 나서 무조건 카카오택시로 택시를 부르고 남동생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어찌 보면 혼자 여행에 대해 남들이 물어보는 질문은 다 정확한 질문이다.
혼자 여행하면 외롭고, 무섭고, 가끔 심심하다.
하지만 한 번쯤은 혼자 홀로 떠나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자유롭고 편안하다.
그리고 나의 하루가 오롯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